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하는 철탑이 결국 한 노인의 목숨을 끊게 했다. 지난 16일 저녁 8시10분께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주민 이치우 씨가 스스로 몸을 불살라 숨졌다. 올해 나이 일흔 넷이다.
비극의 배경에는 한국전력공사와 주민들 사이의 오랜 갈등이 있다. 한전은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90.5㎞ 구간에 철탑 161개를 세우고 765㎸ 송전선로를 설치하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2008년 8월 착공했다. 그런데 전체 철탑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69개의 철탑이 밀양에 세워진다. 밀양 주민들은 생존권과 재산권의 보장을 요구하며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 철탑이 세워지는 땅에 대한 경제적 보상, 초고압 송전탑 주변에서 생길 수 있는 건강 상의 문제 등이 쟁점이다.
결국 이듬해인 2009년, 한전과 주민대책위, 밀양시 등은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보상 제도 개선을 결의했다. 이에 따라 2010년 하반기 국회 차원의 '송·변전 보상 관련 제도개선위원회'가 만들어져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송전선로 설치에 따른 갈등 해소방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햇수로 2년째인 지금까지 제도 개선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상황이 한 노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 씨가 분신한 16일 낮에도 한전 측은 이 씨 소유의 논에서 이 씨를 포함한 주민들의 접근을 막고 송전탑 설치를 위한 준비작업을 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한전 쪽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공사가 끝난 뒤에는 자신의 논에 놔둔 굴착기 등 장비를 치우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비극이 벌어졌다. 한전 측과 주민 사이에 합리적인 소통구조만 있었더라도 생기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는 18일 논평을 내고 "송전선로 설치에 따른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은 영광, 울진, 고리 등 해안가의 원전에서 대도시로 전력을 끌어오는 원자력중심의 중앙 집중형 전력체계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녹색당 창준위는 "거대한 쇠로 된 송전철탑이 서울-부산 거리보다 세배 이상 길게 국토 구석구석에 늘어서 있다"며 "송전탑은 한마디로 자연생태계와 조망권을 절단 내는 괴물"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녹색당 창준위는 "765KV 초고압 송전철탑과 선로는 주민들이 경작하는 농지 위로 지나가지만, 한전은 철탑부지와 인접한 토지에 대한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철탑부지에 대해서만 보상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주민들의 반발을 사 왔다"고 지적했다.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사람이 장기 노출됐을 때 암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거론됐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자파 노출에 대한 '사전예방의 원칙'을 적용하라"고 권고했다는 게다
이어 녹색당 창준위는 "한국은 현재 21기의 원전이 있고, 7기의 원전이 건설 중"이라며 "또 다시 수많은 송전선이 건설될 것이고, 그에 따라 생태계가 파괴되고 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녹색당 창준위는 "이와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은 철저한 수요관리정책과 재생가능에너지 확충을 통해, 탈원전과 지역분산 자립형 에너지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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