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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하락, 왜 서민들이 피해를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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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가격 하락, 왜 서민들이 피해를 보나?

[이정전 칼럼] '깡통 아파트'의 경제학

부동산은 참으로 요상한 것이다. 부동산가격이 올라가도 아우성이고 떨어져도 아우성이다. 그러면 누가 주로 아우성을 치는가? 부동산가격이 올라갈 때에는 부자들은 부동산투자로 돈을 벌어 좋고, 건설업체들은 비싼 가격에 부동산을 많이 팔아서 톡톡히 재미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잠자코 돌아앉아서 웃는다. 하지만, 집 없는 서민들에게 부동산가격 상승은 악몽이다. 우선,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다. 집값이 비싸다는 것은 주택마련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평균 봉급쟁이가 월급을 아껴서 저축한 돈을 모아 110m2(33평)형 집을 사려면 평균 18년 걸리며, 서울에 있는 똑같은 평수의 아파트를 사려면 30년 걸린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어야 겨우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집을 장만할 때까지 전세나 월세로 살아야 하는데,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전세와 월세도 줄줄이 뛴다. 일반 서민들은 비싸지는 전세와 월세에 밀려서 이리 저리 떠도는,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서민들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준다면, 반대로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이들에게 축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물론,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부동산경기를 위축시킴으로써 건설업체들과 투기를 일삼던 부자들에게도 경제적 피해를 준다. 그래서 이들은 부동산경기를 살리라고 정부에게 온갖 압력을 넣는다. 허나, 이들은 부동산가격이 뛸 때 이미 재미를 톡톡히 보았기 때문에 경기침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어느 정도 비켜갈 수 있다.

하지만,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가수요(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를 위축시키면서 투기성 자금을 실수요 쪽으로 몰리게 한다. 이 때 실수요의 상당한 부분이 부동산임대 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앞으로 부동산가격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전망되면, 돈을 가진 사람들은 부동산을 매입하기 보다는 빌려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임대에 돈이 몰리면 전세, 월세가 줄줄이 오르게 된다. 그러면, 서민들을 상대로 한 임대부동산의 전세 값과 월세도 덩달아 오른다. 결국, 서민들이 부동산경기 침체의 유탄을 맞게 된다. 실제로 부동산경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던 2009년과 2010년에 수도권에서 전세 값과 월세가 폭등하면서 '전세 대란'이 터졌다. 물론, 그 때 전세 대란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정부의 무모한 재개발사업의 추진으로 인해서 멸실 주택이 양산되었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이 떨어지는데 집 없는 일반 서민들이 전세 대란의 고통을 겪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동산가격이 오를 때나 떨어질 때나 언제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일반서민들의 보호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채무 불이행에 이은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 부동산은 매우 유용한 담보물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힐 때, 통상 은행은 부동산가격의 약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빌려준다.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담보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개인이나 기업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대출 받을 수 있다. 즉, 부동산가격의 상승은 직접적으로 금융기관의 대출규모를 증대시킨다. 그러나 다른 경로로 금융기관이 대출규모를 증대시킬 수도 있다. 특히 부동산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화가 뿌리내리고 있을 때에는 더욱 더 그렇다. 부동산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보장이 있을 때에는 금융기관은 부동산가격의 50%보다 더 많은 금액을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길이다. 그래서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매년 반복되면 금융기관은 부동산가격 대비 대출금의 비율을 점점 더 높인다. 이 결과 똑같은 부동산에 대한 대출규모도 점점 더 커진다. 심하면 부동산가격의 100%에 해당하는 만큼 대출해주는 사태도 발생한다. 과거 부동산투기 열풍이 불 때 일본과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가격의 상승기류를 타고 금융권 전체의 가계 부채 총액은 2001년 말 342조원에서 2008년 6월 말 660조원으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이 중 절반이 부동산담보 대출이었다. 제2 금융권의 것까지 합치면 부동산담보 대출의 규모는 이 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되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정부가 2006년 은행대출을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부동산의 담보가치 중에서 대출해줄 수 있는 비율(담보인정비율, LTV)과 채무자의 총가처분소득에서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총부채상환비율, DTI)에 제한을 가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금융권의 담보대출이 계속 증가하면서 2012년 가계부채 총액은 국내1,000조 원에 이르게 되었다.

부동산가격이 오르고 있을 때에는 그런 가계부채가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떨어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부동산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은 채무자들이 부동산을 팔아서 빚을 갚을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하며, 이는 금융권이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10억 원짜리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8억 원을 대출해주었는데, 시세가 6억 원으로 폭락하였다면 부동산을 팔아봐야 6억 원밖에 회수하지 못하고, 2억 원을 떼이게 된다. 이와 같이 팔아봐야 대출금도 갚지 못하는 부동산을 흔히 '깡통 아파트' 혹은 '깡통 주택'이라고 부른다. 2012년에 수도권 곳곳에서 깡통 아파트가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인한 부동산가격의 하락이 지속된다면, 깡통 아파트와 깡통 주택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2008년 미국에서 이른바 비우량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수많은 시민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 집에서 쫓겨나는 참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요컨대,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집 없는 일반서민들뿐만 아니라 집을 가진 중산층에게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문제가 이 정도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부동산가격의 거듭된 하락은 금융기관이 보유한 부동산의 담보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짐을 의미하며, 따라서 대출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크게 낮아진다.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의미한다. 2008년 미국에서 그랬듯이 채무자의 무더기 채무불이행 사태는 금융기관들의 줄도산을 초래한다. 실제로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미국 금융기관의 줄도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부의 관료들이나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의 문제가 금융기관의 줄도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많은 경제학 천재들도 2008년 미국의 금융시장 붕괴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일본의 부동산가격 거품붕괴가 본격적으로 일어났던 1992년 일본정부는 일본경제가 일시적 조정국면에 처해 있으며 거품붕괴로 일본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 이런 큰 소리에는 각종 통계분석과 회귀분석을 이용한 최고 경제전문가들의 정교한 진단서가 첨부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돌이켜 보면 일본정부의 허풍이 우습기 짝이 없지만, 그런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기침체가 10년 이상 지속되었다. 이를 놓고 일본인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일본 경제가 뚜렷한 회복의 조짐을 보이지 못하자, 이제 일본국민은 "잃어버린 20년"을 한탄하고 있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참담한 경험에 비추어볼 때 가계부채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정부는 부동산경기를 살린다거나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는 등 미봉책만 남발해 왔다. 사실, 전세대란이나 깡통 아파트의 문제, 가계부채 누증의 문제 등은 2008년 이전 오래 동안 우리 사회를 휩쓸어 왔던 부동산투기 열풍의 후유증이다. 이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요행히 이번 고비를 넘긴다고 해도 언제 다시 그런 후유증이 도질지 모른다.

▲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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