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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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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죽음

[한윤수의 '오랑캐꽃']<372>

베트남 사람 휴엔.
한국말도 잘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한국인 여직원들과는 누나 동생 하고 지낸다. 옷을 깔끔하게 입고 센스도 있어서 인기가 좋다.

휴엔 때문에 노동부에 출석해야 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못 받은 퇴직금이 4백만 원이나 되니까.

출석하기 전날 휴엔에게 전화했으나 받지 않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전혀 연락이 안되어 결국 진정을 포기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어서 유골을 가지고 베트남에 다녀왔단다.

사건은 이렇게 된 것이다.
동짓달 추운 밤의 발안사거리. 휴엔은 친구 세 명과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다 건너기도 전에 쿵 소리가 났다. 맨 뒤에 오던 친구가 차에 치었다. 즉사였다.
죽은 사람은 하떠이(河西)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 및 보상절차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친구의 사장과 휴엔의 사장이 잘 아는 사이였기에, 두 사장이 다 아는 베트남 사람 휴엔에게로 모든 숙제가 떨어졌다.
"니가 좀 맡아줘야겠어."
휴엔은 시신을 수습하여 베트남에 다녀오느라 한 달 여를 썼다.

또 사망보험금을 타내는데 왜 그리 서류가 많은지. 경찰서와 병원과 보험회사 두 곳과 그밖에 사장님을 따라 다닌 이름 모를 기관에서 서류를 작성하느라 또 한 달을 소비했다. 베트남 오고 가고, 여기저기 택시 타고 다닌 모든 경비를 그가 썼다. 두 달 동안 일을 하지 않아 휴엔은 전혀 수입이 없었다. 월급을 안 주는 걸 어떡해. 돈이 없어 아는 친구에게 3백만 원을 빌렸다. 그 돈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죽은 친구의 가족에게 돈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죽은 친구의 아버지는 *북폭 때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철부지나 다름없고, 엄마도 폭격 당시 실명한 장님이어서 의지가지없는 신세니까.
결국 사태를 수습하고 다 끝냈을 때 휴엔에겐 빚만 3백이 남았다.
내가 그 동안 노동부에 다시 진정하여 퇴직금 4백을 받아주었지만, 그 퇴직금이 빚 갚는데 거진 다 들어갔다.

*마음고생이 심한 데다가 그는 이제 지쳤다.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친구가 죽은 데다 자기 돈을 다 잡아먹은 곳이니까.
떠나고 싶다.
발안 거리거리가 친구의 손때가 묻은 곳이라 안 좋은 추억을 떠오르게 하므로 더욱 그렇다.
또한 사체검안서를 가지고 베트남 가서 사망신고도 해줘야 한다.

원래 체류기한은 금년 말까지다.
하지만 그가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가라고 했다.
가서 쉬라고!

*북폭 : 1965년부터 1973년 사이에 북베트남에 가한 미군기의 대규모 폭격. 하떠이는 수도 하노이 바로 옆이라 피해가 아주 심했다.

*마음고생 : 베트남 다녀와서 서류 떼러 다니던 즈음,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제 돈만 들어가고. 속상하지! 더구나 사고 100일째 되는 날, 고향에서 안 좋은 소식이 왔다. 무당이 초혼굿을 하면서 망자의 영혼을 불렀다는데 영혼이 오지 않았단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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