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언론에서 건강보험 보장수준에 대한 보도가 되었다. 2009년 64.0%였는데, 2010년 62.7%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는 의료비에 대한 국민의 부담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 되며, 건강보험이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저소득층의 의료이용이 더욱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2004∼2010)
그런데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지난 2004년 이후 살펴보면 MB정부에 들어와서 과거에 비해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4∼2007년까지는 약간씩이라도 개선되는 경향을 보인 반면, MB정부 등장 이후인 2008년에는 62.2%로 크게 낮아졌다. 그 다음 해인 2010년 64.0%로 개선되는 듯 했으나 2010년 62.7%로 다시 후퇴했다.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2007년 64.6%를 기록한 이후 다시 그 상태를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건강보험 재정이 나빠서인가? 아니면 무엇 때문일까? 왜 MB정부 등장 이후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MB정부 하에서 건강보험 재정은 '적자'가 아니었다
MB정부는 여러모로 운이 따르는 정부였다. 사실 건강보험도 예외가 아니었다. MB정부가 출범할 당시 건강보험 재정은 8,951억원의 흑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첫해인 2008년 무려 1조 3,667억원이나 되는 당기흑자가 발생하여 누적으로 2조 2천억원의 흑자가 쌓이게 된 것이다. 만일 2009년 가을부터 신종플루가 대유행하고 사회적 불안 심리가 확산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2009년 건강보험 재정 역시 상당한 흑자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표 1> 건강보험 재정 현황 (2007∼2011)
※ 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각 해당연도 말일 현금 기준
2010년 1조 3천억원 가량 적자가 났지만, 다시 2011년에는 6천억원의 흑자가 발생하여 누적으로 1조 5천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 정도 규모의 돈은 건강보험 한달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크지 않은 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를 100만원으로 낮추어도 될 정도의 돈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리 적지 않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 점을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MB정부 하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워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항상 흑자상태였으며, 2010년을 제외한다면 당기수지도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또 한가지 점은, MB정부가 2008년 연말 2조원이 넘는 흑자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에 상당한 흑자가 축적된 상태였다면, 이 돈을 바탕으로 건강보험 비급여를 급여범위로 끌어들이고 보장성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MB정부는 이런 기획을 하지 않았다. 적자가 나지 않은 상황을 다행으로 여길 뿐,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에 정부가 덜 낸 돈, 2011년에만 1조원 넘게 떼먹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MB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흑자였는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늘릴 수 있는 기회로 삼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더라도, 그것이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낮아지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보장성을 개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무능력'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그러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아래의 표를 보면, 단순한 '무능력' 또는 '무관심'으로만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현재 법률상에서는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부담금 포함)의 20%를 정부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20%는 담배부담금으로 만들어진 '건강증진기금'을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노무현 정부와 MB정부에서 단 한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항상 정부가 부담하도록 되어 있는 금액을 부담하지 않았다.
그런데 MB정부에 들어서서 이런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년 동안 MB정부가 부담하지 않은 금액은 모두 3조 6천억원이 넘는다. 특히 2011년에는 한해 동안 정부가 부담하지 않은 금액이 무려 1조 3천억원에 이른다.
<표 2> 건강보험 보험료 수입과 정부부담 (2007∼2011) (단위 : 억 원)
이와 같은 표는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MB정부가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했는지 잘 보여준다. MB정부는 이런 흑자를 정부가 건강보험에 부담해야 할 돈을 떼먹는데 이용했다. 국민의 보험료로 만들어진 것이니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으로 국민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상태이니 정부가 부담을 덜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쯤되면 MB정부가 '무능력', '무관심'을 넘어 '무책임'과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려는 도덕적인 문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MB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국민은 책임을 다했다
이처럼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믿고 정부부담액을 떼먹는 상황에서도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하여 국민은 책임을 다했다. 건강보험 재정 수입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보험료 수입'은 매년 꾸준히 늘어났다. 건강보험료율을 인상하지 않았던 2009년에도 건강보험료 수입은 6.1%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지만,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건강보험료 수입도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2008년과 2011년에는 보험료 수입이 무려 15% 늘어났다. 바로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가 된 이유가 담겨져 있다.
신종플루가 우리 사회를 흔들어 놓던 2009년에는 급여비 증가가 전년도에 비해 13.8%로 높았으나 다시 안정감을 찾고 2011년에는 7.4%로 낮아졌다. 여기에서도 정부는 대학병원 외래진료시 환자부담금을 인상하는 등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시켰다.
MB정부에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나빠진 원인은?
지금까지 MB정부 4년 동안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하여 주요한 지표를 살펴보며 논의해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MB 정부에 들어서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전반적으로 후퇴 되었으며,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지 않고 불안정한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2) 그런데 이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은 전반적으로 흑자상태였다. 2008년말과 2009년말, 2조원이 넘는 흑자가 있었으며, 2011년 연말에는 1조 5천억원에 달하는 흑자가 여전히 있다. 즉, 재정이 어려워 건강보험 보장성을 개선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3) MB정부는 이런 재정 흑자분을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에 사용하겠다는 기획을 하지 않았다. '무능력'과 '무관심'이 드러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흑자분을 핑계삼아 3조원이나 되는 정부부담금을 떼먹었다. 작년에는 1조 3천억원 이상의 정부부담을 하지 않았다.
(4) 반면, 국민은 보험료 부담을 꼬박꼬박 하고 있으며, 외래 본인부담금 인상도 수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MB정부에 들어서서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진 이유를 의료계가 비급여 서비스를 많이 늘려서 그렇다는 해석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익을 늘리려는 병원의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MB정부 이전에도 그런 태도는 있었다. 그리고 MB정부 이후 의료계가 비급여 서비스를 늘리려는 특별한 움직임이 있었으며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렇게 보면 의료계의 행태는 늘 존재하던 영향의 '상수'인 것이지, MB정부 출범 이후 영향을 미친 '주요한 영향요인'으로 지목될 수는 없다.
나는 이런 점에서 2008년 이후 건강보험 보장성이 나빠지는 주요한 원인이 'MB정부'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비급여 서비스를 늘리려는 의료계에 대해 의료제도의 개혁을 적극 추진하지 않는 정부의 책임을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하여 비급여 서비스를 건강보험 급여의 영역으로 포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점을 본질적인 이유로 지목하는 것이 올바른 분석이다.
지난 2005년 건강보험 재정이 2조원 가량의 흑자가 발생하자 당시 정부는 1조원 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을 활용해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에 사용하였다. 그 효과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차치해 두더라도 그 영향으로 인해 앞의 그래프에서 보았듯이 2006년에 건강보험 보장률이 전년도에 비해 2.5% 정도 개선되는 효과를 보였다.
MB정부는 이런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보험 재정 흑자를 이용해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부담을 덜하는 방향으로 운영했다. 월급쟁이들의 보너스에도 건강보험료를 붙여 알뜰히(?) 떼어갔던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부담을 떼먹고 있었던 것이다.
'실질적 무상의료' 추진으로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건강보험 재정이 '흑자'라면 건강보험 보장성 개선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기 좋은 환경임은 당연하다. 아무래도 재정 적자인 상황에서 압박을 받는 것보다는 좋은 여건이다. 또한 누적된 재정을 활용하여 건강보험 급여 확대를 추진하여 국민들에게 피부로 느낄 만큼 개선을 보여주고, 건강보험료 인상을 설득해 나간다면 건강보험 체질 개선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바로 지금, 2012년 현재야말로 '실질적 무상의료'를 추진할 최적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에게 1년에 건강보험의 환자부담을 100만원 이하로 낮추도록 하고, 입원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수준을 90%, 100% 추진하는 것부터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무상의료'를 모든 국민들이 경험해 보면 건강보험 제도의 소중함과 그 유익함을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추가적 부담을 하자는 분위기를 사회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올해는 선거가 있는 시기다. 선거는 단지 권력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 무상의료의 실현'을 선거의 결과와 관계없이 미리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과연 어떤 당이 사실상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진 정당인가"를 투표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선거의 결과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박원순 시장의 서울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가 바뀔 차례다. 그 안에서 '실질적 무상의료'는 꿈이 아닌 현실로 모습을 드러낼 힘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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