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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는 크립을 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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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는 크립을 부르지 않는다

[록페 시즌 시작] 라디오헤드가 부를 곡

감히 단언하자면 99.9%다. 라디오헤드(Radiohead)는 <크립>(Creep)을 부르지 않는다. 올해 들어 가진 투어에서 라디오헤드는 단 한 번도 <Creep>을 부르지 않았다. 현재까지 라디오헤드가 마지막으로 크립을 부른 무대는 2009년 4월 30일 열린 레딩 페스티벌이다. 이 무대에서 첫 곡으로 크립을 부른 게 얼마나 예상 밖이었는지는 유튜브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크립은 없다

올해 초, 라디오헤드가 2012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참석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인터넷을 들끓게 했다. 누군가에겐 대중음악의 불모지라 불릴만한 한국에서 라디오헤드의 내한 소식은 순식간에 포털 검색어 순위 상단을 장식했고, 모든 언론이 초 단위로 속보를 써내기 바빴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하며 <Creep>을 얘기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이 곡은, 국내에서 영화 <씨클로> 등을 통해 특히 유명해졌지만, 나아가 영미권에서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에겐 송가(anthem)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라디오헤드는 이 곡이 주는 중압감을 거부해 왔다. 밴드의 무한한 성장의 세계를 <Creep>은 잡아먹어버렸다. 사람들이 열광할 걸 알면서도, 라디오헤드는 이 곡을 무시해 왔다. 지난해 [The King of Limbs](더 킹 오브 림즈)를 발표한 후, 멤버들은 평단과 팬들의 우려에도 불구 "투어는 신곡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실제 그러하다. 이들이 <Creep>의 거대한 성공과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로 얻은 명성 이후 강조한 길은 한결같았다.

대신 이들은 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와 새로운 시도에 밴드의 미래를 맡겼다. 찌질한 남자의 칭얼댐(Creep)에 갇히지 않고 비관의 늪과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나래로 스스로를 떠밀었고, 그 결과는 라디오헤드가 90년대를 넘어 21세기에도 가장 위대한 밴드로 자리매김하는데 일조했다.

▲지난 4월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라디오헤드의 공연 모습. ⓒ뉴시스(로이터)

철저히 즐겨야 한다

따라서, (라디오헤드가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의 첫 번째 밤 헤드라이너로 서는) 오는 7월 27일을 흘러간 <Creep>을 그리워하며 '혹시라도' 하는 마음을 갖고 기다릴 필요는 없다. 라디오헤드는 혹시라도 그런 마음을 가진 이가 있다면, 이를 배반할 것이며, 팬들이 자신의 세계로 따라와주길 바랄 것이다.

대중의 바람에 그저 휩쓸리기만 하는 이를 과연 바람직한 대중음악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디오헤드는 분명히 '아니'라고 단언한다. <Creep>을 버림으로써 라디오헤드는 '대중으로서' 대중음악을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어떻게 대중예술의 '창조자'가 돼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웅변해 왔다.

고로, <Creep>을 기다린 이라면 지금이라도 잊고 있던 라디오헤드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대안을 생각해볼 때다. 한 달이면 시간은 충분하다. [파블로 허니](Pablo Honey)-[더 벤즈](The Bends)로 이어지는 기타팝의 세계를 마무리한 라디오헤드는 [OK Computer]로 전자음악과 기타가 만나는 새 시대 로큰롤의 방법론을 제시했고, 이는 2000년대 대중음악계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키드 에이](Kid A)에서 꽃을 피웠다.

지금도 상당수 라디오헤드 팬을 가르는 경계지점이자, 90년대 록과 2000년대 록팬을 가르는 일종의 기준점이 된 [Kid A]부터 라디오헤드는 파워풀한 기타에서 자유로워졌고, 그와 같은 길의 최종착 지점이 바로 최근작인 [The King of Limbs]다. 7월 27일 밤 팬들은 압도적인 무대장치 아래 부유하는 전자음,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미니멀한 연주를 바탕으로 감정이 거세된 톰 요크(Thom Yorke)의 공연을 만끽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놀라운 경험이 될 것이다.

▲라디오헤드. ⓒ워너뮤직코리아 제공
지난 5월 29일 미국 컴캐스트 시어터에서부터 이번달 15일 캐나다 센터 벨까지, 이들이 가진 열 두 차례 북미투어에서 주로 부른 곡을 중심으로 추린 예상 세트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무순이며, 순서에서 일정 정도 법칙이 정해질 경우 따로 설명했다. 물론 아시아의 특성을 감안해 세트리스트가 바뀔 수 있으며, 특히 한국은 첫 방문인 만큼 <Creep>이 나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100%라고 씌여진 곡은 북미 투어에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부른 곡이다.

Bloom(100%, 12번의 공연에서 예외 없이 첫 곡)
There There(100%, 6월 들어선 거의 예외 없이 두 번째 곡)
Kid A(코첼라 페스티벌 이후 북미투어에서 단 두 번만 안 부름)
Morning Mr. Magpie(코첼라 페스티벌 이후 북미투어에서 단 두 번만 안 부름)
The Gloaming(100%)
Separator(100%)
Staircase(100%)
Lotus Flower(100%)
Little by Little(최근 다섯 차례 공연에서 모두 부름)
Idioteque(단 한 번만 안 부름)
Nude (12번 중 7차례 부름)
Reckoner 혹은 Bodysnatchers (둘 중 한 곡은 반드시 부름)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 (두 번을 제외하면 공연 후반부에 반드시 부름, 인트로는 <True Love Waits>)

그 외 I Might Be Wrong, Paranoid Android, Give Up the Ghost, House of Cards, Weird Fishes/Arpeggi, Street Spirit(Fade Out), Exit Music(for a Film), Ful Stop, You and Whose Army?, The National Anthem 등이 연주됐다. 이들은 공연에서 평균 두 번의 앙코르를 포함해 약 25~27곡을 연주했다. 페스티벌임을 감안하면 연주 곡 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14일과 21일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라디오헤드는 각각 20곡, 21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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