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공화국'의 그늘 ☞<上>커피 프렌차이즈, 달콤쌉싸름한 유혹 뒤엔… |
심지어 축구의 전술적 혁명기도 커피하우스 붐과 맞물린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커피하우스 열풍의 중심지였던 비엔나와 부다페스트에서는 지식인들이 당시 급격한 인기를 얻던 축구에 관해 활발한 토론을 나눴고, 이 과정에서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W-M 전술'을 깨뜨린 'M-M전술'의 헝가리 축구 전성시대가 피어났다. 당시 동유럽 지식계층은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이었던 헝가리 대표팀의 중앙공격수 히데쿠티에게 지성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찬양할 정도였다.
보험 및 금융산업의 성장도 커피하우스와 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유명한 해상보험사인 '로이드'가 대표적이다. 에드워드 로이드가 영국 런던에서 운영하던 커피하우스에서 해운업자들이 정보를 교환하던 데서 비롯됐다. 당시의 커피하우스는 일종의 거래소 기능도 했다. 한쪽 벽면에 각종 거래 정보가 담긴 칠판이 걸려 있었다. 18세기 초 런던에선 이런 역할을 하는 커피하우스가 2000곳 이상 성업 중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커피전문점 열풍은 반지성적 논란 속에서 등장했다. 유럽과는 다른 대목이다. 스타벅스 열풍의 이면에는 소위 '된장녀' 논란이 자리했다. 반여성주의, 민족주의 정서의 이면에는 커피전문점을 즐기는 이들이 자기 주체성 없이 '비싼 이미지를 소비'하는데 급급하다는 정서가 숨어 있었다.
이런 '성장통(?)'을 지나, 이제 국내에서 커피전문점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장소가 됐다. 이미 한국인의 커피소비 규모는 세계적이다. 동서식품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1인당 670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소, 기업인들의 회의 장소로 커피전문점이 활용된다. 심지어 커피숍을 사무실처럼 사용하는 '코피스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한 오피스 상권에서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성모 씨(가명, 37)는 "가장 바쁜 시기가 저녁 8~9시다. 간단히 회식을 한 직장인들이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이곳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가더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는 저녁 시간 커피소비가 줄어, 술을 팔기로 해 논란을 빚은 미국 스타벅스의 현실과 크게 대조된다. 김상윤 내용연구소 대표는 "단순히 '한국인들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접근하기보다, 커피전문점 증가의 배경에 기인한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엿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커피전문점은 오늘날 한국을 설명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사진은 한 커피전문점의 내부. ⓒ프레시안(최형락) |
가장 먼저 고려되는 배경에는 '싼 공간의 부족'이 있다. 젊은이들이 그나마 저렴한 비용으로 오랜 시간 눌러앉아 있을 만한 데이트 장소가 커피전문점 외에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취업위기로 젊은이들의 소비력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 과외비 등은 십년 전과 비교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며 "한정된 소비력으로 눈치를 보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소가 커피전문점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옛 세대에 비해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층의 변화 역시 커피전문점을 소비하는 이유로 보인다. 인터넷 상에서 과감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선후배관계, 급우관계망 등이 해체된 후 성인이 된 이들은 자연스레 관계맺기를 할 때 자아에 대한 타인의 침범에서 비교적 안전한 '중립지대'를 찾게 되고, 그 장소로는 나의 공간도, 남의 공간도 아닌 '제3의 공간'인 커피전문점이 최적이라는 뜻이다.
김 대표는 "옛 대학 시절 하숙하던 곳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요즘 대학생은 방에 친구를 불러 와 술판을 벌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나의 공간'을 침해받는 걸 피하는 이들이 만날 수 있는 가장 편한 장소는 익명의 대중이 모이는 커피전문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인의 커피에 대한 기호가 그리 강하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우리는 커피원두 중 가장 비싼 '일리스' 재료를 쓰는데도, '커피맛이 좋아서 다시 온다'는 손님은 극히 일부였다"며 "PC방, DVD방처럼 커피전문점도 유행이 지나면 다른 공간에 대체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갈수록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먹으려는 소수 커피마니아를 공략하는 시장이 커질 것"이라며 "단순한 커피전문점 인기가 얼마나 더 오래 갈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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