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에게도 타지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칼리 씨가 한국에 와서 처음 부딪힌 난제는 바로 집 구하기. 월세 보증금이 지나치게 비싼 것도, 고시텔 방 안에 화장실이 딸려 있는 것도, 고시원에 창문이 없는 것도 네덜란드 유학생에게는 낯설었다. 한국의 주거환경은 네덜란드와 어떤 점이 다를까? 한국의 원룸, 고시원, 고시텔, 하숙집을 전전하던 칼리 씨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편집자>
ⓒ프레시안(김윤나영) |
프레시안 : 한국에는 어떤 계기로 왔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네덜란드에 있을 때부터 인터넷으로 한국 대중문화 동영상이나 드라마를 영어 자막으로 봤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처음에는 일본에 관심이 있었다가 일본 문화를 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한국에 꽂혔다.
내가 지난 2010년 가을에 한국에 왔을 때는 그냥 여행하러 왔다. 당시 나는 한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한국 사람들은 나에게 매우 친절했다. 한국 음식과 문화도 좋았다. 내 나라보다 더 고향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 사람들이 좋다. 활기차다. 여기는 생기 있고 할 일도 많은 게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더 다이나믹하다. 내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한국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고, 경제적으로 봐도 한국 기업이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에서 내 사업을 꾸리고 싶다.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지원금을 받았다. 1년 정도 어학 연수한 다음에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MBA(경영학 석사)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원룸 보증금은 비싸고, 고시원은 좁고"
프레시안 : 본격적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했던 과정에 대해 듣고 싶다.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지금은 하숙집에 산다. 하숙집을 구하기 전에는 연세대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다. 기숙사는 한 방에 두 명이 살고 월세가 한 달에 40만 원이었다. 얼마 전에 하숙집 계약을 했다. 무보증에 월세가 43만 원이다. 정말 어렵게 구했다.
집을 구하기까지의 스토리를 얘기하자면 끝도 없다. 간단히 추려 말하자면, 주변 외국인들에게 조언을 구한 뒤 인터넷 사이트에서 고시원이나 원룸을 찾아봤다. 원룸은 보증금이 너무 비쌌다. 한국은 보증금 제도라는 게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제도다. 나는 보증금이 별로 없어서 원룸을 포기했다. 다음으로 고시원이나 고시텔을 찾았다. 그런데 고시원은 너무 작았다. 나는 짐이 많았다. 몇 년이나 공부하려고 왔기 때문에 고시원은 나에게 너무 작았다.
당시 나는 학교 기숙사에서 쫓겨나 일주일 안에 이사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남자친구가 한국인이어서 같이 하루 날을 잡아서 서울 신촌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다른 고시원을 찾았지만 별로였다. 하숙집도 찾았다. 나는 하숙집에 대해서 들어봤지만, 남자친구가 올 수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관건이었는데 하숙집에서는 대개 친구 방문이 엄격히 금지된 분위기였다.
한 하숙집 아줌마가 우리를 불러서 갔는데 방이 괜찮았다. 아줌마가 남자친구를 마음에 들어 했다. 얼마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48만 원이었는데 남자친구가 43만 원으로 깎았다. 남자친구가 여기 가끔 와도 되느냐고 물어봤더니 아줌마가 조용하기만 하면 괜찮다고 했다. 재밌었다. 신촌역과 학교와 가까운 데를 싸게 잘 구한 것 같다. 아마 겨울철이 하숙이 빠져나가는 시즌이라서 더 쌌을지도 모르겠다.
"네덜란드에는 창문 없는 방이 없다"
프레시안 : 고시원, 고시텔, 원룸과 같은 주거지를 접한 느낌은 어땠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원룸에서 살거나 집에서 산다. 주거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주거 형태가 너무 다양해서 신기했다. 고시원, 고시텔, 하숙집, 기숙사….
한국의 하숙집은 우리나라의 홈스테이 제도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홈스테이는 집 주인 가족들과 같이 살지만, 기숙사나 하숙집은 독립된 공간을 갖고 서로 섞여 산다. 하숙집에서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주는 것도 신기했다. 남녀가 공동욕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불편했다. 남자들과 같이 욕실을 써야 하니까.
연세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는 방에 남자를 데려가면 쫓겨났다. 주거공간에 성별을 나눠서 못 들어가게 하는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 나는 "여기가 고등학교인가?"라고 생각했다. 이상하지만 문화 차이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게 가장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주거 환경이 너무 나쁘다. 학교 기숙사는 새 건물이었지만, 두 사람이 지내기엔 비좁았다. 그 외 주거 형태는 다 좋지 않았다. 특히 고시원은 너무 작았다. 내가 누우면 방이 다 찰 것 같았다. 거기서 살 수는 없었다. 화장실과 욕실이 방 안에 함께 있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화장실이 외국인에게는 너무 작았다. 무엇보다 창문이 없는 고시원도 있었는데, 창문은 나에게 가장 중요했다. 네덜란드에는 창문이 없는 방이 없다.
프레시안 : 고시원에 산다면 한 달에 최고 얼마까지 낼 용의가 있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고시원은 너무 작고, 화장실도 남자와 같이 써야 하고 등등…. 최대 38만 원까지는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본 고시원은 한 달에 43만 원이었다.
한국인이 불안정한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프레시안 : 한국에 고시원이나 하숙집은 왜 이렇게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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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너무 바쁘다.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어서 하숙집을 선택하는 것 같다. 젊은 세대들, 20~30대는 돈이 충분히 많지 않기 때문에 불안정한 주거를 선택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보증금이 비싸다는 점도 독립하는 데 걸림돌이다. 정부가 더 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지원해 줘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독립적으로 살기에 힘들어 보인다.
네덜란드 등록금 2500유로, 그보다 더 많은 정부 지원금
프레시안 :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은 성년이 되면 독립적으로 산다고 했다.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따로 있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네덜란드는 대학 등록금이 공짜는 아니지만, 정부가 대학생에게 등록금뿐 아니라 생활비도 지원한다.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나와 살면 돈을 더 준다. 그리고 가난한 집에는 돈을 더 많이 지원한다.
네덜란드에서 대학에 입학하기는 쉽다. 대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졸업하기 어렵다. 유급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을 졸업해야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네덜란드 학생들이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기를 더 선호한다.
등록금은 1년에 2500유로(370만 원) 정도 든다. 그런데 정부에서 그 이상의 돈을 학생에게 준다. 사실상 무상교육이다. 다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면 정부에서 받은 지원비를 다 돌려줘야 한다. 학생들이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일단 대학에 가는데, 중간에 잘려서 돈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게 네덜란드에선 요즘 중요한 사회문제다.
한국 생활 5개월 차, 소득 절반은 하숙비로
프레시안 : 한국과 비교하면 네덜란드의 주거비용은 어느 정도이고, 주거환경은 어떤가? 주거환경에서 비롯되는 두 나라의 차이가 있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그들은 각자 자신의 방을 갖고 있다. 대개는 같은 성별끼리 모여서 집 하나를 빌리고 방 하나씩을 나눠 쓴다. 집 하나를 빌리는 데 한 달에 400유로(58만 원)가량 들고 세입자가 월세를 나누어 낸다. 한국보다 방세가 싼 편이다. 환율 효과나 유럽의 평균 소득 대비 주거비용으로 따지면 저렴하다.
한국은 집세가 너무 비싸다. 물론 유로화를 한국 돈으로 바꾸면 집값이 그리 비싸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생이라 한화로 장학금을 받는다. 한 달에 받는 장학금 90만 원이 소득의 전부다. 월세로 매달 45만 원을 지출하면 남은 45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부모의 집에 오랜 시간 거주한다. 30대가 돼서야 독립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풍경이다. 아마 집값 때문에 이런 좋지 않은 관행이 생긴 것 같다. 우리나라는 만 18세만 되면 대학에 가서 독립해서 성숙하게 살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보증금? 한 달치 월세면 충분해"
프레시안 : 한국에는 '전세 제도'가 있다. 월세 없이 임대비용을 모두 보증금으로만 채우는 제도다. 전셋값이 오르는 게 한국에서는 큰 사회문제다.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처음 들어봤다. 그러면 너무 오랫동안 많은 돈을 모아야하지 않나? 네덜란드에는 한국의 '전세'와 같은 제도는 없다. 다만 집주인이 간혹 한 달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받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도 보증금은 한 달치 월세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전셋값이 오르는 이유는 집값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집이 재테크의 수단이어서 부동산 거품이 많다. 네덜란드에는 부동산 문제가 없나?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우리나라에서도 집값은 비싸고 매년 올랐다. 물론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비싸더라도 집을 살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은행에 돈을 빌려서 이자를 내야 한다. 다만 집이 없더라도 (월세로 살더라도) 쫓겨날 위험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집값이 계속 오르다가 지난해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을 가진 사람들이 집값이 더 떨어질까봐 걱정한다.
"명품 가방과 좋은 자동차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프레시안 :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와서 받은 가장 큰 문화충격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나디아 크리스탈 칼리 : 한국은 선진국에 접어들었는데도 아직 너무 전통적이다. 그들은 아직 여성에게 특정한 역할이 있어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 남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다. 그건 구식 사고방식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것 같다.
예를 들어 여자가 담배 피우면 싫어한다. 아저씨들이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한다. 남자들이 여자를 보호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그들은 여자가 클럽에 가면 나쁘다고 한다. 나이든 아저씨들은 여자들이 친절하고 조신하게 행동하기를 바란다. 드라마도 모두 결혼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남녀가 분리돼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여긴 한국이야!"라고 되새긴다.
한국에서는 얼굴이 예쁜 것과 좋은 자동차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모든 게 물질 중심적이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해서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까지 거울을 보고 있다. 모든 게 중요하다고 한다. 명품 가방은 중요하다고 하고, 자신이 돈이 많다고 과시한다. 그런데 막상 과시하는 사람의 지갑을 열어보면 아무것도 없다. 하숙집 아줌마도 내 남자친구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하숙비를 깎아 준 것 아니겠나. 이게 한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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