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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 스캔들'은 스캔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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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 스캔들'은 스캔들이 아니다

[월러스틴의 '논평'] 자본의 무한축적 본능은 시스템의 핵심

리보 스캔들, 왜 스캔들인가?
(The LIBOR Scandal: Why Is It Scandalous?)

지난 7월4일부터 우리는 세계의 주요 신문들, 각국 국회의원과 중앙은행, 그리고 사법당국들의 성명을 통해 리보(LIBOR)라고 불리는 것과 관련한 '스캔들'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읽고 있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금융업계 외부에서 리보라는 말조차 들어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영국, 미국, 스위스, 독일, 프랑스,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국가의 주요 은행들이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는 듣고 있다.

게다가 그 규모가 한 두 푼이 아니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수백조 달러에 달하는 파생금융상품의 가치가 바로 리보금리에 의해 결정된다. 스캔들의 핵심은 은행들이 리보금리를 '조작해' 왔으며 그 결과 은행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이윤을 챙긴 반면, 주택대출금을 갚는 사람들과 학자금대출을 상환하는 학생 등 일반 서민들은 (리보금리의 조작에 의해) 원래 갚아야 할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물어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은행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막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거대한 이윤을 챙겨왔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1)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2) 어째서 규제당국은 사기라고 불리는 이런 관행들을 중단시키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누가 언제 파악했는가? (3)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

▲ 리보 조작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을 문 영국의 대형은행 바클레이스 앞에 시민단체 '돈을 옮겨라'(Move Your Money) 시위대들이 붙인 피켓. ⓒ로이터=뉴시스

우선 리보(LIBOR)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리보는 런던은행간금리(London Interbank Offered Rate)의 약자다. 그리 오래된 제도는 아니다. 최종적 형태가 완성된 게 겨우 1986년이다. 당시 영국은행가협회는 '주요 은행들'에 대해 주말을 제외한 주중 동안 다른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경우 지불할 용의가 있는 금리 규모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것을 요구했다. 이 숫자 중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들을 빼고 나머지로 평균 금리를 산출했고, 이 금리는 매일 변동했다. 이런 금리를 만든 배경은 은행이 경제 상황을 낙관할 경우 금리는 낮아질 것이며, 반대로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본다면 금리가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세계 언론들이 리보 금리에 관해 '스캔들'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이전에도 덜 주목되는 장소에서 이 문제에 관한 공적인 토론이 있었다는 보도들이 나왔다. 지난 2008년 5월 29일(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바로 그 2008년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은행들이 자금 차입 비용을 낮게 보고했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를 보도했다. 물론 이 보도에 대해 즉각 연구결과가 부정확하다, 또는 정확하다 해도 빈 틈이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후 은행들이 자금 차입비용을 과소 계상했다는 주장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학문적 분석이 발표됐다.

여기에서 문제의 핵심은, 예를 들어 명목가치 50조 달러를 취급하는 은행이 차입금리를 아주 조금만 적게 계상해도 엄청난 규모의 이윤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만큼 유혹도 클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2007년부터 미국 연준이나 영국 중앙은행은 이러한 과소 계상을 의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감독당국은 별다른 추가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리보금리라는 것은 전혀 신뢰할 만하거나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그야말로 '통박(guesswork)' 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리먼 브러더스가 붕괴하면서 전 세계의 은행들은 대부분 은행간 대출을 중단했다. 따라서 지난달 19일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것처럼 "금리는 경제현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2011년 미 연방 법무부는 범죄수사를 개시했다. 수사 내용의 일부가 외부에 유출되면서 이제 우리는 은행가들이 이메일을 통해 대출(차입) 금리의 과소 계상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서로 부추겨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왜 안 그랬겠는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와중에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조세회피처(tax haven)에 관한 두 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실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돈이 수많은 개발도상국으부터 이들 조세회피처들로 빼돌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들 국가들이 하고자 하는 경제발전이나 사회적 재분배을 하고도 남을 규모의 자금이 외부로 줄줄 새고 있다는 것이다. 사기에 의해 리보금리가 조작된 것과는 달리 이들 조세회피처는 사실 합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스캔들이란 말인가? 이 두 가지 관행, 리보 금리의 조작과 조세회피처로의 자금 유출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완벽하게 정상적인 관행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목표는 자본의 축적이 아닌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다. 자신의 수입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자본가는 어떤 식으로든, 또 지금 당장이든 나중이든 게임에서 퇴출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관행들을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본가들이 이러한 관행을 지속할 수 있는 동안 국가는 그저 이들에게 한 눈을 찡끗 감아줄 뿐이다. 이러한 관행들, 즉 자본가의 사기와 국가의 묵인이 어쩌다가 아주 잠깐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러면 몇몇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고 불법적으로 취득한 이윤을 토해낸다. 정치가는 개혁을 이야기한다. 물론 가장 최소의 '개혁'을 가장 큰 나팔 소리와 함께.

그러나 이것은 스캔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캔들'이라는 불리는 그것이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뀔까? 물론이다. 언젠가 이 시스템은 더 이상 시스템이 아니게 된다. 물론 이는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뒤를 이은 시스템은 (앞의 것보다) 더 나아질까?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리보 금리 조작을 스캔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자본 축적의 정상적 방법 중의 하나라는 (즉 자본주의 체제가 기본적으로 사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간과하게 만든다. 1992년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빌 클린턴의 선거전략가였던 제임스 카빌의 유명한 표어가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자본주의 체제의) 이른바 사기극에 직면하여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야, 이 바보야."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8월 1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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