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이하 MBC 노조)는 임대근 MBC 기자가 사내 게시판에 올린 편지를 29일 공개했다. '5층에 남아있는 분들에게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글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5층 보도국에 남아서 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보직 간부와 일부 기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임 기자는 편지에서 "김재철 사장이 보직자와 평사원들에 대한 분리정책을 쓰면서 회사는 황량해지기 시작했다"며 "보직자들에게는 무한 혜택과 당근 조치를, 순종하지 않는 평사원에게는 무자비한 징계와 인사조치를 내렸다"고 고발했다.
임 기자는 "김 사장의 책략은 멋들어지게 먹혀들었다"며 "여기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정책과 조직개편 등이 하나하나 뿌리를 내리면서 MBC에는 간부와 평사원, 선배와 후배 간에 소통이 먹통되는 야릇한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당시 보도제작1부장을 맡고 있던 나는 이런 보직자 우대정책이 너무도 낯간지러웠고 자존심이 상했다"며 "내가 사장에게 충성하려고 MBC에 들어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당시 보직을 사퇴했었다"고 밝혔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고 "뉴스를 지키는" 동료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다. 그는 "여러분이 지금 지키려는 것은 공정성이 땅에 떨어진 MBC뉴스인가? 아니면 한 개인, 특정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MBC 회사인가?"라고 되물으며 "우리가 모두 뭉쳐야 MBC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오판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보직자들의 잇단 사퇴와 파업 참가, 20년차 이상 사원들의 성명, 사장이 그렇게도 자랑하는 잘 나가는 드라마 PD들까지, 전 사원 대부분이 사장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며 이번 파업의 파급력이 전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임 기자는 "지금 여러분들의 동료들이, 후배들이 해고와 징계에 직면해 있다. 여러분이 몸담아온 회사의 파국을 막고, 그리고 동료,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결단을 내려달라"며 "우리가 모두 뭉쳐야 MBC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오판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임 기자는 1987년 MBC에 입사해 최근까지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직을 맡았다. 방송기자연합회장에 당선되기 전까지는 보도국에서 보도제작1부장을 맡고 있었다. 다음은 임 기자가 보낸 편지 전문. <편집자> 지난 1년 동안 MBC를 떠나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돌아왔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이임사를 통해 현장에서 동료들과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결국 돌아온 곳은 5층 보도국이 아니라 1층 로비가 되고 말았군요. 만감이 교차합니다. 2010년 가을 스스로 보직을 벗고 평사원으로 일하게 된 게 방송기자연합회 일을 맡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김재철 사장이 MBC에 들어오면서 회사는 황량해지기 시작했지요. 무엇보다 보직자와 평사원들에 대한 분리정책 때문이었지요. 보직수당 인상과 간부 주치의제도, 빈번한 해외연수 등 보직자들에 대한 무한 혜택과 당근조치, 그리고 이에 반해 순종하지 않는 평사원을 겨냥한 무자비한 징계와 인사조치. 김사장의 책략은 멋들어지게 먹혀들었습니다. 여기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알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정책과 조직개편 등이 하나하나 뿌리를 내리면서 MBC에는 간부와 평사원, 선배와 후배 간에 소통이 먹통 되는 야릇한 분위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보도제작1부장을 맡고 있던 저는 이런 보직자 우대정책이 너무도 낯간지러웠습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내가 사장에게 충성하려고 MBC에 들어왔나? 기자를 평생의 업으로 택한 뒤 그다지 유능한 기자는 아니었을망정, 적어도 기자의 기본에 충실하려던 내게 그런 회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더군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보직자들에게 떠 넘겨 선배와 얼굴 붉히는 일도 너무 너무 싫었고요. 그래서 결국 보직을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마음이 편하자고 한 선택이었지만, 사실 그건 도피였습니다. 비겁한 행위였습니다. 이런 비겁한 도피가 결국 1년 반 뒤 회사를 이 지경으로 이끈데 일조 한 건 아닌지, 마음이 아픕니다. 기자들이 마이크를 놓은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뉴스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기자들의 호소가 제안, 요청, 인사조치 요구의 수순을 거쳐 제작거부로 이어졌고, 여기에 노조 파업까지 가세해 이젠 전 사원이 백기를 드느냐, 사장이 용퇴하느냐 라는 막다른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와중에 사장은 노조 집행부 검찰고소에 이어 두 기자회장과 파업에 참여한 보직자들에게까지 징계의 칼을 휘두르려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겪어왔던 파업의 '데자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번엔 아닙니다. 보직자들의 잇단 사퇴와 파업참가, 20년차 이상 사원들의 성명, 사장이 그렇게도 자랑하는, 잘 나가는 드라마 PD들까지, 전 사원 대부분이 사장에게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장은 눈과 귀를 모두 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사장도 이젠 자신의 판단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국면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죠. 5층에 남아서 뉴스를 지키고 있는(?) 보직자와 일부 사원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지키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정성이 땅에 떨어진 MBC뉴스입니까? 아니면 한 개인, 아니 어떤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는 MBC 회사입니까? 아니, 생각이 아주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질문이 전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작금의 MBC뉴스가 전혀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았고, 회사도 어떤 세력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진 분들은 이제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념과 이념의 차이는 서로 존중해줘야지요. 하지만 그렇게 다른 신념 차이에도 우리가 과연 지금처럼 첨예한 갈등을 겪은 적이 있었는지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졌어도 똑 같은 뉴스를 만들면서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아오지 않았나요? 일이 끝나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어울리지 않았나요? 물론 흔들리는 저울추처럼 이따금씩 균형성에 위기를 겪은 적이 아주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어쨌든 이런 신념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5층에 남아있는 분들은 과연 자신들이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건지 자문해 보았으면 합니다. 보직자들에게 주어진 당근에 너무 취해 있는 건 아닌지…. 20여 년 근무에 비로써 얻은 보직이 과연 여러분의 최종 목표였는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지막 보루인지…. 지금 여러분들의 동료들이, 후배들이 해고와 징계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분이 몸담아온 회사의 파국을 막고, 그리고 동료,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가 모두 뭉쳐야, MBC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의 오판을 막을 수 있습니다. 2010년 위기 때 게시판에 글을 남긴 이후 처음으로 글을 올리는군요. 그때 게시판의 글들마저 사측에 의해 억눌려지면서 한 선배의 글이 덩그마니 외롭게 남아 있어 짧은 글을 보탰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 글 제목에 '넋두리'라고 썼었지요. 오늘 모처럼 길게 쓴 이 글은 넋두리가 안 됐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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