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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을 위한 사회복지

[이정전 칼럼] "재정 위기 남유럽, 복지천국 아닌 부자천국일 뿐!"

유럽 경제위기의 돌파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골칫거리다. 이런 가운데 그린스펀 전 미연방준비은행의장은 남부유럽과 북부유럽이 분리되기 전까지 유럽의 경제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고 있다.

유럽연합 안에서도 남부유럽 국가들을 떼어 내자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남부유럽이 골칫거리가 되었을까?

그린스펀 전 의장은 남부유럽 국가들이 하나의 '유로 존'에 편입된 이후 이들의 국채가 과거보다 쉽게 팔리게 되자 국가부채를 계속 부풀리면서 흥청망청 돈을 쓰다보니 이제 유럽 전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전문가들도 일제히 한 마디씩 하고 있는데, 특히 보수성향 전문가들의 진단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남부유럽의 국가들이 '복지 함정'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서민들을 위한 과다한 복지지출이 남부유럽 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수성향 전문가들의 주장은 금방 허점을 드러낸다. 만일 과다복지가 진정 남부유럽 국가들의 문제였다면, 보수성향 전문가들이 과거에 늘 대표적 과다복지 국가로 꼽았던 스웨덴, 필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 국가(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어째서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가? 이 나라들은 어떻게 해서 유럽의 경제위기에서도 한 발 비껴있는가?

이런 질문에 보수성향 전문가들이 내놓은 대답은 요컨대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북구 국가들이 복지지출을 현명하게 잘 운용하였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 전에만 해도 보수성향 전문가들은 미국을 시장경제가 최고로 발달한 나라로 늘 추켜세우면서 북구 국가들은 복지함정에 빠진, 망한 국가처럼 매도하였다. 근래 보수성향 전문가들의 주장은 이랬다저랬다 하는듯한 인상을 준다. 어떻든, 그러면 북구 국가들은 어떻게 사회복지지출을 현명하게 운용하였을까? 그 한 가지 방법은 '교육사다리' 구축을 위한 사회복지 지출이다. 북구 국가들이 서민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 사회복지지출을 잘 활용함으로써 사회계층의 순환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며, 특히나 교육사다리가 허약해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주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왜 남부유럽 국가들은 스웨덴, 필란드, 노르웨이 등과 같이 사회복지지출을 현명하게 운용하지 못했을까? 사회복지지출의 규모나 운용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요인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남부유럽 국가들이 큰 관심을 끌면서 최근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사회 실상을 고발하는 조사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한결같이 지적되는 문제는 사회고위층의 부정부패, 특히 정경유착이었다. 사회복지지출의 최대명분은 저소득계층의 복지향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지출의 혜택은 당연히 저소득계층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경유착(경제학 용어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대추구 행태)이 심할 경우에는 사회복지 명목의 돈이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줄줄 새어서 엉뚱한 곳으로 흘러들어가기 일쑤다. 사회복지지출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규모가 아니라 최종 귀착, 즉 사회복지 명목의 돈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손에 떨어지느냐이다.

현재 유럽재정위기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 이탈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이탈리아의 사회복지지출이 최종적으로 어떤 계층에 떨어졌는지를 추적한 결과를 보면, 최하위 5분위(가장 가난한 하위 20%)에게는 고작 15.6%만 돌아간 반면, 28%에 가까운 금액이 최상위 5분위(가장 잘 사는 상위 20%)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사는 상위 40%가 사회복지지출의 약 48%를 가져간 반면, 가장 못사는 하위 40%는 32%밖에 받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 사는 부자들이 가장 못사는 가난뱅이보다도 더 많은 사회복지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탈리아의 사회복지지출이 저소득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부유계층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부유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지출은 참된 사회복지지출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탈리아를 과연 과다복지국가니 복지함정에 빠진 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사회복지지출의 명분을 심하게 훼손하는 지대추구 행태가 이탈리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있고 영국에도 있고 우리나라에도 있다. 다만,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경우 그 정도가 심했을 뿐이다.

지대추구행태는 이와 같이 사회복지지출의 내용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정부재정지출을 크게 부풀리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공공선택이론가들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지대추구자들은 관료와 짜고 사회복지지출을 포함한 정부재정지출을 크게 부풀리고 나서 이것을 나누어 먹는다. 흔히 말하는 로비스트란 지대추구자들의 집단이다. 공공선택이론가들의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하면, 남부유럽 국가들의 과도한 사회복지지출은 애당초부터 서민들의 복지를 돌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뒷구멍으로 국민의 세금을 빼먹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국가들은 과도복지 국가나 복지함정에 빠진 국가가 아니라 부자천국이다.

이제 사회복지지출의 규모만을 놓고 과도복지나 복지함정이라는 말을 하지 말자. 중요한 것은 저소득계층에 미치는 실질적 효과다. 어떻게 하면, 사회복지지출의 명분을 최대한 살릴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과제다.

▲ 지난달 29일 EU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 겸 재무장관.. 그는 과연 '이탈리아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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