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이라는 발언에 담긴 함의는 꽤 심오하다. 북한이 지난 4월 장거리 로켓을 시험발사한데 이어 최근에는 대한민국 언론사 등을 겨냥해 타격을 경고하는 등 북한의 도발 위협이 부쩍 느는 것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북한의 도발 위협이야 늘 있어왔던 일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을 특정한 것이라기 보다는 국내의 어떤 정당과 세력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은 틀림없이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의 당권파와 탈북자 비하 발언 논란에 휩싸인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 등일 것이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의 과점언론은 이들을 종북주의자로 낙인찍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맹공을 퍼붓는 중이다. 통진당 내 당권파가 저지른 부정경선과 고작해야 부적절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상당할 임수경 의원의 발언을 종북(從北)으로 치환시키는 박근혜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의 과점언론의 능력은 확실히 놀라운 데가 있지만, 이들의 속내는 너무 뻔하다.
박근혜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의 과점언론이 벌이고 있는 21세기판 빨갱이 사냥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딱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대선전략에 불과하다. 종북 프레임으로 야권 전체를 포획해 무당파의 외면을 유도하고, 야권연대를 견제하며, 통합진보당의 근본적인 혁신을 방해하겠다는 것이 박근혜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의 비대언론의 노림수라는 말이다. 헌정질서 파괴 운운하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박근혜 새누리당과 조중동 등의 비대언론의 기획과 공격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이 대통령이 정권재창출을 위해 합법의 범위 내에서 노심초사하는 건 그의 자유다. 하지만 국내의 특정 정당과 정파와 세력을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건 온당치 않을 뿐 아니라 매우 부적절하다. 이 대통령는 통진당 내의 당권파와 임수경 의원 등이 대한민국 헌정을 부정하고 체제를 전복하며 북한과 내통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런 증거가 있다면 당장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 만약 그런 증거도 없이 이들을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자들"들로 규정짓는다면 이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선동이며, 이들에 대한 인격살해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 내에 행동하는 종북주의자들이 존재하는지, 평양을 사상의 수도(首都)로 간주하는 자들이 있는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자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설사 그런 사람들이 있다해도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리고 그 행동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이들에 대한 차별과 처벌은 불가능하다. 그게 우리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와 질서다. 따라서 단지 내심(內心)의 기도(企圖)나 생각, 신념 등을 이유로 특정인을 차별하거나 검증이라는 형식을 빌어 마녀사냥을 하거나 처벌을 하려는 사람과 무리들이야말로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들이다.
몽상가들은 몽상을 하도록 놔두면 그만이고, 인지부조화는 죄가 아니다. 정작 지금의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건 상상 속의 종북주의자들이 아니고 이 대통령다. 대한민국 헌법의 3대 구성원리라고 할 수 있는 민주국가 원리, 법치국가 원리, 사회국가 원리를, 1%만을 위한 민주주의, 법에 의한 지배, 부자공화국으로 변질시킨 게 이 대통령아닌가? 임기 내내 헌정질서를 위협해 온 이 대통령이 헌정질서 파괴를 걱정하는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기괴하게 느껴지기조차 한다.
▲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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