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김현수는 신고 선수로 두산에 입단해 2008년 타율 1위에 오르는 등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두산 시절 김현수를 지도한 김광림 NC 타격코치는 "타격 재능이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린 게 타격기계 김현수가 나온 밑바탕"이라고 밝혔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2011년 8월 25일 역사는 또 한 번 반복됐다. 2012 신인지명회의에서 청소년대표 주전 포수인 휘문고 박가람이 프로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박가람은 "상위 지명은 어렵더라도 중·하위권에선 반드시 뽑힐 줄 알았는데"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지명을 받지 못한 충격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실망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지명을 못 받은 설움은 프로야구에서의 성공으로 털어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신생구단 NC 다이노스의 신고 선수로 프로야구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강진캠프에서 직업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가람이 팬이 보내준 선물을 자랑하고 있다. (좌측으로부터) 박민우, 박가람, 강구성. ⓒNC 다이노스 제공 |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낸 것 같은데 청소년대표에 뽑힐 줄은 알았나요?
조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주 기뻤어요. 청소년대표에 뽑힌 걸 아이스크림가게에서 들었어요. 친구랑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코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매우 기뻐서 가게 안에서 큰 소리로 외칠 뻔했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세운 목표가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뛰는 거였고 또 다른 하나가 청소년대표였거든요.
하지만 신인지명회의에선 끝까지 이름이 안 불렸죠?
아버지랑 함께 대표팀 숙소에서 TV를 봤는데 끝날 때까지 제 이름이 안 불린 게 믿기지 않았어요. 머릿속이 멍했어요. 야구를 안 한다면서 바로 방에 들어가서 울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차피 신인지명을 못 받은 건 어쩔 수 없잖아요. 이걸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말은 '야구 안 한다'고 했지만 진짜 안 할 것도 아니고. 바로 생각을 바꿨죠. 어차피 안 됐으니까 다른 길로 프로에 도전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또 다음 날 일본에 가는데, 가서 잘해야 하잖아요. 지명을 못 받은 것은 아쉽지만 일본은 꼭 꺾고 싶었어요. 실제로는 졌지만요.
프로 신고 선수가 아니라 대학에 가서 4년 후에 다시 도전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집안 형편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요. 그래서 무조건 프로에 가야만 했어요. 또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어떤 생각이요?
신인지명회의가 열리기 전에 어느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신고 선수로라도 프로에 가겠다'고 말했거든요. 프로구단에선 '신고 선수로 올 선수를 구태여 뽑을 필요가 있느냐'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말을 안 했으면 뽑아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까지 다 들었어요.
9개 구단 가운데 NC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NC는 New Chance잖아요. 새로운 기회. 신인 지명을 못 받은 저랑 딱 맞는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기회를 많이 얻었고요. 다른 팀이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제가 청백전이나 경찰청과의 연습 경기에 뛰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경기에 나가 포수 마스크도 썼고요. 제주도에서 경찰청이랑 연습 경기할 땐 결승타도 쳤어요. 그때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난리가 났죠. 그걸 보고 저는 살짝 손만 들고 말았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어요. 하늘을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었어요.
NC 팀 분위기는 어떤가요?
아주 좋아요. 김경문 감독님을 비롯해 코치님들이 다들 열정적이고 선수들도 해보자는 열기가 뜨거워요.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가 신생팀이라서 아직 다른 구단 1군과 비교하면 모자란 게 사실이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젊음과 패기로 하는 것밖에 없다'고요.
▲박가람에게 프로야구는 신세계와 같았다. 배울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야구일지는 강진캠프, 제주도캠프를 거치며 벌써 스프링 노트 한 권을 빼곡히 채웠다. 고된 훈련에도 매일 야구일지를 쓴 것은 'NC 다이노스의 키'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손윤 |
예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표정이 밝은 것 같아요. 그땐 과묵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지금은 자주 웃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 롤모델이 롯데 강민호 선배잖아요. 그래서 휘문고 시절 등번호가 강 선배님이 국가대표에서 단 37번이었고요. 롯데에 계셨던 한문연 코치님이 강민호 선배님은 항상 생글생글 웃는다고 하더라고요. 한 코치님이 아주 호되게 훈련을 시키는데 웃는대요. 힘들어도 인상 한 번 안 쓰고요. 저도 웃어야죠. 제 롤모델이 항상 웃으니까요. 사실은.
사실은?
제가 고등학교 때 위기를 맞으면 얼굴이 굳어지는 단점이 있어요. 포수가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잖아요. 포커페이스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있어서 의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신인지명회의에서 프로구단의 외면을 받은 이유로 체격이 작은 게 한 요인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으음, 한문연 코치님이 자신도 작은 체격이지만 프로에서 10년을 뛰었고 한국시리즈 우승도 2번이나 경험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공교롭게도 (NC에서) 제 등번호가 2번이에요.
한문연 코치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네요.
네, 한 코치님처럼 저도 체격이 다소 작아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도 있잖아요.
NC는 신인지명회의에서 3명을 뽑았고 2차 드래프트에서도 넥센 허준을 지명했어요.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요?
아뇨. 허준 선배님은 1군 경험이 풍부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또 대학을 나온 김태우 형이랑 윤문영 형한테 배우는 것도 많죠. 동갑인 (박)세웅한테 배울 점도 있고요. 저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어리잖아요. 차근차근 배워 기량을 쌓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땀을 흘리는 거죠.
얼마 되지 않았지만 프로의 세계는 어떤 것 같나요?
프로는… 냉정한 세계인 것 같아요. 뒤처지면 바로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 세계가 제 밥줄이니까 항상 온 힘을 다해야죠. 남들이랑 똑같이 해서는 똑같은 선수밖에 안 되잖아요.
NC에선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아버지가 열쇠로 목걸이를 만들어 선물해 주셨어요. NC다이노스 No. 2 박가람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열쇠처럼 NC의 키(key)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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