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밤 발표한 성명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북한은 현재 국가적 추모 기간"이라며 ""우리는 북한 주민의 안녕을 깊이 우려하며,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주민들에게 위로를 전한다"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북한의 새로운 지도부가 자신의 책무를 이행하고,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북한 주민들의 권리를 존중함으로써 나라를 평화의 길로 이끌어나가길 바란다"며 "미국은 북한 주민들을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새로운 지도부가 한반도의 평화, 번영, 지속적인 안보를 위한 새로운 시대로 향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 성명은 김 위원장에 대해 '애도'(condolenc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북한 정권과 별개로 주민을 분리해 '위로'를 전달한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의 조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위로의 대상을 북한 주민에 한정한 어법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대통령이었던 남편 빌 클린턴의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94년에는 미 대통령이 직접 조의를 표명했고,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차관보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보내 조문하게 했던 것에 비춰볼 때 이번에는 격이 낮아진 것이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20일 정례브리핑에서 '애도' 표현이 사용되지 않는데 대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명에서 '새로운 지도부'(a new leadership)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과 관련해서는 "클린턴 장관이 성명에서 밝힌 것은 새로운 북한 정권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부 장관은 19일(현지시간)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전환을 원한다"라고 밝혔다. ⓒAP=연합뉴스 |
클린턴 장관의 성명은 김정일 사후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차단하고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성명 발표에 앞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을 마친 후 "북한의 평화롭고 안정적인 전환을 원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정은 후계체제의 정착을 바란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에 동의한 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중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20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주중 북한대사관을 방문에 조문하고, 중국 정부가 김정은 후계체제를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 조전을 보낸 것도 자칫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강국이 김정일 사망 정국에서도 교감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새 정권이 현재까지 이어진 북핵 협상의 방향을 유지한다면 내정 간섭 등 정권을 자극하는 행동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중요한 것은 새 지도자의 퍼스넬리티가 아니라 정부의 행동"이라며 "우리는 북한 새 지도부의 행동을 지켜보고 그에 상응해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룰런드 대변인도 "미국은 북한의 새 지도부가 비핵화를 이행하고 국제적 의무·약속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미 국무부가 20일 밝힌 북한과 미국의 접촉 사실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눌런드 대변인은 20일 북한과 미국이 19일(현지시간) '뉴욕 채널'을 통해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된 실무접촉이 있었다고 밝혔다.
룰런드 대변인은 "(이번 접촉은) 대북 영양지원과 관련된 문제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북한이 현재 애도 기간이기 때문에 연내에 지원 문제가 결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2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은 사실상 연기됐지만 김정일 사후 북미가 첫 공식 접촉을 가진 셈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도 북한과 미국은 김 주석 사망 3개월 후에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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