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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가격'은 과연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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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가격'은 과연 얼마인가?

[이정전 칼럼] "FTA 이후에도 떨어지지 않는 수입품 가격"

보통 명품이라고 하면 입고 다니는 옷이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소품들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유모차에도 명품이 있다고 한다. 수백만 원 호가하는 명품 유모차를 끌고 나오면, 이것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기가 죽는다. 명품 유모차는 대부분 수입품들인데, 그 국내 판매가격이 원산지나 외국의 판매가격에 비해서 턱없이 비싸다고 주요 일간신문들이 요란하게 보도하였다. 심할 경우, 수입 유모차의 국내 가격이 생산 현지 가격의 2.2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중 가격이 생산원가보다 훨씬 높다는 얘기가 아닌가.

비단 유모차뿐이 아니다. FTA가 체결되면, 수입관세가 크게 인하되면서 수입 양주와 포도주 가격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떠들었지만 실제 시중 가격은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시장조사 결과가 신문과 TV에 보도되었다. 외국에서 양주나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국내 가격이 어처구니없이 비싸다고 불평한다. 얼마 전에는 다리미를 포함한 각종 가정용품들의 가격이 수입원가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원유의 국제가격은 크게 떨어지는데, 시중 주유소 기름 값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올라가고 있어서 주무부서의 장관조차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은 이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커피 한잔에 들어가는 원두의 원가는 2~3백 원에 불과하다는데 시내에서 커피 한 잔 마시려면 4천 원내지 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격을 놓고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시장 가격은 왜 이렇게 원가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비싼가?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분명히 적혀있고, 경제학교수는 학생들이 질력 날 정도로 칠판에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을 노상 그려댄다. 수요곡선은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지불용의액을 나타내는 곡선이다. 예를 들어서, 1000원짜리 라면이 백만 개가 팔렸다는 것은 소비자가 라면 한 봉지 당 최소한 1000원 이상의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에, 공급곡선은 해당 상품을 공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공급비용)을 반영한 곡선이다.

어떻든,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하는 점에서 해당 상품의 가격이 결정된다는 것은 지불용의액과 공급비용이 같아지는 수준에서 시장 가격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듯이 가위의 양날과 같이 수요의 측면과 공급의 측면 모두 똑같이 가격결정을 주도한다면, 소비자들의 지불용의액이 달라지거나 공급비용이 달라지면 가격도 따라서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고 하면,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 공급비용이 하락하므로 시중 주유소의 기름 가격이 떨어져야 하고, FTA로 관세가 인하되면 공급비용이 하락하므로 수입품의 시중 가격이 일제히 떨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통 운송수단의 발달로 운송비도 저렴한데, 명품을 비롯한 수입품의 시중 가격이 수입원가의 두 배가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한 백화점 명품관. ⓒ뉴시스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가장 흔히 꼽히는 이유는 독과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의하면, 독과점기업은 의도적으로 공급량을 감축함으로써 공급비용보다 높은 수준에서 시중가격이 형성되도록 여건을 조성한 다음 이른바 독점이윤을 취하는 기업이다. 주유소의 기름, 명품을 비롯한 각종 수입품들은 소수의 기업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이런 상품들의 가격은 공급비용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공급자들이 높은 가격을 책정하더라도 이 가격을 기꺼이 치를 용의가 있는 소비자들이 충분히 많다면, 공급자는 거리낌 없이 원가의 두 배 이상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다. 결국 이들이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은 공급비용과 관계없이 소비자들의 지불용의액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말은 수요의 측면이 가격 결정을 주도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농수산품을 제외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대부분을 독과점 업체들이 공급한다. 자동차도 그렇고 각종 가전제품들도 그러하며, 일상용품의 상당수가 그러하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농수산품을 제외한 대부분 상품들의 가격은 공급비용과 별 관계없이 소비자들의 지불용의액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현실은 경제학 교과서가 말하는 것과 사뭇 다르게 움직인다. 사실 경제학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보면, 자불용의액과 공급비용이 똑같이 상품의 가격결정을 주도한다는 이론은 비교적 그 역사가 짧다고 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가 경제학을 창시한 이래 약 100년 간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고전경제학 학자들은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공을 많이 들인 것은 값지고, 힘들이지 않고 만든 것은 싸구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생산비(공급비용)라는 뜻이다. 그러나 19세기 초반에 이르러 경제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고전경제학은 그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 새로운 바람을 주도한 신진 세력을 흔히 초기 신고전학파라고 부른다. 이들은 상품의 소비로부터 얻는 즐거움의 크기가 곧 상품의 가격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천연 진주가 비싼 이유는 잠수부가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수고를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부잣집 마나님들을 미치도록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마나님들이 없다면, 잠수부가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뛰어들 일도 없다. 설령, 아무런 노력이 없이 생산되었다고 해도 우리 인간의 욕망을 많이 충족시키는 상품의 가격은 비싼 반면, 아무리 많은 땀을 흘려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을 즐겁게 해주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상품이란 결국 우리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이 능력을 효용이라고 한다. 지불용의액은 바로 이 효용에 대하여 기꺼이 지불하는 금액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독과점이 성행하는 상황에서는 지불용의액이 상품의 가격 결정을 주도한다는 초기 신고전학파의 이론이 상당한 정도로 옳아 보인다.

요컨대, 초기 신고전학파의 주장은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인간의 노력보다는 결국 인간의 욕망이 상품의 가격 결정을 주도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고 경제학 교과서에도 쓰여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물질적으로 풍부해지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인간의 욕망이 '무절제한 탐욕'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사회나 물자가 풍부해지고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으레 사치품의 생산이 크게 증가하면서 국민총생산에서 사치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대부분의 사치품은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요, 따라서 사치품의 가격에는 인간의 탐욕이 잔뜩 묻어 있다. 흔히 우리나라 부동산의 가격에는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고 말하는데, 이 거품은 투기로 한 목 잡아보려는 탐욕으로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는 미국인의 비합리적 탐욕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무절제한 탐욕으로 잔뜩 부풀러 올랐던 부동산가격과 파생상품 가격의 거품이 푹 꺼지면서 미국의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이 와르르 무너졌고 이것이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여기에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현실의 시장에서 상품의 가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일단 접어두자. 모든 상품의 가격이 그 상품의 생산에 투입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인가 아니면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결정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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