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5년 김현수, 2011년 박가람…어느 '신고선수'의 꿈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5년 김현수, 2011년 박가람…어느 '신고선수'의 꿈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청소년대표 박가람의 NC 다이노스 도전기

2005년 8월 31일에 열린 2006 신인지명회의에서 두산 김현수는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이 해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정도로 타격 재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그가 아시아 청소년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고교 3학년 가운데 유일하게 프로구단의 외면을 받은 선수가 됐다. 아들을 대신해 신인지명회의장에 나간 어머니는 눈물을 숨기지 못했고 그 장면을 TV로 본 김현수도 펑펑 울었다.

하지만 김현수는 신고 선수로 두산에 입단해 2008년 타율 1위에 오르는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두산 시절 김현수를 지도한 김광림 NC 타격코치는 "타격 재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게 타격기계 김현수가 나온 밑바탕"이라고 밝혔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2011년 8월 25일 역사는 또 한 번 반복됐다. 2012 신인지명회의에서 청소년대표 주전 포수인 휘문고 박가람이 프로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박가람은 "상위 지명은 어렵더라도 중·하위권에선 반드시 뽑힐 줄 알았는데"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명을 받지 못한 충격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실망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지명을 못 받은 설움은 프로야구에서의 성공으로 털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신생구단 NC 다이노스의 신고 선수로 프로야구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강진캠프에서 직업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가람이 팬이 보내준 선물을 자랑하고 있다. (좌측으로부터) 박민우, 박가람, 강구성. ⓒNC 다이노스 제공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은데 청소년대표에 뽑힐 줄은 알았나요?

조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주 기뻤어요. 청소년대표에 뽑힌 걸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들었어요. 친구랑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코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매우 기뻐서 가게 안에서 큰 소리로 외칠 뻔했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세운 목표가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뛰는 거였고 또 다른 하나가 청소년대표였거든요.

하지만 신인지명회의에선 끝까지 이름이 안 불렸죠?

아버지랑 함께 대표팀 숙소에서 TV를 봤는데 끝날 때까지 제 이름이 안 불린 게 믿기지 않았어요. 머릿속이 멍했어요. 야구를 안 한다면서 바로 방에 들어가서 울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차피 신인지명을 못 받은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걸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말은 '야구 안 한다'고 했지만 진짜 안 할 것도 아니고. 바로 생각을 바꿨죠. 어차피 안 됐으니까 다른 길로 프로에 도전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또 다음 날 일본에 가는데, 가서 잘해야 하잖아요. 지명을 못 받은 것은 아쉽지만 일본은 꼭 꺾고 싶었어요. 실제로는 졌지만요.

프로 신고 선수가 아니라 대학에 가서 4년 후에 다시 도전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요. 그래서 무조건 프로에 가야만 했어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생각이요?

신인지명회의가 열리기 전에 어느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고 선수로라도 프로에 가겠다'고 말했거든요. 프로구단에선 '신고 선수로 올 선수를 구태여 뽑을 필요가 있느냐'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말을 안 했으면 뽑아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다 들었어요.

9개 구단 가운데 NC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NC는 New Chance잖아요. 새로운 기회. 신인 지명을 못 받은 저랑 딱 맞는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기회를 많이 얻었고요. 다른 팀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청백전이나 경찰청과의 연습 경기에 뛰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경기에 나가 포수 마스크도 썼고요. 제주도에서 경찰청이랑 연습 경기할 땐 결승타도 쳤어요. 그때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죠. 그걸 보고 저는 살짝 손만 들고 말았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어요. 하늘을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었어요.

NC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아주 좋아요. 김경문 감독님을 비롯해 코치님들이 다들 열정적이고 선수들도 해보자는 열기가 뜨거워요.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신생팀이라서 아직 다른 구단 1군과 비교하면 모자란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음과 패기로 하는 것밖에 없다'고요.
▲박가람에게 프로야구는 신세계와 같았다. 배울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야구일지는 강진캠프, 제주도캠프를 거치며 벌써 스프링 노트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고된 훈련에도 매일 야구일지를 쓴 것은 'NC 다이노스의 키'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손윤

예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표정이 밝은 것 같아요. 그땐 과묵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자주 웃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롤모델이 롯데 강민호 선배잖아요. 그래서 휘문고 시절 등번호가 강 선배님이 국가대표에서 단 37번이었고요. 롯데에 계셨던 한문연 코치님이 강민호 선배님은 항상 생글생글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한 코치님이 아주 호되게 훈련을 시키는데 웃는대요. 힘들어도 인상 한 번 안 쓰고요. 저도 웃어야죠. 제 롤모델이 항상 웃으니까요. 사실은.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때 위기를 맞으면 얼굴이 굳어지는 단점이 있어요. 포수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잖아요. 포커페이스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있어서 의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신인지명회의에서 프로구단의 외면을 받은 이유로 체격이 작은 게 한 요인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으음, 한문연 코치님이 자신도 작은 체격이지만 프로에서 10년을 뛰었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2번이나 경험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공교롭게도 (NC에서) 제 등번호가 2번이에요.

한문연 코치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네요.

네, 한 코치님처럼 저도 체격이 다소 작아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잖아요.

NC는 신인지명회의에서 3명을 뽑았고 2차 드래프트에서도 넥센 허준을 지명했어요.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요?

아뇨. 허준 선배님은 1군 경험이 풍부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또 대학을 나온 김태우 형이랑 윤문영 형한테 배우는 것도 많죠. 동갑인 (박)세웅한테 배울 점도 있고요. 저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차근차근 배워 기량을 쌓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땀을 흘리는 거죠.

얼마 되지 않았지만 프로의 세계는 어떤 것 같나요?

프로는… 냉정한 세계인 것 같아요. 뒤처지면 바로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 세계가 제 밥줄이니까 항상 온 힘을 다해야죠. 남들이랑 똑같이 해서는 똑같은 선수밖에 안 되잖아요.

NC에선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아버지가 열쇠로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해 주셨어요. NC다이노스 No. 2 박가람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열쇠처럼 NC의 키(key)가 되고 싶어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