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둘. 만일에 프로야구 구단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앨버트 푸홀스를 외국인 선수로 데려온다면, 몸값은 얼마가 될까.
퀴즈 셋. 만에 하나 프로야구 팀이 은퇴한 배리 본즈를 외국인 타자로 영입한다면, 몸값 얼마를 줘야 할까.
정답은 모두 다 '30만 달러'다. 왜냐. 30만 달러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30만 달러라서 30만 달러라는 게 아니라 30만 달러여야 하니까 30만 달러다. 실제로 50만 달러를 줬는지 100만 달러를 줬는지는 중요치 않다. 데려온 선수가 트리플A에만 머문 선수인지 현역 메이저리거인지도 상관없다. 프로야구에서는 '600만 달러의 사나이'도 '30만 달러의 외국 사나이'로 하기로, 30만 달러 넘는 외국인은 존재하지 않는 걸로,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 되어 있어서다.
물론 지금까지 벌랜더나 푸홀스, 본즈 급의 귀하신 몸들이 한국 무대를 밟은 적은 없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에 가세한 외국인 선수들의 면면을 보다 보면, 먼 훗날에는 비슷한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어 보인다. 메이저리그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거물들이 속속 한국야구 무대를 밟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 외국인이 오면 베이스볼 레퍼런스를 뒤져야 좌완인지 우완인지를 알 수 있었던 반면, 요즘에 오는 선수들은 이름만 대도 팬들이 얼굴부터 신상명세까지 읊어댈 수 있는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문제는 이렇게 들어온 선수들의 몸값이 하나같이 '30만 달러'라는 점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최저연봉이 48만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빅리그급 선수들이 스스로 몸값을 깎아가며 한국 무대에서 뛰기로 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집을 떠나 타향에서 고생하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지,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큰 약점이라도 잡혀서 강제로 계약서를 쓰지 않은 이상,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결국 공식 발표된 몸값이 '거짓'이라는 얘기. 실제로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뛴 외국인 중에는 200만 달러 가까운 돈이 들어간 선수가 있는가 하면, 시즌 중에 합류했는데도 100만 달러 가까운 몸값을 받은 선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던 저스틴 저마노는 뒷돈계약으로도 한국 야구계를 시끄럽게 했다. 외국인 선수들의 몸값이 규정대로 주어진다고 믿는 이는 없다. ⓒ뉴시스 |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야구규약에는 외국인 선수 고용규정이 있다. '외국인선수의 연간 참가활동보수는 미화 30만불(옵션 포함, 복리 후생비 제외)을 초과할 수 없다'는 게 규정의 내용이다. 문서상으로만 보면 꽤 강력한 제재가 따른다. 상한선을 위반한 계약은 무효가 되고, 해당 선수는 5년간 자격 박탈에 구단 역시 그해 외국인 선수 선발권을 박탈당하게 되어 있다. 해당 선수는 당해 연도를 포함해 5년간 뛸 수 없다. 구단 또한 당해 연도에 외국인 선수를 선발할 수 없다.
물론 이를 지키는 구단은 거의 없다. 대부분 구단이 30만 달러라고 짜맞춘 가짜 계약서를 제출하고, 공식 발표도 그렇게 한다. 모두가 "우리 구단은 규약을 지킨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어느 구단 선수는 3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지목한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 외국인 연봉 상한선은 '지키는 구단이 바보'라는 사실을. 협회 역시 마땅히 제재할 방법이 없어 손을 놓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푸홀스 30만 달러설' 같은 우스개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프로야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처음 생긴 것이 1998년. 당시의 연봉 상한선은 12만 달러였다. 그때는 외국인 선수를 트라이아웃을 통해 선발했고, 마이너리그 더블 A나 멕시칸리그, 독립리그 수준의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숀 헤어 같은 전설과 마이크 부시라는 살아서 신이 된 사나이가 이 시기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후 프로야구의 수준이 눈부시게 발전했고, 외국인 선수에게 요구되는 능력치도 그만큼 높아졌다. 몇 해 전부터는 최소 빅리그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한 선수가 아니고서는 한국야구장 흙 밟기도 어렵게 됐다.
물론 2008년 SK같은 예외도 있지만, 좋은 외국인 선수가 있으면 전력이 크게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2009년 KIA만 해도 로페즈-구톰슨 콤비에 힘입어 전해 6위에서 우승팀으로 올라섰다. 이때를 전후로 각 구단마다 수준급 외국인 선수 영입에 거액을 쏟아붓는 경쟁이 시작됐다. 가열찬 순위싸움과 함께 얼마 전까지 메이저리그 중계방송에서나 보던 선수들이 속속 인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분히 빅리그에서 뛸 수 있는, 못해도 일본 진출을 노려볼 만한 수준의 선수를 데려오려면 30만 달러로는 어림도 없다. 한국은 아직까지 해외에서는 '전쟁위험지역'으로 인식되는 지역이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100만 달러 외국인 선수'가 탄생하게 된 까닭이다.
보도에 따르면 KBO 관계자는 "상한선을 높이면 구단이 협상할 때 그만큼 더 줘야 한다"며 현 규정이 '협상용'임을 실토했다. 그런데 이미 외국인 선수와 에이전트들은 30만 달러가 아무 의미없는 기준임을 다 알고 있다. 국내 구단의 제안에 처음부터 6~70만 달러를 부르는 선수가 있을 정도다. 이는 일본 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가 첫해 받는 일반적인 몸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30만 달러'는 애초에 지킬 수 없는 법이다. 법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태도 문제지만,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재미있는 건 대부분의 구단이 현재의 '30만 달러' 상한선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절대 지킬 수 없는 법이 계속 존속하기를 바라는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다. 올 겨울 들어 몇몇 선수들이 대박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윗목에 있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여전히 몸값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가 500만, 600만 관중을 돌파하고 관중수입과 중계권료 등으로 파이가 점점 커지는 것과는 딴판이다. 아랫목의 온기가 윗목으로 제때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구단들은 '프로야구는 적자 사업'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단의 1년 선수단 연봉 총액은 정해진 크기의 파이를 갖고 나누어 먹는 형태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선수의 실제 연봉이 수면으로 드러나면(특히 그 선수가 숀 헤어나 오리어리급의 활약을 하고 중도에 퇴출된다면) 국내 선수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연봉을 어떻게든 적게 준다는 현재의 기조를 유지할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거짓말의 '담합'이 이루어지는 배경이다. 이러면서 어떻게 2013년부터 외국인 선수 보유를 3명으로 늘릴 생각들을 하는지 그 패기에 놀랄 뿐이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정호텔 킹홀에서 열린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임시총회에서 박재홍 신임회장이 회의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일각에서는 해결책으로 외국인 연봉 상한선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차제에 다년계약을 허용하는 등 외국인 선수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것을 주장하는 이도 있다. 제도를 손질해서 외국인 선수도 '육성'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해결책을 갖고 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실제로 추진하려면, KBO의 조정력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 구단들이 야구의 헌법인 규약을 대놓고 무시하는 지금의 행태는 결국 KBO의 약화된 위상에서 기인한다. 새로운 총재 하에서는 반드시 KBO가 한국야구의 중앙기구다운 권위를 갖고, 규약 위반에 대해 엄격하게 제재하고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 7~800만 관중 몰이를 위한 준비만이 능사가 아니다.
또한 내홍을 겪고 있는 선수협이 하루빨리 제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선수협은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존재 이유지, 게임에서 나온 돈을 분배해주는 기구가 아니다. 치솟는 외국인 선수의 몸값과 구단들의 규약 위반 행위는 선수협이 제 역할을 했다면 제동을 걸 수도 있었다. 2013년부터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가 3명으로 늘어나는 것도 마냥 찬성할 게 아니라 선수들 입장에서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신생팀 NC가 전력 균형을 위해 외국인을 추가로 보유하는 것이야 감안할 수 있지만, 왜 기존 구단들까지 1명을 추가로 보유해야 하나? 100만 달러 선수 세 명을 데려와서 죄다 실패하면 그 피해는 누가 뒤집어쓰게 될까? 선발투수 5인 로테이션 중 두 자리를 외국인 선수로 채우는 현재의 추세가 프로농구에서 토종센터 부재와 비슷한 부작용을 낳는다는 견해도 있다. 선수협이 안정을 찾는대로 재검토가 필요하다.
KBO와 선수협은 프로야구를 굴러가게 하는 좌우의 날개다. 외국인 선수 몸값을 둘러싼 해괴한 상황은, 결국 양 날개가 제대로 된 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나온 결과인 셈이다. 구단들? 구단은 원래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판단하게 되어 있다. 그걸 조정하고 견제하라고 두 날개가 있는 것이다. 이러면서 600만, 700만 관중을 돌파한다 한들, 그 황금시대가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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