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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1년, 공포와 맞서는 일본인의 '수국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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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1년, 공포와 맞서는 일본인의 '수국 혁명'

[강연회] 이케가미 요시히코 "후쿠시마는 세계인 문제"

지난해 4월 10일 일본 도쿄 스기나미구의 코엔지에 1만5000여 명 군중이 몰려들었다. 당초 500명을 참가자로 신고했던 이 집회는 그해 3월 11일 전 세계를 두려움에 잠기게 한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처음 열린 반 원전시위였다. 초거대원전반대록페스티벌데모 in 코엔지(超巨大反原?ロックフェス in 高円寺). 우리나라에도 <가난뱅이의 역습> 등의 저서를 통해 잘 알려진 마쓰모토 하지메 씨가 속한 '아마추어의 반란' 팀이 이끈 이날 집회는 지난 십여 년 간 일본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그 후로 1년, 지금도 일본에서는 원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이 시위에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목적을 녹여 넣기 시작했고, 이 움직임을 '자양화 혁명(수국 혁명)'으로 부르고 있다. 수국은 원산지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중동에서 연달아 일어난 반 독재 시위에서 영감을 받은 이름은, 일본인들이 쓰나미 이후 일어난 대형 사건에서 민주주의의 부재를 심각하게 체감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 원전 움직임을 설명하기 위해 이케가미 요시히코 전 <현대사상> 편집주간이 지난 28일 한국을 찾았다. 이케가미 씨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줄곧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한편, 일본을 완전한 탈핵 국가로 만들기 위한 대중운동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하자작업장학교와 <오늘의 교육>이 함께 만든 포럼 '피난의 권리'는 이날(28일) 저녁 7시,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본관에서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케가미 요시히코 전 <현대사상> 편집주간은 일본에서 최근 일어나는 '수국 혁명'의 의의를 설명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수국 혁명

핵 문제에 둔감해진 한국과 달리, 일본 시민들은 후쿠시마 사태 1년 3개월 여가 지난 지금도 매일 같이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난 '오큐파이' 행사에 발맞춰 후쿠시마 피해자들은 경제산업성(한국의 지경부) 부지 안에 천막 3동을 치고 지역 전통 춤을 추는 '오큐파이 경제산업성' 집회를 열었다.

사태 1주기를 맞은 지난 3월 11일에는 최대 3만 여 명에 달하는 인파가 도코 히비야 공원에 모여 국회의사당까지 행진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케가미 씨는 준비한 영상자료를 틀며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한편, 분노도 잊지 않는 시위를 했다"고 말했다. 영상에서 자유분망한 모습의 집회 참가자들은 조용히 악기를 연주하며 행진을 이었다. 이들은 국회의사당에 모인 후, 인간 띠로 국회를 포위하는 행사를 갖고, 촛불을 들고 집회를 이어갔다. 이케가미 씨는 "한국의 촛불집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에는 노다 총리 관저 앞에 1만2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두 시간 동안 오직 "재가동 반대"라는 구호만 외쳤다. 사흘 전, 노다 정부는 원전재가동을 선언해 일본 사회는 물론, 한국에서도 큰 우려를 낳은 바 있다. 이 집회 이후로 사람들은 원전 반대 움직임을 '수국 혁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인 지난 22일에는 4만5000여 명의 시민들이 몰렸다. 이케가미 씨는 "조용한 일본 사회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회가 이어지는 건 5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케가미 씨는 원전 반대 움직임이 장기화되면서 '원전 반대'만이 아닌 새로운 요구도 집회에서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다 정권을 타도하자"거나 "정치를 되찾자"는 구호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케가미 씨는 "결국 사람들이 원전을 반대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게 됐다"며 "원전 문제는 이제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 안에는 대규모 '죽음의 땅'이 생겼다. 과연, 원자력은 안전한가? ⓒ프레시안(최형락)

과연 일본 사회는 변하고 있나

이케가미 씨는 이와 같은 대대적 움직임에는 온라인의 영향도 분명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금요일(22일) 시위에 참가한 적잖은 사람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소식을 들었다. 온라인의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온라인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더 꾸준히 전개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방사선량 측정기를 들고 다니고, 슈퍼마켓에서 장 볼 때도 굉장히 신경을 쓴다. 이런 변화를 감안하면, 원전 사태 이후 일본인의 일상은 (집회 참가자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이전과 완전히 바뀌었다. 인터넷의 위력이 크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방사능 위협을 "내 일"로 생각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핵발전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고 있다. 당장 일본 정부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추가 승인했다. 이에 따라 일본 원자력연료(原燃) 주식회사는 오는 2016년 3월까지 플루토늄과 우라늄 혼합 산화물(MOX, Mixed OXide Fuel) 연료 공장 건설을 완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42년 만에 '원전 제로' 시대를 맞았던 일본은 다시금 원자력 의존 국가가 됐다.

MOX는 결국 핵미사일 제조원료인 플루토늄을 재료로 하는 핵 원료다. 그만큼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 보유량이 늘어난다. 일본은 비록 핵무기를 보유하진 않았지만, 비핵 국가 중 유일하게 핵 재처리 능력을 갖췄다. 일본을 실질적인 핵 보유 국가로 보는 이유다. 이와 같은 대대적 움직임을 감안하면, 원전 사용에 반대하는 시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케가미 씨는 "분명 (원전 사용에 대한) 입장의 수위는 다양할 것"이라며 특히 일본 사회의 지배 계층이 "일본을 언제든 핵무장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놓으려는 욕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또 "도망가려야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핵을 끼고 살아도) 괜찮다'라고 믿고 싶은 심정"이 된다며 "노다 정권 지지율은 27~28%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이유"라고도 말했다.

▲지난 5월 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반핵 시위. 핵 문제는 결국 세계인의 문제다. ⓒ뉴시스(AP)

후쿠시마는 결국 '세계인의 문제'

일본 정부는 방사선 측정량이 20밀리시버트(mSv) 이하인 지역에서는 거주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피난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과거 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체르노빌 사태 당시 소련 정부의 입장보다 오히려 더 후퇴한 것이다.

체르노빌 사태 당시 소련 정부는 방사선량이 20mSv 이상인 경우 '강제피난구역'으로 설정하고, 5mSv만 넘어도 '이주의무구역'으로 지정해 주민들을 대피하도록 했다. 1mSv~5mSv의 구역에서도 '이주의 권리'를 인정했다. 이를 감안하면, 상당수 일본인은 체르노빌 사태 당시 '이주해야만 하는' 구역에서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셈이다.

이케가미 씨는 "누가 봐도 방사능 오염이 명백한 원전 20킬로미터(㎞) 이내와 오염 수치가 높은 지대(방사선량 20mSv 이상 지역)만 제외하고는 모든 지역에서 안전 선언을 잇달아 발표해, 피난 움직임을 봉쇄했다"며 "이 때문에 (피난민 권리를 인정받으려는 사람도) 생활의 보장이 안 돼, 피난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현재 일본에서 상당수 사람은 이 때문에 '자주 피난', 즉 정부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보다 안전한 지대로의 이동을 선택하고 있다고 이케가미 씨는 덧붙였다. 그는 '피난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며 "피폭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방사능 피폭 기준은 연간 1mSv 이내다.

이케가미 씨는 일본 사회를 뒤덮은 공포의 그림자는, 일본 정부의 핵 재가동 움직임으로 인해 결국 세계인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그리고, 결국 세계적인 움직임만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중요한 건 현 시점에서 여론조사 결과 '원전을 재가동해선 안 된다'는 일본 시민의 비율이 70%에 달한다는 점"이라며 "탈핵, 탈원전 운동은 결국 세계 차원에서 원자력에 반대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나아가 "(핵으로 돈을 벌려는) 세계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국가다. 일본의 원전사고의 위협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나라이기도 하다. 2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 사고 위험도가 가장 높은 10개 원자력발전소가 모두 일본의 서해, 즉 한국의 동해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시민사회의 움직임, 일본 정부의 핵 의존에 한국 사회가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일본 시민들의 생활에 녹아든 공포를 잊어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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