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장 시청자 입장에서는 다 비슷한 방송업체끼리 왜 입장이 달라지는지부터가 이해하기 어렵다.
"지상파 주장은 시청자에게 짐"
케이블TV 사업자와 지상파방송 간 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7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상파방송 유료화 반대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케이블TV 가입자들이 이미 KBS 수신료를 납부하는 마당인데, 지상파 방송이 재송신 대가를 요구하는 건 결국 시청자에게 중복으로 부담을 지우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지상파방송 사업자들은 '지상파 재송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매출액의 4.26%를 방송발전기금으로 내는 만큼 지상파 방송을 무턱대고 무료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케이블TV가 홈쇼핑을 지상파 옆에 배치해 자릿세를 받아왔으니, 콘텐츠 재송신 대가를 케이블TV 측에 받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싸움에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들이 끼어들었다. RO들의 모임인 한국유선방송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 "그 동안 케이블TV(종합유선방송)는 지상파방송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했"으나 "특히 합법적인 저작권 대가를 주지 못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을 볼모로 지상파방송을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전고지나 가입자 피해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지상파방송을 중단해 가입자와의 계약을 스스로 파기한 것"이라며 "정부로부터 시청자를 위한 방송사업 허가를 받은 사업자로서, 절대 하여서는 안 될 만행"이라고 비난했다.
단순하게만 보면 케이블 사업자가 동종업계 종사자를 비난하고, 오히려 지상파의 편을 든 것이다.
케이블? SO? RO?
케이블TV 업체가 설립목적이 다른 사업자들로 크게 나뉘기 때문에 이런 입장차가 발생했다. 케이블TV 업계는 크게 중계유선사업자(RO)와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로 구분된다.
RO는 사업명 그대로 지상파방송을 단순 전달한다. 지상파가 쉽게 닿지 않는 난시청지역에도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탄생한 사업으로, 지난 1961년 국책사업으로 탄생했다. 현재는 지상파방송과 공익채널, 종교채널만 방송한다. 점차 쇠락하면서 현재는 강원도 3개, 경기·인천 12개, 경상남도 46개, 전라남도 28개 등 총 126개 사업자가 남아 있다.
반면 SO는 지상파는 물론 오락프로그램, 종편 등 다양한 프로그램공급자(PP)와 방송 프로그램 송출을 계약해 이를 유선(케이블)을 통해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중계서비스업체다. 2개 이상의 SO가 뭉쳐서 방송하는 업체는 MSO로 부른다. C&M, CJ헬로비전 등 대도시에 방송을 공급하는 대형업체들을 비롯해 지역별로 18개가 넘는 SO들이 대부분 도시에 방송 프로그램을 송출한다.
크게 나누면 SO는 대도시 대부분에, RO는 SO가 수익악화를 이유로 진출을 꺼리는 산간벽지에서 방송서비스를 제공한다. RO의 한달 시청료는 SO의 5분의 1 이하 수준인 3000~4000원대다.
한국유선방송협회는 "과거 아날로그 방송시절부터 지상파방송의 난시청에 기여해 온 것은 케이블TV(종합유선방송)가 아니라 저희 중계유선방송(RO)"이었다며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지상파와의 소송에서 마치 자신들이 과거부터 지상파방송의 난시청에 기여한 방송이라고 저희 중계유선을 팔기까지 했다"고 비난했다.
▲한국유선방송협회(RO의 단체)는 7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최근 행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다. ⓒ한국유선방송협회 홈페이지 캡처 |
지상파-RO vs 방통위-SO ?
한국유선방송협회는 지상파 3차의 저작권 권리 행사는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RO업체들은 "지상파방송사가 요구한다면 합당한 저작권료를 낼 용의가 있다"며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을 비난하고 있다.
한국유선방송협회 관계자는 "케이블TV가 잘 했다, 지상파방송이 잘 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방송이라는 사회적 공공재를 사용하는 기업들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흥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어찌됐든 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RO가 공공성만을 위해 '지상파에 저작권료를 주고 싶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RO가 지상파의 편을 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RO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경한 규제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RO 사업자는 최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종편)도 서비스하지 못한다. SO에 비해 콘텐츠가 너무 빈약해, 이대로 간다면 궁극적으로 SO에 시장을 잠식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즉,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방송 체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RO는 시장을 늘려야 하고, 콘텐츠경쟁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SO와의 전선을 펴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지상파방송의 입장을 옹호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방통위는 지난 1995년 3월 케이블TV 개국시 RO사업자의 신규허가를 중단했다. 이에 기존에 RO가 진입하지 못한 시장은 고스란히 SO에 열렸다. 또 RO는 30개 이상의 채널을 중개하지 못한다. 지상파3사와 EBS, 그리고 방통위가 정한 공익채널 외에는 송출할 권한이 없다. SO의 시장확대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다.
반면 SO는 앞으로 지상파 방송사와 사전 협의 없이도 채널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까지 얻었다. 지난 5일 방통위가 SO의 역내 재송신 지상파방송채널 변경을 위한 변경허가 심사 회의를 열어, 지상파방송 사업자와 사전협의를 거치도록 한 절차를 폐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SO가 PP들과의 협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KBS2를 19번으로, TV조선을 7번으로 변경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유선방송협회는 "과거 정부는 케이블TV를 활성화시키고 저희 중계유선방송을 고사시키기 위해 각종 규제를 적용하여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며 "정부가 케이블TV의 편을 들어 지상파방송의 합법적인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RO가 궁극적으로 SO만큼의 규제 완화를 적용해달라고 항변한 것이다.
한국유선방송협회 관계자는 "공정경쟁을 위해 방통위가 RO에 대한 규제를 풀고 다양한 방송 플랫폼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새 방송체제 출범에 맞춰 새로운 방송산업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