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을 조금 더 빨리 떨어지게 하려고 인플레 목표치를 높이라는 주장은 매우 무모하다. (학자 시절) 당시나 지금이나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대한) 내 견해는 완전히 일치한다."(벤 버냉키, 4월 25일 기자회견에서 크루그먼의 주장을 반박하며)
미국 경제를 놓고 벌이는 두 저명 경제학자의 논쟁이 최근 가열되고 있다. 현재 침체된 미국 경제의 해법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주인공이다.
시장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정부의 적절한 개입을 요구하는 프린스턴대 경제학파가 배출한 두 경제학자는 과거 경기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에 과감한 통화정책을 주장해 온 '동지' 사이다. 하지만 2005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버냉키가 금융위기 이후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취한 후 추가 양적완화 의지를 보이지 않자 크루그먼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로버르 새뮤얼슨은 칼럼에서 턱수염을 비슷하게 기른 두 경제학자의 논쟁이 "수염들의 싸움"이라고 불린다면서 상반되는 주장을 알기 쉽게 풀어 소개했다.
▲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왼쪽)과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로이터=뉴시스 |
크루그먼은 버냉키가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너무 소극적이며, 이는 학자 시절의 소신을 저버렸다고 주장한다. 경제위기 이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졌던 연준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두 번의 양적완화 조치를 취했지만 경기를 반전시키지 못했다. 실업률은 지난해 말부터 하양세로 접어들었지만 그 속도는 완만한 편이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연준이 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은 인플레이션', 즉 제3차 양적완화다. 달러를 더 찍어내서 시중에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로 잡고 있는 2% 대신 4%를 택한다면, 소비자들과 기업들은 나중에 가격이 더 오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라는 논리다.
크루그먼은 또 기준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게 유지된다면 물가수준을 고려한 실질이자율은 더 낮아지기에 대출을 받을 유인도 더 많아진다고 주장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출금의 실제 가치를 낮추기 때문이다. 대출금 부담이 덜해지면 민간과 기업은 좀 더 자유롭게 지출하게 된다.
새뮤얼슨은 이 같은 크루그먼의 주장에 몇몇 경제학자들이 지지를 표하지만 버냉키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다.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되지 않으면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심해지고, 이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게 그의 논리다. 칼럼은 기업활동의 위축은 일자리 상황과 연관되기 때문에 연준은 실업을 줄이기 위해 이자율을 낮추는데 공격적으로 임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새뮤얼슨은 여기에 더해 물가가 오르면 노동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줄어든다는 점, 1970년대 고물가 현상처럼 물가상승 기대 자체가 소비자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는 점 등을 들어 크루그먼의 주장에 추가적인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뮤얼슨은 "크루그먼의 주장이 맞을 수 있다"면서도 "이번 논쟁에서는 버냉키의 편에 설 것"이라고 밝혔다. 크루그먼의 양적완화 요구가 현재의 실업과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지만, 과거 사례를 볼 때 기대 인플레이션의 변화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 근거다.
그는 "2008년 이후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연준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고 욕심이 과한 목표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보장한다는 것"이라며 "더 큰 교훈은 경제학자가 (경제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을 과장한다는 점에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버냉키는 최근 고용시장 개선을 위해 3차 양적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둬 둘의 논쟁이 누구의 승리로 마무리 될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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