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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X파일 싸움이 경제민주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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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삼성 X파일 싸움이 경제민주화 싸움"

[인터뷰] <이상호 기자 X파일> 펴낸 이상호 MBC 기자

이 정도로 유명한 기자가 얼마나 있을까. 아니, 이른바 '스타급 기자' 가운데 그만큼 굵직한 뉴스를 많이 만든 기자가 얼마나 될까. 연예인 노예계약 파문 보도, SBS 사주였던 태영의 비리 의혹 보도, 전두환 비자금 보도, 방송가 PR비 관행 보도, 방탄 군납비리…. MBC 이상호 기자의 얘기다.

이상호 기자가 신간 <이상호 기자 X파일, 진실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동아시아 펴냄, 이하 X파일)를 냈다. 지난 2004년 10월 25일부터 2005년 7월 22일까지, 약 10개월 간 그가 쓴 일기를 재정리한 책이다. 이 사이에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됐다.

하나는 한국을 뒤흔든 '삼성 X파일' 사건이다. 이 보도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비록 일시적이었으나)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이학수, 김인주 등 이 회장의 가신그룹이 회사를 떠났다.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은 X파일에 등장한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했다가 2007년 기소됐고, 이 사건은 이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구찌 핸드백 로비' 사건이다. 당시 잘나가던 MBC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 <사실은>은 이 사건으로 폐지됐고, 양심고백을 통해 뇌물 수수 사실을 알렸던 이상호 기자는 그 후 선후배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복귀한 건 삼성 X파일 사건 보도를 통해서였다. 이 기자는 이 뉴스를 특종보도한 장본인이다. 누구보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취재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기자는 신간 <X파일>에서 8년 만에 당시 핸드백 사건이 결국 삼성 보도와 무관하지 않았다는, 복잡하게 얽힌 거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기자는 삼성 X파일의 존재를 제보 받고, 관련 취재를 끝내고, 이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무려 10개월의 시간 동안 MBC 내에서 고단한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이 기자는 14일 <프레시안>을 만나 그 싸움은 바로 "경제민주화를 위한 투쟁"이었다고 강조했다. MBC 내부에까지 번진 재벌의 힘이 보도를 가로막았고, 이 때문에 그는 병을 얻을 정도의 괴로움과 맞서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이상호 기자. ⓒ발뉴스
김재철도 삼성 X파일 보도 막았다

이 기자는 이 책이 "대선을 앞둔 지금,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재벌 자본의 힘 앞에 극단의 상황까지 몰렸던 자신의 경험을 "다시 퇴고하려고 옛 기록을 펼치기만 해도 몸이 안 좋아지는" 고통을 무릅쓰고 펴냈다. 말하자면, 어느새 언론계 구석구석까지 지배해 언론과 하나, 정치와 하나가 돼 버린 재벌의 힘과 맞서 싸우며 자본의 강력한 힘을 겪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세상에 풀어놓음으로써, 역으로 유행어가 돼 버린 '경제민주화'를 얻는 게 얼마나 힘든 싸움인가를 역설하려 했다는 얘기다.

실제 책에서 이 기자는 삼성 X파일 사건을 보도하기 위해 회사 내에서도 마치 007 작전을 펴듯 보안을 유지한다. 시시각각 두려움에 떨고, 스트레스에 잠을 설친다. 관련 사실이 알려진 후에는 선배들의 온갖 비난에 시달린다. 이 과정에서 이 기자는 한 때 존경했던 한 선배가 이미 삼성과 한 몸이 됐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보도제작국장이던 김재철 현 MBC 사장도, MBC 개혁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최문순 전 사장도 삼성 보도를 내보내려는 이 기자의 의지를 꺾는다. 노골적으로 MBC 내부에선 "경영 논리"가 우선이 돼 보도를 가로막는다.

이 기자는 "당시 보도를 위해 싸우면서 느낀 건, 이미 언론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스스로는 '자본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며 "그나마 대한민국 주류 언론 중에선 몇 안 되게 삼성에 비판적 보도가 가능하던 MBC마저 그 정도였다. 그만큼 재벌의 힘이 무섭고, 경제민주화로의 갈 길이 멀다는 걸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당시 X파일 보도를 위한 내부 투쟁은 여러모로 한국 언론사에 의미가 깊은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4년 10월의 상황은 결국, 시장논리가 본격적으로 언론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한 것"이었다며 "불행히도 이제는 김재철 사장이 들어오면서 자본의 논리에 정치 논리까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하준 타협론에 동의 못 해

실제 이 기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이도,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과연 경제민주화가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한국을 뒤흔들었던 삼성 X파일 보도는 결국 이건희 일가에 별다른 책임을 묻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여전히 삼성은 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기업이다. 이제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의 대선 구호가 돼 버렸다.

이 기자도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8년 전 제가 공영성 문제를 제기한 태영이 지배하던 SBS보다 더 해악이 큰 종합편성채널마저 등장했다. 모든 언론이 재벌의 확성기로 변하고 있다"며 "이제 언론의 해악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도 '효율화'라는 명목 하에 자기 목을 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특히 '재벌과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의 주장을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이상호 기자 X파일> 동아시아 펴냄. 이상호 지음. ⓒ동아시아
이 기자는 "결국 정의라는 토대 위에서만 경제민주화가 가능한데, 지금의 재벌과 어떻게 타협하자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건희 일가를 위한 삼성에 어떻게 희망을 걸라는 말인지 모르겠다"며 "내 책에서 봤듯 재벌의 힘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구석까지 모두 장악했다. 그들은 타협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장하준 교수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나이브한(순진한) 생각"에 불과하다며 "감시 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한, 재벌과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무엇이 필요할까. 이 기자는 결국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벌) 우상화에 일조하는 언론이 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언론이 이건희 일가의 사익과 삼성의 이익, 그리고 국익을 같은 것으로 가공하는 '우상화'를 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통해 정의가 제대로 세워져야만 국회가 변하고, 기업도 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기자는 "책을 펴내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MBC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들을 일일이 공격하기 위해 책을 쓴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신 그는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드려야만,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요원한지, 재벌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사람들이 알 수 있다"며 "늘 고통스러운 투쟁을 해야 하지만, 결국 더 나은 길로 갈 것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무슨 근거로? 이 기자는 "삼성 X파일을 보도할 당시 (내가 삼성에 대한) 승산은 20% 미만이라고 봤다. 언론사 협찬과 광고 시장의 3분의 1을 삼성이 차지하는 나라에서 과연 내가 기자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며 "그런데 당시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국민이 우리 MBC의 보도가 옳다고 응답했다. 국민 다수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번 선거에서도 실질적인 경제민주화를 위해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MBC"

<X파일>은 삼성 X파일 보도 당시 MBC의 치부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지상파 방송 중 가장 높은 공영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던 MBC에서, 삼성 X파일을 제보 받고도 이를 방송에 내기까지 왜 그토록 긴 시간이 걸렸는가를 자세히 풀어썼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을까. 삼성 X파일 보도 당시 내부에서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 기자가 다시금 같은 비판을 받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진 않았을까.

이 기자는 "핸드백 사건의 정황을 비롯해, 그간 말하지 못했던 일들을 모두 기록했다. 이 책이 가져올 후폭풍이 두렵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MBC를 사랑한다"며 조직에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기자는 "일부 선배의 실망스러운 부분을 제가 언급했지만, 그나마 삼성 X파일 보도가 가능했던 건 우리 조직이 MBC였기 때문"이라며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노조가, 기자회가 이를 보도하기 위해 지난한 싸움을 벌였다. 이게 바로 MBC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 파업 국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MBC는 늘 고통스러운 투쟁을 이어왔고, 결국 승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재철 사장이 경영 논리로, 정치 논리로 MBC를 경직화시키고 있지만, 결국 MBC는 공공의 영역, 인간의 영역을 지켜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 기자는 최근 5000여만 원의 소셜펀딩을 받아 '발뉴스'라는 영상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한열 기념관 2층에 자리잡은 이 방송은 또 하나의 굵직한 특종을 지난 12일 내보냈다. 청와대가 비선팀을 통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란 이름으로 이른바 '좌파 연예인 제거작전'을 펼쳤다는 것. '고발 기자' 이상호의 특종 행진은, MBC 입사 18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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