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 해안에 대한 가치 공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폭 1.2킬로미터의 한 덩어리 바위로 이뤄진 구럼비 해안 자체의 가치, 또 하나는 '바위 습지'라는 독특한 지형에서 생존하는 생물들의 보전 여부다. 하지만 해군이 기지 건설에 앞서 실시한 환경영향평가서와 사전환경성검토서에는 이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담기지 않아 졸속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10월 제주도의회에 제출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해군은 "주민들의 동의를 득하여 선정된 입지이므로 (입지타당성을) 대안항목으로 미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군기지가 건설된 뒤에도 환경부가 공식 확인한 바 있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서식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사업대상지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강정상수원보호구역이 영향을 받지 않는지 등에 대한 입지적정성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해군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주민 동의'는 강정마을 인구 1900여 명 중 87명이 참석해 결정돼 민주적 절차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구럼비 해안의 실제 환경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제주환경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식물상 조사는 2007년 9월 14일 이뤄졌지만 이날은 제주도가 태풍 '나리'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던 상황이었다. 육상동물상 조사도 2006년 12월과 2007년 4월에 각각 실시됐지만 당시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입지 후보에도 오르지 않았던 시기여서 생태계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 구럼비 바위. ⓒ프레시안(최형락) |
해군이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평가한 자체 기준 역시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군의 2009년 2월 보고서에 따르면 항만입지, 배후지 여건, 문화재 현황, 어업권 현황을 파악한 자체 입지타당성 평가에서 강정마을은 화순, 위미, 월평, 토산보다 단 1점이 앞선 9점으로 최종후보지에 선정됐다. 1점이 앞섰다는 이유로 선두그룹 간의 재검토도 없이 강정마을이 최종 후보지에 선정되기는 항목별 점수 기준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공사과정에서도 해군이 환경영향평가에 따른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은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제주환경연합에 따르면 해군 기지사업단 측은 지난해부터 지하수 관정을 드러낸 채 공사를 강행해 흙먼지 등이 유입되고 있으며 멸종위기 생물 이식 과정도 협의내용에 미치지 못했다.
한편, 기지 찬성 진영에서 '보존 가치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구럼비 바위에 대한 반론도 제기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11일 강정마을회관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문화재청이 2007년 실시한 문화재 기본지표조사에서 구럼비 바위가 문화재로 가치가 높다며 발굴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한 사실을 밝혔다.
또 지난해 10월 문화재청에 제출된 구럼비해안 현장답사보고서가 구럼비 바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대해 황 소장은 "조사위원들이 현장을 30분 둘러보고 몇 줄의 의견서를 낸 내용에 불과하다"며 이 보고서를 작성한 이들도 구럼비 바위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단정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고 주장했다. 황 소장은 기지 공사를 중단하고 구럼비 바위에 대한 정밀조사를 하자고 제안하면서 해군과 문화재청을 문화재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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