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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문제로 잠 못들지, 김정일 때문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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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취업 문제로 잠 못들지, 김정일 때문은 아니에요"

[현장] 김정일 사망, 서울과 평양 사이보다 먼 세대 간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9일 오후 서울. 세습체제를 구축해 한국과 끊임없이 충돌하던 한 인물의 사망을 바라보는 세대 간의 시선에는 극명한 차이가 났다.

전쟁세대와 민주화 이후 세대가 이 거대한 뉴스를 받아들이는 사이에 드러난 간극에는 '경험'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남북관계 변화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이 소식을 노인들은 "내 문제"와 "남한 체제의 승리"로 이해했다. 그러나 '88만 원 세대'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까지 붙은 젊은이들에게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서울과 평양만큼의 거리감을 가진 이야기였다.

▲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 모인 노인들. ⓒ프레시안(김윤나영)

"죽었대? 잘 죽었지 뭐."

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들은 노인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겨울에는 탑골공원에 추워서 안 들어가고 지하철역에서 시간을 때운다"는 노인들은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빵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최행립(73) 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두고 "진작 죽었어야 했다"며 그 이유로 "독재하면서 국민이 굶어도 하고 싶은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었다. 최 씨는 "이북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도가) 비할 바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최 씨에게는 다른 걱정이 앞섰다. 그는 "이북도 앞으로 변화가 있을 것 같다"며 "김정일이 아버지로부터 자리를 물려받았을 때는 나이가 좀 있었는데, 지금 자식들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북한 체제가 오래 유지 안 될 것 같다. 북한 체제가 무너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못 사는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일시에 몰려오면 그 사람들을 다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박정수(가명·84) 씨의 생각은 달랐다. 박 씨는 "리비아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고 하지만, 북한 뒤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있어서 쉽게 안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독재를 세습한 김 씨 일가는 야만적"이라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한이 북한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남북 대립관계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형을 잃었다. 박 씨는 "북한 때문에 형님이 한국전쟁 당시 전사했는데 서류가 없어서 국가유공자 혜택도 못 받는다"며 "북한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많다"고 한탄했다.

이봉주(84) 씨도 "나는 한국전쟁 당시 국가 유공자가 돼서 한쪽 폐가 없다"며 "전쟁이 나서 23세에서 27세까지 처자식 버리고 군대에 4년 동안 끌려가 집도 없이 거지로 살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북한 체제의 변화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가슴의 생채기를 생생히 되살리는 소식이었다. 적어도 이들에게 김정일은 김일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웃을 죽인 학살자의 아들일 뿐인 듯 보였다. 또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자신에게 푸대접하는 한국 정부에 받은 상처 역시 되살아난 듯했다.

당시 봉급이 한 달에 36원이었다고 회상한 이 씨는 "(한국전쟁 당시) 그렇게 고생한 사람들(국가유공자)이 21만 명에서 지금은 5만 명밖에 안 남았는데, 나라에서 국가유공자에게 한 달에 겨우 12만 원밖에 안 준다"며 "억울하면 재판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했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그는 아침은 굶고 낮에 무료 빵을 먹기 위해 종로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1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관련 뉴스를 지켜보는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생각은 다르다

그러나 모든 노인이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었다. 관심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다. 전쟁세대가 상처를 추억하지 못할 만큼 힘든 삶을 산다는 건 더 비극적인 이야기다. 안형식(90) 씨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먹고 살기도 바빠서 관심이 없다"며 "그래봤자 아들이 또 (최고 권력자가) 될 텐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안 씨는 "전쟁이 날 리는 없다"면서 "전쟁나면 양쪽이 다 망할 텐데 전쟁이 나겠느냐"고 반문하며 빵을 받고 자리를 떠났다.

드물게 애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역회사 사장이었다가 벌 만큼 벌고 이제는 은퇴해 노인복지관에서 자원봉사하고 사는 게 낙"이라는 금영연(72) 씨는 김 위원장의 죽음에 대해 "같은 동포로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금 씨는 "아무리 적이라도 동포는 동포"라며 "생은 하나뿐인데 죽으면 생명이 끝나는 것 아닌가"라며 "아무리 적이라도 애도를 표하는 게 예의"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이모 씨(56)는 막연한 불안감을 표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과 소통이 됐었는데 현 정부 들어 소통이 너무 안 되는 것 같다. 삼대 세습 체제도 완성 안 된 상태에서 (김정일이 사망해) 체제 혼란에 따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생각은 종로에서, 즉 노인들에게서 멀어질수록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엄밀히 말해 젊은이들에게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그저 한 독재자의 죽음,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젊은이들이 주로 모인 홍익대 인근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김정일의 사망보다 당장 견디기 힘든 '내 일'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가 보다' 싶다"

직장인 김지윤(33) 씨는 "솔직히 말해 원래 오늘내일 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 이상도, 이하도 안 든다"며 "정치권에서 이걸 갖고 뭔가 하겠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말했다.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최모 씨는 "뉴스는 봤는데,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저 '그런가 보다'하는 정도"라며 "다음 학기에 인턴십을 신청하려 하는데, 그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박모 씨도 "방금 전에도 남자 친구와 그 얘길 하긴 했는데, '그냥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수준"이라며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하나, 결혼자금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게 중요하지, 김정일의 사망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찾았으나 이런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조문 논란이 벌어질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던 당시 대학가 분위기와는 큰 차이가 났다. 이념 논쟁이 활발했던 당시 민족해방파(NL)가 학생들을 대변하던 상당수 대학이 분향소를 설치했고, 민중민주(PD)계열 조문단 파견을 주장한 NL 계열을 '주사파'로 규정, 규탄하기도 했다. 당시 박홍 서강대 총장의 이른바 '주사파 시리즈'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기도 했다.

"김정일 사망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드물게 진지하게 답하는 이들도 있었다. 홍익대 도시공학과에 재학 중인 권모 씨는 "아무래도 서울시장도 박원순이 됐으니 좀 불안하다"며 북한이 이런 상황이 되면 더 공세적으로 변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정일의 사망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말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상당수 대학생들은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계절학기 수강 때문에 학교에 나왔다는 홍익대 경영학과 임모 씨는 "이런 걸 왜 나에게 묻는지 모르겠다"며 "언론이 괜히 시민들 불안감 조성해서 돈 벌려는 것 아니냐"고 기자에게 따져 물었다. "취업준비 때문에 이런 일에 그리 큰 신경을 안 쓴다"는 대학생 이호진 씨는 "남들이 불안하다고 하니 나도 괜히 그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며 "솔직히 토익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다. 취업 걱정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루지, 김정일 때문은 아니다"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안한 경제와 불안한 남북관계를 가진 2011년의 한국이 가진 대조적 풍경이 펼쳐졌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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