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사는 임대아파트를 국립호텔이라 부른다. 주공에서 지어 주공에서 빌려주니 국립이고 밀린 임대료만 내면 언제든지 나갈(check-out) 수 있으니 호텔이다.
이 호텔에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아낙네, 탈북자, 사할린 동포 등 일단의 외국인을 국빈(國賓)으로 모시고 있으므로 국제호텔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최근에 관리사무소에서 우리 X동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 음식 쓰레기를 난간에서 던지는 할머니, 큰 개를 안고 다니며 개똥을 죽어도 안 치우는 사내, 자정부터 새벽까지 싸워서 온 동(棟)을 잠 못 들게 하는 공포의 신혼부부, 무슨 모집공고만 보이면 떼어서 인마이포켓 하는 게시판 훼손범(나) 등 요주의 인물들이 바가지에 깨 엉겨 붙듯 딥다 엉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X동에는 나 같은 악의 축만 사는 게 아니다. 한국 아빠와 베트남 엄마 사이에 태어나, 나만 보면 와락 달려들었다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는 세 살배기 '태양'이 같은 선(善)의 축이 훨씬 더 많아서 주축을 이룬다.
지난 겨울 옆방에 네 식구가 살았는데 불이 나서 한 사람이 죽었다. 나는 죽은 사람보다 산 식구들을 걱정했다. 이 추운 겨울에 집과 가재도구를 잃었으니 어디 가서 몸을 의탁하나? 아마도 친척집 문간방을 전전하겠지?
그로부터 한 달 후 그 집 아주머니와 우연히 마주쳤다.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그녀가 3층에서 탄 것이다. 아무 말도 않고 지나치기가 멋쩍어서 물었다. "요즘 어디서 지내세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3층요." "아니, 여기 3층?" "예. 빈 방을 주데요. 수리 끝날 때까지 살라고." "잘 됐네요. 하지만 수리비는?" "저야 모르죠. 주공하고 보험회사가 알아서 하니까." "가재도구는 있어요?" "예. 보험으로 다 사주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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