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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개인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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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떨어진 개인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했나?

[이태경의 고공비행] 영화 <화차>(火車)를 보고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다

변영주 감독이 만든 <화차>(火車)를 보는 시간들은 무참했다.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를 소망했던 한 여성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괴물이 되고 결국에는 자살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니 그 후에도 내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하나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정과 개인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동안 국가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이 바로 그 생각이었다. 외환위기로 중소자영업자들이 무더기로 몰락할 때, 금융권의 문턱이 너무 높아 가계와 개인들이 어쩔 수 없이 악덕사채업자들의 사채(私債)를 쓸 수 밖에 없을 때, 그 가계와 개인이 (너무나 당연히)고리대를 갚지 못해 생명마저 위협당하거나 잃을 때, 국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국가는 지옥에 내던져져 괴물이 된 여주인공을 체포할 때에야 비로소 등장한다.

모름지기 국가는 시민들이 안온하고 예측가능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정치적, 경제적, 법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다.

하지만 <화차>(火車)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과 그 가족들은 무국적자와 다름없는 신세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나 도움도 받지 못한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했지만, 그들에게는 나락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잘못된 정책판단과 결정으로 그들이 파산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고, 중소자영업자와 서민들에 대한 금융배제를 교정하려는 이렇다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 이들이 사채업자들의 먹잇감이 되는 걸 방치했으며, 사채업자들이 채무자들에게 강요하는 위법적인 대부계약 체결과 악질적인 추심행위를 방관했다.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처한 개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채업자들에게 모친을 잃고 남편과의 이혼을 강요당한 후 사창가에 팔려갔다 겨우 탈출한 <화차>(火車)의 여주인공은, 사채업자들의 집요한 추적을 뿌리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술집 종업원을 살해하고 그녀로 살아가고 행복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절벽으로 곤두박질친다.

불의와 악이 만연하고 구조화된 사회의 가장 무서운 점은 폭력과 악이 강자로부터 약자에게로, 약자에게서 다시 최약자에게로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강자에게 모든 걸 부당하게 빼앗기고 능욕당한 약자는 최약자를 상대로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약자는 괴물이 되고 지옥에 떨어진다. <화차>(火車)의 여주인공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살해한 순간, 그녀는 야차가 되고 고통의 영겁회귀 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당신은 <화차>(火車)의 여주인공이 경험한 삶과 죽음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거나 당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이런 통계는 어떤가? 한국이 100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고 가정할 때,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9명인데 그 중 28명이 정규직 노동자이고, 14명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자영업자가 17명이다. 당연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단연 형편이 좋은 사람은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안정적인 상장 제조업체에 다니는 정규직 노동자는 단 1명에 불과하며, 이 범위를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넓혀 봐도 정규직은 3명에 그친다. 이들조차 해고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이들이 해고되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거나 영세자영업자가 될 것이다.

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고용안정성과 처우 모두 극히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OECD평균 보다 무려 2배나 높은 데다 순이익이 100만원 이하인 업체가 58%, 적자를 내는 곳이 27%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은 그저 연명하는 수준이고 언제든지 극빈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놓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신용불량에도 근접한 사람들이다. 대한민국은 자영업자와 서민들에 대한 금융배제가 강하게 일어나는 나라다. 제도금융권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영세자영업작자들과 서민들은 사금융에 접근할 수 밖에 없고 결국 신용불량자가 된다. '한국대부소비자금융협회'에 따르면 사금융 소비자가 314만명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이는 전체 금융 소비자(3337만 8000여명)의 9.4%에 달하는 숫자다. 한편 빚에 허덕이다가 결국에는 빚 갚기를 포기하고 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건수가 2004년 1만 2317건에서 2005년 3만 8773건으로 급증했다.

즉 대한민국에서 상위 1%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직, 파산, 신용불량, 가정해체, 범죄(가해 혹은 피해)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형편인 것이다.

내게 <화차>(火車)는 국가는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은 어떤 가치와 원리로 구성된 국가를 지향하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국가가 우애와 공존, 협력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성장제일, 우승열패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국가가 공정한 시정경제의 규칙을 세우고 이를 집행하며, 시장생태계의 질서와 순리를 복원하며, 경쟁의 패자와 사회적 약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며 최소한의 인간다운 존엄성을 유지할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선거가 코 앞이다. 당신의 정치적 선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 영화 <화차>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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