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총리의 경제현장 시찰 보도는 사실 내용 자체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최영림 총리의 최근 행적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최 총리가 지금 북한에서 가지는 역할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 최영림 북한 총리가 남흥청년화학 연합기업소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
82세 최영림 총리, 북한 전역 산업현장 시찰
<조선중앙TV>의 보도를 보면, 최 총리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올 1월부터 6월 초순까지 30여 차례나 각지의 경제현장을 시찰한 것으로 나타난다. 탄광과 발전소, 간석지에서부터 농장과 연구소, 대학 건설현장에 이르기까지 각종 산업현장에 대한 시찰을 계속하고 있으며, 시찰 지역도 황해도와 자강도, 함경도와 평안도 등 전국을 망라하고 있다.
최영림 총리의 시찰은 김정은 제1비서의 시찰과 비교하면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 김정은 제1비서는 올 들어 6월 초순까지 모두 80차례의 공개활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가운데 경제부문 시찰은 13차례에 불과하다. 경제부문 시찰도 그나마 만경대 유희장이나 개선청년공원 유희장, 아동백화점과 같은 생활과 여가 관련 시설이 대다수고, 산업시찰이라고 할 만한 것은 허철용 기계공장(1월 22일, 5월 1일 보도)과 대관유리공장(5월 1일 보도) 방문 등 세 차례에 불과한 실정이다.
▲ 김정은 제1비서의 공개활동 현황 (2012. 1. 1 - 6. 12,). 자료:통일부. |
최영림 총리의 경제현장 시찰은 사실 지난해초부터 시작됐지만 지난해의 경우 '총리도 경제현장을 다닌다'는 의미 외에 큰 주목을 받기는 어려웠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각종 산업현장을 둘러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145회의 공개활동 가운데 경제부문을 61회나 시찰했는데, 북한 전역의 공장과 연합기업소, 농장들을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 제1비서가 권력을 잡게 되면서 산업현장 시찰은 거의 총리의 몫으로 넘어간 형국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김정은 제1비서는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산업시설을 거의 찾지 않았고, 그 몫을 82세의 최 총리가 노구를 이끌고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군대와 인민생활 관련 부분은 김정은 제1비서가 챙기고 경제는 최영림 총리가 챙기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됐을 수도 있다. 갓 권력을 잡은 김정은 비서가 모든 것을 총괄하기는 힘에 부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과 같은 체제에서 최고지도자의 손길이 많이 미치지 못하는 분야는 자원 분배에서도 우선순위를 잃고 당국의 주요 관심사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최영림 총리의 경제 챙기기를 정치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 총리가 경제 부문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 별다른 성과가 나지 않을 경우 책임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김정은 비서가 경제 부문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지 않은 것은 경우에 따라 북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경제 부문에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 총정치국장, 건설현장까지 보폭 넓혀
최영림 총리의 행보 외에 또 한가지 주목해 볼 부분은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움직임이다. 4월 당대표자회 직전에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된 최룡해는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을 맡으며 김정은 체제의 최대 실세로 부상했는데, 군내의 당조직을 관할하는 본연의 업무 외에도 평양 지역의 건설현장을 찾는 등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조선중앙TV>의 보도로 보면,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4월 이후 적어도 7차례 평양민속공원이나 만경대유희장 건설현장 등을 시찰했다.
▲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평양민속공원 건설장을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
김정은 제1비서가 5월초 만경대유희장의 관리부실을 질타하면서 최룡해 총정치국장에게 건설책임을 맡긴 것처럼, 최룡해 국장은 김 비서가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인민생활 관련 분야의 건설을 관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최 국장이 업무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은 김정은 체제에서 그만큼 잘 나간다는 방증이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질 범위가 넓어진다는 측면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 한참 기세를 올리고 있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 희생양이 될 지 모른다는 얘기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김정은 제1비서는 최고지도자로서의 상징적 행사(김일성 출생 100주년, 소년단 창립절 등)와 군부대를 주로 챙기면서, 나머지 분야는 역할을 분담하는 통치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에게 업무가 집중되는 것을 막으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리더십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최악의 경우라도 김 비서의 리더십이 곧바로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김정은 비서의 리더십이 아직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반증으로도 보인다.
* 북한학 박사인 안정식 기자는 SBS에서 한반도 문제를 취재, 보도하고 있으며 북한포커스(www.e-nkfocus.co.kr)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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