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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의 낮과 밤, 동네 잡지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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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의 낮과 밤, 동네 잡지가 필요한 이유

[인터뷰] 창간 3주년 맞은 <스트리트 H> 장성환 발행인

대중음악이나 영화평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란 잡지를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뉴욕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된, 예술가 거리이자 게이들의 거리로 잘 알려진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동네잡지로 출발한 이 잡지는 '올해의 영화 100선', '2000년대 명반 100선' 등의 시리즈를 내 지금도 대중문화, 예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동네 잡지에서 성공한 주간지가 된 이 잡지의 성공비결엔 '당연히도', 잡지가 자리한 지역이 바로 예술의 도시 뉴욕이었다는 점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들어줄 열혈 독자층이 넓었기에 뉴욕의 한 동네를 넘어, 세계 대중예술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잡지로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무료 언론사가.

서울에서 이런 잡지의 성공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동네는 결국 홍대 인근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새로운 독립잡지가 생겨나고, 그만큼 사라진다. 이 중 가장 성공한 잡지는, 이미 '홍대 앞'을 대표하는 잡지로 성장한 <스트리트 H>다.

▲창간 3주년을 맞아 특집기획으로 꾸려진 <스트리트 H>의 6월호. 이 잡지는 '홍대 앞'을 다룬, '홍대 앞' 사람들을 위한 독립언론이다. ⓒ<스트리트 H> 제공

'독립' 동네잡지의 탄생

<스트리트 H>는 지난 2009년 6월 15일 창간한 무료 월간지다. 홍대 인근의 수많은 카페에서 이 잡지를 만날 수 있다.

'OO소식' 등과 같은, 동네 주민 누구도 보지 않는 관변 잡지만이 전부인 시절 생겨난 이 잡지는 디자인 스튜디오 203의 주인인 장성환 대표가 만들었다. <주간동아>, <연합뉴스> 등에서 일하기도 했던 장 대표는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온 '원조 홍대 피플'이다.

그런데 이 잡지는 시작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진 못했었다. 20일 디자인 스튜디오 203에서 기자와 만난 장 대표는 <스트리트H>의 독립이 결코 쉽진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의 로컬 매거진, 소규모 매거진을 보면서 마냥 '부럽다'는 생각을 하긴 했죠. 홍대 앞에서 떠오르는 문화를 담아줄 잡지가 필요했으니까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독립 기반을 닦기가 쉽진 않았어요. 그런데 마침 마포구청에서 얼마를 지원할테니 '자신들이 발행한다'는 걸 한 줄만 넣어달라고 하더군요. 편집장은 반대했는데,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했으니 수락했었죠. 초반엔 괜찮았어요. 특별히 개입하지도 않았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청과의 사이는 결국 틀어지게 된다. 관의 생리와 독립잡지를 꿈꾸는 이들의 생리는 너무 달랐다. 이후로 이 잡지는 마포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진정한 '독립잡지'로 나아가게 됐다. 디자인 스튜디오 203 직원들이 직접 잡지 제작에 참여하고, 홍대 앞을 사랑하는 다양한 이들이 객원기자로 참여한다. 편집장은 다양한 개성들이 듬뿍 묻은 글을 다듬고, 톡톡 튀는 개성의 인포그래픽(infomation과 graphic의 합성어. 정보가 담긴 그림)을 정리해 매달 한권 씩, 3년간 이 잡지를 만들어왔다. 인근 300여 곳에 달하는 카페를 취재하고, 동네 세탁소 주인, 언더그라운드 음악인, 미술가와 만난다. '홍대 앞'이라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넓어지는 이 도시와 함께 호흡하는 <스트리트 H>는 이제 매달 3000부를 찍어내는 잡지로 성장했다.

그런데 동네 잡지가 왜 필요할까. 장 대표는 주류미디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동네 미디어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류 미디어가 '홍대 앞'을 소비하는 태도를 한번 보죠. 대낮에 이곳을 취재하러 오는 미디어는 없습니다. 와우 북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실험예술제…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관이 주도하지 않는 지역인들의 자발적 축제가 보도되지 않아요. 대신 술, 클럽, 퇴폐, 이런 것들이 떠오르게 하는 기사를 내죠. 지난 해 <스트리트 H> 창간 2주년을 맞아 한 언론사가 우리를 다뤄주기로 했어요. 그런데 막상 기사가 나온 걸 보니 '홍대에 퇴폐가 어쩌고 저쩌고….' 한참 뒤에야 우릴 마치 생색내기용으로 처리하더군요. 이런 주류미디어와 동네 잡지의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죠."

▲<스트리트 H>의 장성환 발행인. ⓒ프레시안(최형락)

세종시와 홍대 앞의 차이점

창간 3주년을 맞아 <스트리트 H>는 '3H'라는 모토를 만들었다. '휴먼(Human), 히스토리(History), 홍대(Hongdae)'의 앞 글자로,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지역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장 대표는 강조했다.

"관이 주도하는 도시공간은 우리의 생각과 반대로 가죠. 지역과 공간부터 만들어놓고, 거기에 사람을 채우려고 해요. 대표적인 예가 세종시죠. 공간을 만들면 과연 진짜 '사람'이 채워질까요? 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생각 아래에서 제대로 된 문화가 꽃필까요? 피맛골을 보세요. 수평적이었던 공간에 거대한 빌딩이 들어서고, 더 이상 이곳의 자생력을 기대하긴 힘들어졌죠. 비뚤비뚤한 골목이 없다면, 켜켜이 축적된 공간이 없다면, 이 공간과 함께 하던 사람이 없다면 문화가 스며들 수 없죠. 그런 점에서 아직 홍대 앞은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애초 싼 동네에 모인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던 이곳이 쉽사리 자본에 무릎을 꿇지 않으리란 기대를 장 대표는 갖고 있었다. 장 대표는 그 근거로 대표적인 문화 도시로 꼽히는 신사동 가로수길과 홍대 앞의 차이점을 비교했다.

"가로수길은 선입니다. 홍대 앞은 면이죠. 가로수길이 일직선으로 뚫린 길로 상징된다면, 홍대 앞을 상징하는 건 (역시 직선으로 뚫린)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라 골목이죠. 골목이 화두고, 관건입니다. 특정한 골목의 조그만 가게, 개성 넘치는 주인이 '하고 싶어서' 여는 벼룩시장에 사람이 모이고, 위안받고, 소비합니다. 도시의 색깔은 주류언론이, 자본이 외면하는 이런 장소에서 나오죠."

물론 홍대 앞의 급속한 상업화, 자본화 역시 그는 우려한다. 이런 고민이 <스트리트 H> 창간 3주년 기념 특별호에 담겼다.

방파제가 필요할 때

<스트리트 H>는 3주년 특별기획으로 6월호에 '홍대 앞에서 10년 이상 버티어 온 쥔장들과의 좌담회', '지난 3년간 홍대 앞에서 사라져서 그리운 곳들' 등의 기획기사를 실었다. 오랜 기간 홍대 앞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이들이 밀려드는 대자본과 맞서며 가진 고민, 점점 올라가는 임대료와의 싸움에서 갖게 된 두려움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이번 호에 담겼다.

<스트리트 H>는 이번 기획에서 '홍대 앞을 망치는 4주적'을 정했다. 거대 상업자본, 부동산업자, 권리금 장사를 노리는 자영업자, 지자체가 그들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을 순 없죠. '이 동네는 문화지역이니 핸드폰 장사치는 들어가지 마시오'라고 할 순 없어요. 그러면 민속촌이 되지, 문화지역이 되진 않으니까요. 그러나 지자체가 지역의 자생적 문화가 숨쉴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건 반드시 필요해요. 다가오는 파도를 견뎌줄 방파제가 있어야 하죠."

홍대 앞 예술가, 자영업자들 사이에 유달리 연대의 고민이 많은 이유다. <스트리트 H>의 이번 기획에도 이런 고민이 묻어났다. 여러 업소가 뭉쳐서 장기임대를 추진하자는 얘기가 실렸다. 장 대표부터 연대의 실천에 인색하지 않다. 독립잡지를 만들려는 이들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장터를 찾고, 지역 가게와 상생을 도모한다.

특히 '홍대 앞'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개성 공동체'를 지탱하는 소소한 가게에 대한 <스트리트 H>의 사랑은 남다르다. "홍대 앞에 오면 골목길 카페를 가자!"는 구호 아래 지역 카페를 사랑하는 문화인들의 자발적 도움을 받은 스티커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홍대 앞 가게의 주인들은, 물론 자영업자이지만 동시에 '지역적 취향의 생산자'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홍대로 오는 이유, 홍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는 이들이 내세운 취향에 사람들이 호응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양한 취향이 만나는 곳이 바로 홍대 앞이죠. 유난히 이 지역 자영업자 중 전직이 '수상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에요. 독립영화 감독이 운영하는 밥집, 건축소장이 차린 술집이 있습니다. 생계형 창업과는 약간 다른, 문화적 취향의 적극적 발현이 일어나는 거죠."

▲<스트리트 H>를 대표하는 콘텐츠인 'STREET H 지도.' 매달 업데이트되는 이 지도는 자본의 유입으로 점차 넓어지는 '홍대 앞'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스트리트 H> 제공

지도, 가장 오래된 '존재정보'

이런 애정이 가장 잘 묻어난 게 바로 <스트리트 H>를 대표하는 콘텐츠이자,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서도 만날 수 있는 'STREET H 지도'다.

매달 서너명의 편집기자가 발품을 팔아 합정동, 서교동, 동교동, 상수동 등 인근에 새로 생겨나는 가게, 사라지는 가게를 일일이 조사해 지도를 만든다. '홍대 앞'이 상징하는 지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이 지도에 표시되는 가게의 범위는 이제 양화로를 넘고, 당인리발전소에까지 이르렀다. 지도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홍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하는 셈이다.

이 지도의 표기에는 원칙이 있다. 주로 카페와 랜드마크, 클럽 등이 표시된다. 프랜차이즈점, 대자본이 세운 장소는 표기하지 않는다. 옷가게도 다루지 않는다. 유명 연예인이 세운 가게도 당연히 다루지 않는다. 장 대표는 지도가 가진 의미에 처음부터 주목했다.

"지도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인포그래픽이죠. 단순히 보면, 물론 지도는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 지도에 시간이 축적되면 '존재정보'가 됩니다. 어떤 것이 있었는지,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되죠. 특히나 홍대처럼 수많은 가게의 얼굴이 변하는 지역에서 지도가 가진 의미는 남다릅니다."

이 잡지의 이번 특별호는 지도에 색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지난 3년 사이 홍대 앞에서 사라진 가게들을 빼곡이 표시한 지도를 따로 만들었다. 이 지도엔 홍대를 찾는 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장소였던 쌈지스페이스, 리치몬드 과자점, X세대 김밥, 안녕바다 등이 표기돼 있다. 그 아래에는 이곳들을 추억하는 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남긴 아쉬움이 절절이 묻어나 있다. 지도가 단순한 정보매체가 아닌, 사람들의 정서까지 움직였음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6월, 창간 2주년 기념으로 전시회를 할 때도 가장 많은 이들이 감동한 게 우리의 지도였어요. 프로젝터로 지난 24개의 지도를 순차적으로 보여줬죠.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졌고, 새로 생겨난 거죠."

'아이 러브 홍대'는 왜 없을까

올해부터 <스트리트 H>는 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제작비도 건지지 못한다. 여전히 독립잡지가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어찌됐든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다면, 소중한 동네 잡지가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홍대 앞의 정서가 담긴 가게가 있었으면 해요." ⓒ프레시안(최형락)
"결국 자립 토대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제대로 자리 잡아야,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전범이 될 수 있으니까요. <스트리트 H>를 유가지로 전환할 수도, 광고의 양을 크게 늘릴 수도 없다면 그간 우리가 쌓은 정보를 적극 활용해야죠."


<스트리트 H>는 이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 두달 안에 지금의 블로그 형태가 아닌, 제대로 된 홈페이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목표는 일종의 '타운포털(town portal)' 개념이다. '네이버'에서 누구나, 모든 정보를 넓게 검색할 수 있다면, <스트리트 H>의 홈페이지는 적어도 '홍대 앞'에 관한 어떤 정보든 다 찾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게 장 대표의 생각이다.

복합공간을 마련하는 것 역시 장 대표의 오랜 숙원이다. 홍대 인근에서 열리는 인디밴드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 지친 이들이 발걸음을 쉬면서 커피를 마시고, <스트리트 H>의 지도를 보고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작은 전시회도 열리는 공간이 있었으면 싶단다.

"반드시 '홍대 앞'의 정서가 담긴 가게가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가칭 '스트리트 H 스팟(spot)'이라고 부르고 다닙니다. '홍대 앞'을 파는 것도 중요해요.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로고가 박힌 갖가지 상품이 있는데, 홍대 앞을 상징하는 건 없죠. 문화적으로 더 노출시키고, 더 확산시키고, 더 연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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