최근 냉각된 한일 관계는 한국의 '선공'에서 출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14일에는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독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위안부 문제를 "전시 여성인권" 문제로 규정하고 해결을 촉구했다.
일본의 대응 강도도 거셌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은 주한 일본대사를 소환하고 독도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일왕 사과' 발언이 나온 이후 반응은 더 격렬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 등이 잇따라 이 대통령의 발언에 불쾌감을 표했고, 내각 내 우파인 마쓰바라 진(松原仁) 국가공언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羽田雄一郞) 국토교통상은 15일 민주당의 정권교체 이후 각료로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한일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일본 방송이 한국드라마의 방영을 연기하고, 항공업계도 양국 간 관광객 감소를 우려하는 등 이번 갈등이 한일 간의 민간 경제 부문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후지무라 오사무 일본 관방장관이 15일 기자회견에서 최대 700억 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해 "다양한 검토가 있을 수 있다"고 답한 것과 관련해 통화스와프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한일 간 촉발된 갈등이 동북아 전반의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도 나온다.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중국 정부도 유감을 표명하면서 주중 일본대사를 초지해 항의했다. 15일에는 중국과 일본이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에 홍콩에서 온 시위대들이 상륙했다가 불법 입국 혐의로 체포되는 일도 벌어졌다.
▲ 16일 일본에서 열린 반한 집회 장면. ⓒAP=연합뉴스 |
'일회성 이벤트'라 해도 비판은 여전히 남아
하지만 전반적으로 현재까지 이번 사태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정부는 "기존 대일외교에는 변함이 없다"며 추가적인 자극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또 다른 파문이 터지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이 양국 간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동의했다.
'일왕 사과' 발언 파문에 대해서도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6일 "일왕이 한국에 만약에 오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원론적 말을 한 것"이라며 일본 측이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통화스와프 중단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언론이 부풀려 보도를 한 것일 뿐 정부 간 (스와프 중단에 대한) 메시지를 주고받는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에서 이명박 정부가 장기적 계획이나 확고한 기준 없이 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은 남아 있다. 한일 군사협정 밀실 추진 파문과 측근비리로 정치적 곤경에 처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 방문과 '일왕 사과' 발언으로 여론의 눈을 돌리게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기 6개월을 남겨놓고 일본을 자극해 얻는 외교적 실익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일본 언론도 이 대통령이 전통적인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이 일본 입장에서도 전례 없는 자극이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해명처럼 한일관계는 기존처럼 유지되는 가운데 과거사나 영토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왕은 상징적 인물로서 보수 수익이 지켜야할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자체가 일본 보수층에서는 격앙할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치권과 여론이 우경화될수록 일본 내에서 독도·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식적 접근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사와 관련한 국내 단체들이 최근 이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말을 넘어선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오는 30일 1년째를 맞아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한국 정부는 헌재 판결에 따라 중재위원회 구성 제안을 1년 동안 검토해왔지만 일본 측의 중재위 구성 거부 이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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