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 독재자 총탄도, 대지진도 못 꺾은 '월계관의 꿈'
'지구촌 축제'라 불리는 올림픽은 지구촌 경제에도 영향을 끼친다. 올림픽 개최국이 된다는 것은 개최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췄다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개최국은 올림픽이 가져다주는 특수를 기대한다. 수십 억 명의 눈이 쏠리는 올림픽에 자사 광고를 걸기 위해 기업들도 막대한 후원금을 쏟아 붓고, 이에 따라 올림픽 본연의 스포츠 정신이 퇴색하는 일도 생긴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역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의 장기침체 속에 열리면서 '돈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올림픽, 항상 흑자는 아니었다
올림픽을 개최한 국가는 대개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인식이 보편적이지만, 역대 올림픽이 항상 흥행한 것은 아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은 대표적인 적자 올림픽 사례이며, 몬트리올의 경우 장 드라포 당시 몬트리올 시장이 "올림픽에서 적자를 본다는 것은 남자가 임신하는 것과 같다"며 성공을 자신했지만 이후 30년 동안 특별세를 걷어 부채를 메워야 해 망신을 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올림픽 개최국이 처음으로 흑자를 본 것은 1984년 LA올림픽부터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도 성공적인 스포츠 행사로 남았다. 하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다시 '쪽박'을 찼고 그리스의 경우 시드니올림픽 예산의 3배를 들였던 아테네올림픽이 최근 재정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영국은 런던올림픽에 약 16조5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약 50조 원을 쏟아 부었던 베이징올림픽을 제외하고는 최대 예산이다. 2008년 미국과 유럽을 덮친 경제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올림픽이 한때 '더블딥'에 빠진 영국 경제에 경기 반등의 계기가 될지, 몬트리올 사례처럼 두고두고 재정 '재앙'이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런던올림픽, '대박' 날까?
대부분의 국가 행사에 대한 분석이 그렇듯이 런던올림픽을 통해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이득은 비용을 훨씬 상회한다. 런던올림픽 후원사인 로이즈뱅크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이번 올림픽의 경제 효과가 2017년까지 약 29조 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설경기 활성화와 올림픽 유치에 따른 관광객 증대 효과 등을 계산한 결과지만, 이러한 분석이 보통 과장됐다는 점은 한국에서도 2010년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당시 과도한 경제효과 부풀리기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도 런던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대체적으로 긍정했지만 각주를 통해 "올림픽의 비용을 계산하는 데 있어 (영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건물 및 기반시설 건설, 보안 및 여타 부수적 사안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올림픽 자체를 진행하는 비용에서 분리시킨다"라고 지적했다. "영국이 올림픽을 통해 올리는 수익이 올림픽을 진행하는 비용보다 많을 것이지만, 올림픽은 영국 정부에 여전히 80~90억 파운드(14~16조 원)의 지출을 남길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 <NPR>도 23일 전문가들을 활용해 올림픽의 경제효과에 대한 환상을 지적했다. 우선 올림픽 유치 및 준비 과정 자체가 공공의 이익보다는 민간 건설자본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공공이 얻는 경제적 이익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낙후한 사회기반 시설이 개선된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 목적이 올림픽 개최에 맞춰 추진됨으로써 기반시설 개선 자체에 소요되는 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역대 올림픽의 사례를 보면 경기가 끝난 뒤 과도하게 많이 지어진 건물들이 문젯거리로 남고, '관광객 유치 효과가 있다'는 주장 역시 근거를 살펴보면 빈약할 때가 많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당장 올림픽 기간만 해도 경기 진행이나 보안을 위해 교통통제가 잦아지는데 관광수요가 늘겠느냐는 것이다.
그린 올림픽
올림픽 비용의 과대계상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없지는 않다. 영국이 추구하는 '친환경 올림픽'이다. 이른바 '그린 올림픽'를 표방한 개최국은 영국이 처음은 아니지만, 2005년 런던올림픽을 유치한 이후 기울인 노력은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영국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내놓은 친환경 노력은 창의적이기까지 하다. 올림픽 공원은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주차장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공원이 들어선 곳은 과거 공장지대로, 오염된 흙을 정화하기 위해 30만 그루의 식물을 심었다.
8만 석 규모의 메인 스타디움에는 철거된 건물에서 나온 폐자재가 재활용됐고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는 관중석 상단을 철거해 몸집을 줄이도록 했다. 사이클 경기장은 조명과 냉방을 자연 채광과 바람을 통해 가능토록 했다. 농구와 핸드볼 경기를 치르는 바스켓볼 아레나 경기장은 조립식으로 지어졌다. 올림픽이 끝나면 해체돼 2016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브라질로 수출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애초 제시했던 재생에너지 사용비율 목표를 절반으로 깎았고, 올림픽 자체가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환경론자들의 주장도 여전하다. 런던올림픽 예산이 2005년 올림픽 유치 당시 추정치였던 4조2800억 원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 상황에서 '그린 올림픽'이 비용 감소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더러운 돈'도 올림픽을 위해서라면…
수익을 보전하기 위한 영국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눈물겨운 노력은 곳곳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원 기업의 무분별한 선정이다. 친환경 올림픽을 추구하는 런던올림픽의 최대 후원기업 중 하나는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대형 환경참사와 관련 있는 다우케미컬이다. 2020년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후원계약을 맺은 다우케미컬은 2011~2020년 동안 약 2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우케미컬은 1984년 12월 2일 인도 보팔에서 화학공장 가스 폭발 사고로 독가스가 유출돼 2만 명이 사망하고 20만 명을 다치게 한 미국의 다국적기업 유니언 카바이드를 인수한 기업이다. 인도는 올해도 다우 캐미컬의 올림픽 후원을 비난하는 행사인 '보팔 스페셜 올림픽'이 열리는 등 상처를 씻지 못하고 있다. 다우캐미컬도 사고 이후 28년이 지나도록 피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은 없는 상황이다.
▲ 7월 27일(현지시간) 올림픽 개막을 앞둔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 앞에서 환경운동가들이 인도 보팔 참사를 일으켰던 다우케미컬의 올림픽 후원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인도 정부는 그동안 다우케미컬이 올림픽 후원사 자격을 계속 유지하는 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 왔고, 지난해 인도 선수들은 다우케미컬의 후원 계약 연장에 반대해 올림픽 보이코트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후원 자격에 물음표가 달리는 기업은 다우케미컬만이 아니다. 2020년까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는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는 '고칼로리 음식으로 비만을 유도하는 기업이 왜 올림픽을 후원하느냐'는 비난에 직면한 바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논란을 일으켰던 미국 선수단 유니폼은 동시에 유니폼을 디자인한 랄프 로렌의 로고가 국기보다 오히려 눈에 띄게 노출돼 '국가 대표라는 상징이 먼저냐, 기업의 홍보가 먼저냐'라는 논쟁을 부르기도 했다.
약 46억 명이 지켜보는 올림픽의 광고효과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에서 후원 기업을 둘러싼 웃지 못 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LOCOG)는 맥도날드가 공식 후원기업으로 패스트푸드 공급을 독점하면서 다른 업체들이 제공하는 올림픽 식단에는 감자칩을 올릴 수 없다고 발표해 빈축을 샀다. 한때는 영국의 대표 음식인 피시앤칩스(생선튀김과 감자칩)까지 '반쪽 음식'으로 나올 뻔했지만 자국 여론을 의식한 조식위원회가 맥도날드에 간청해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세바스천 코 조직위원장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공식스폰서인 코카콜라가 아닌 펩시콜라 브랜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관람객의 경기장 입장도 금지된다"고 밝혀 비웃음을 샀다. 또 경기장에서는 후원사인 비자 신용카드만 쓸 수 있으며, 조직위원회는 1세 이하의 영아 관객까지 입장료를 받고 있다.
올림픽이 친환경이나 스포츠맨십을 강조하지만 그 내부는 초국적 자본의 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자크 로케 IOC 위원장도 <BBC>와 한 인터뷰에서 인정한 바 있다.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는 스포츠가 그려내는 드라마와 고취되는 애국심에 흥분하지만, 막을 내린 후에는 올림픽이 보여준 자본의 현실과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란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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