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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이제 끝? 아직도 밀실에선…

범국본 자문위 "미국 법률 개정 요구 국민에 공개해야"

29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에 공식 서명했으나,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정책자문위원회(이하 자문위)는 이로 인해 곧바로 한미 FTA가 발효되는 것은 아니며, 한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발효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발효 전 수행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게 이유다. 특히 미국 기업과 달리, 한국 기업은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협조문을 근거로 미국 법원에서 소송권을 가질 수 없다고 자문위는 강조했다. 미국 이행법은 한미 FTA를 법률로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오전 한미 FTA 비준안에 서명한 후, 김종훈 외교통상교섭본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

미국 대통령 허락 받아야 발효

이날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문위는 한미 FTA 발효를 위해 "한국과 미국이 각자의 법적 절차를 완료하였음을 증명하는 서면 통보를 교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비준안에 서명했더라도 아직 발효가 된 것은 아닌 만큼, 이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문위는 특히 현 발효조건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이뤄져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101조는 한미 FTA 발효 조건으로 "한국이 한미 FTA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였다고 미국 대통령이 결정하는 때"에 한해 한미 FTA가 2012년 1월 1일 이후로 미국에서 발효된다는 서면을 한국과 교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한국이 한미 FTA 발효를 위해 국내 법 제·개정을 완료했음을 미국이 확인하고, 이를 미국 대통령이 승인해야만 발효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은 이행법 외의 행정조치를 한미 FTA 발효 후 1년 안에만 취하면 된다. 한국은 발효를 위해 국내법을 먼저 고쳐야 하지만, 미국은 나중에 해도 된다. (☞관련 기사 : "법률 개정 절차만 봐도 한미 FTA는 불평등 조약")

송기호 변호사는 "이 대통령의 비준안 서명은 어디까지나 국내법적 절차에 불과하다"며 "관련 법률 제·개정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절차가 아직 남았다"고 말했다.

미국 이행법 검증 필요

나아가 이런 절차를 규정한 미국의 이행법 자체가 한미 FTA 협정 위반이라고 자문위는 강조했다. 한미 FTA 협정문을 법률로 보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외조약을 '행정협정'으로 간주하며, 이를 위해 제정한 이행법만을 법률로 간주한다. 따라서 한미 FTA 협정문은 미국에서 법률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문제가 되는 건 한미 FTA 협정문과 이행법에 상충되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문위는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이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에 한미 FTA 협정문 조항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여했는데도, 미국 이행법은 이를 위반해 미국 법률에 어긋나는 한미 FTA 조항을 무효로 규정했다는 얘기다.

자문위는 "이렇게 되면 한미 FTA는 미국 내에서 기존의 미국 법률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효가 된다"며 "한미 FTA에 효력을 부여하기 위한 충분한 절차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이행법 제도는 미국이 FTA 체결 시 활용하는 특수한 사례"라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당시도 이 문제로 인해 캐나다와 미국 정부 간 마찰이 빚어진 바 있다"고 설명했다.

정석윤 변호사는 "지난 10월 국회 끝장토론에서 한국 정부는 한미 FTA와 어긋나는 미국 법률 조사조차 마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며 "지금은 발효보다 미국의 이행법부터 먼저 검증해야 한다. 한미 FTA와 어긋나는 미국의 이행법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효를 서두르기 이전에 미국의 한미 FTA 준비과정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업은 미국 법원에 호소 못해

미국의 이와 같은 이행법 제도로 인해 한미 FTA가 현 상태대로 발효될 시,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불평등한 지위에 놓일 것이라고 자문위는 우려했다.

자문위는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102조는 그 어떠한 개인이나 기업도 미국에서 한미 FTA 위반이라는 이유로는 (법정) 소송을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며 "한국 기업에 한미 FTA 11장 위반을 이유로 미국 정부를 미국 법원에 제소하거나 투자자국가중재권(ISD)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한미 FTA 협정문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행법과 협정문이 규정한 바가 달라 우리 기업이 한미 FTA에 근거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권한이 없다는 얘기다. 실제 외통부도 지난 10월 펴낸 '한미 FTA 이제 마무리할 때입니다' 자료에서 이 점을 인정한 바 있다.

나아가 자문위는 우리 정부가 협정문 발효를 위해 국내법과 한미 FTA 협정문의 상충되는 부분을 미국으로부터 검증받고 있지만, 이 과정은 전혀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문위는 "현재 한국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와 어긋나는 법률, 대통령령, 부령, 고시 등을 모두 고쳤는지를 검증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시민에게 일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회 역시 모른다"며 "이처럼 발효를 위한 미국의 검증 작업은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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