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기동 단편선 [백년]. ⓒ단편선 |
'인디의 인디'라고 불러도 될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대표하는 이이자 그 치열했던 두리반 점거 투쟁에서 음악인들을 끌어모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회기동 단편선(이하 단편선)은 채 서른이 되지 않은 젊은 뮤지션이다. 그리고 그 전에 그는 대중음악웹진 <보다>에서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선보였던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백년]은 이제 단편선을 단순히 '포크 뮤지션'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온라인에 선 공개돼, 장르음악에 관심있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던 <이상한 목>부터 변화가 드러난다. (그의 취향으로 미뤄보건대) 북유럽 헤비메탈과 인디팝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드라마틱한 곡 전개과 탁해진 목소리는 '맑았던' 예전의 곡에서 찾아볼 수 없던 그로테스크함을 듣는 이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이상한 목>과 같이, [백년]에 수록된 모든 곡은 일관된 정서, 곧 낙오자의 비애와 체념, 현 세태에 대한 (끼어들지 못하는) 관찰자로서의 매마른 감성을 가득 담고 있다. <이상한 목>이 점증되는 불안정성과 파괴적 이야기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극단적인 변화로 곡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하는 <소독차>의 괴이함은 여태껏 '루저의 정서'를 불렀다고 알려진 어떠한 국내 포크 뮤지션보다 더 신선하다.
자기파괴적이고 체념적인 정서는 단편선이 예전에도 쥐고 있던 주제였다. 그러나 이 앨범에 들어찬 다양한 효과음과 풀 밴드 구성이 주는 낙차 큰 정서적 고저는 앨범을 듣는 이가 일관된 분위기에 집중케 하고, 흐릿한 음질에도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불어넣었다. 도시에서 자란 단편선이 소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서정성이 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다. [백년]은 음악인의 욕심이 효과적으로 전달된 몇 안 되는 앨범 중 하나이며, 이는 과장된 감정 전달로 듣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주류 팝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수준에 가 닿아 있다.
<빙빙빙>과 <동행>이 보여주는 가사쓰기는 [백년]이 한국 포크의 물줄기에 포함된 작품임을, <백치들>의 비관적 정서는 이 앨범이 희망없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의 작품임을 보여주며, <이상한 목>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단편선이 본 이베어(Bon Iver)의 대중적 변화와 (비록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록 적잖은 대중은 이 어두운 정서를 공감할 기회를 놓치겠지만, 좋은 음악을 찾아듣는 이에게 단편선은 중요한 이름이 될 것이다. 탁월한 앨범이다.
Fun. [Some Nights]
▲펀.(Fun.) [Some Nights]. ⓒ워너뮤직코리아 |
[Some Nights]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색채의 음악에 퀸의 드라마틱한 정서를 흩뿌려 카피캣의 함정을 여유롭게 피했다.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We Are Young>은 악절이 선명하게 나뉘는 곡 구성에서 보여지듯, 퀸 특유의 뮤지컬 사운드가 인디 록과 만난 사례다. 근래 가장 중요한 소울 뮤지션으로 떠오른 자넬 모네(Janelle Monae)가 참여한 이 곡은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세상에 알려진 나름의 스토리를 갖고 있다.
비트를 샘플링해 놓은 <It Gets Better>는 록의 질주감과 최근 어떤 '경향'이라 부를만한 인디팝의 전자음악 사랑을 맛볼 수 있는 곡으로 중독적인 후렴구가 대중성을 얻어냈다. 아예 <All Alone>은 곡의 시작부터 주류 힙합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곡이며, 인트로(Intro)에서 이어지는 타이틀 트랙은 퀸에 대한 노골적 오마주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를 비롯해 유럽의 인디팝에 대한 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른(매체가 띄운)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비욘세(Beyonce) 등과 작업한 제프 바스커는 이 앨범의 프로듀서로서 밴드가 다양한 뿌리에 함몰되지 않고 일관된 정서, 곧 역동감 넘치는 밝은 기운을 정제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귀에 곧바로 박히는 곡을 찾기 힘들지만, 앨범을 듣고 난 후 재생버튼을 다시 누르게 하는 힘은 전적으로 프로듀싱의 승리다.
[Some Nights]는 주류 팝의 넘치는 감정 변화와 인디 팝의 다양한 아이디어, 클래식 록의 서정성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늦은 봄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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