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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년, '대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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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 100년, '대만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中國探究]<137>

올해로 중국의 신해혁명이 100주년을 맞았다. 쑨원(孫文) 그룹이 주도해 온 혁명은 1911년 12월 2일 중국의 각 성(省)을 대표하는 인사가 모여 "중화민국임시정부조직대강(中華民國臨時政府組織大綱)"을 통과시키고, 12월 25일 난징(南京)에서 쑨원 자신이 임시정부 대총통에 취임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신해혁명은 아편전쟁 이후 혼란을 거듭하고 있던 중국 사회에 나타난 근대 기획의 일환이었다. 태평천국운동, 신유정변(辛酉政變), 양무운동(洋務運動), 변법유신(變法維新),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 등 여러 근대 기획들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신해혁명의 성공은 근대 중국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 신해혁명 100주년

물론 이듬해에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군벌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군벌은 복벽(復辟), 즉 황제 체제로의 복귀를 꾀함으로써 신해혁명의 성과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때문에 신해혁명이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신해혁명은 청조의 왕정을 종식시키고 입헌공화제를 채택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봉건'의 단절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근대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중국 근.현대사에 관한 마오쩌둥의 인식에 따르면, 신해혁명은 이른바 구민주주의 혁명의 대표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5/4운동 이후를 '신민주주의 혁명'으로 간주하는 경우, 그 주체는 무산계급과 인민대중이며, 성격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봉건'의 구체적인 함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토론이 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볼 때 신해혁명은 반봉건주의라는 맥락에서는 이른바 '신.구 민주주의 혁명'의 교량 역할을 한 셈이다.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은 올해 국내 중국학계에서도 이를 기념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학술회의가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대한중국학회와 중국인문학회, 한국중국문화학회가 "신해혁명 100주년과 중국"을 주제로 공동 학술회의를 열었고, 현대중국학회와 중국현대문학학회 등도 관련 학술대회를 열었거나 준비 중에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대만연구센터를 창립하고 '중화민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한-대만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는 한편, 향후 대만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사회주의 중국의 수립과 더불어 대륙에서는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건국을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대만은 여전히 그 법통을 잇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 내부의 논쟁과 관계없이, 또 대만의 국제적 위상과 관계없이 대만이 여전히 현실적인 한 주체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대만 연구의 방법과 관점, 그리고 태도를 지속적이고 실천적으로 확인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이 날로 가속화하고 있지만, '화어권(華語圈) 문화'의 변화가 중국 내륙의 내재적 동력만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대만, 동남아시아, 구미 등지에 퍼져 있는 '화어 문화'의 주체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반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내륙 중국 문화에 큰 외부 자극제로 작용하면서 기존 문화에 충격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둘째, 대만을 중심으로 한 화어권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중국 인식에 균형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의 대만 인식은 한-중 수교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태도가 갈린 채, 성찰과 수정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수교 이후 대륙 중국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학계의 관심과 연구는 일방향적 지향을 보여 왔다. 그것은 일종의 '현상학적 인식의 오류'와도 같은 것이었다. 마치 현존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인식적 오류가 암암리에 존재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오류를 수정하고 성찰해야 할 때가 됐다.

셋째, 이런 인식론적 성찰은 소수 문화(minority culture)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된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의 문제라고도 말할 수 있다. 주변과 중심 사이의 긴장과 충돌, 협력과 융합 등 역학 관계의 형성은 특정한 문화장(場)이 유지, 형성, 변화하는 데 긴밀한 상관성을 가지고 있다. 주변은 언제나 중심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이미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주변'은 그 자체로 '마이너리티', 즉 소수임으로 인해 자신만의 독립적이고 혼성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이에 대한 논의는 주변과 중심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며, 화어권 문화의 다원화, 다변화에 대한 담론들을 펼쳐 놓게 될 것이다.

넷째, 화어권 문화 형성의 '종축(縱軸)' 구조로서 대만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 내륙과 대만을 잇는 홍콩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러한 '종축' 구조로서의 중국 연구는 새로운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 우선 세 지역은 통시적, 공시적 차원에서 각기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내륙의 문화 지리적 특성은 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실험 및 조정으로 대변되는 근대성(現代性), 홍콩과 대만 문화의 서구성과 식민성, 혼종성 등은 화어권 문화의 주요한 특징을 드러내는 요소들이다. 특히 개혁개방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조정기 이후, 내륙 중국을 향한 홍콩 및 대만의 문화적 도전은 적절한 긴장과 협력을 거듭하고 있다. '안티(anti)' 혹은 '멀티(multi)'로서 홍콩 및 대만 문화는 내륙 중국의 문화와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다원화의 한 축을 역동적으로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학자들에게 대만 이야기를 꺼내면 하나같이 정치적 민감성을 언급한다. 대만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정치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적어도 두 가지 정치적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첫째는 대륙과의 관계 설정과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태도다. 둘째는 대만 내부의 이른바 '통.독' 논쟁, 즉 통일이냐 독립이냐 하는 논쟁에 대한 입장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우리의 대만 인식에는 대륙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설정에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대만 내부의 불필요한 논쟁 속에 휘말려서 곤란해지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때문에 외교가나 학계에서는 웃지못할 해프닝도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학문 연구의 가치중립성을 새삼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나는 인문.사회과학의 가치중립성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를 다시 묻고 싶다. 1992년 이후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우리의 대만 인식에 대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우리의 중국 이해 또한 더 크고 온전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대만에 대한 인식의 전환 과정은 물론 다양한 갈등과 충돌을 수반하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대만에 대한 인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어느 영역에나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럴 때마다 중국인들의 지혜가 담긴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태도를 자기화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둘러친 자기 검열의 그물을 하루빨리 걷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국내 대만 연구가 가일층 분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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