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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법관 길들이기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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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법관 길들이기를 멈춰라

[이태경의 고공비행] '한미FTA 비판' 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뼛속까지 친미인 대통령과 통상관료들이 서민과 나라 살림을 팔아먹은 2011년 11월 22일, 난 이 날을 잊지 않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최은배 부장판사(45)관련 기사를 25일자 1면에 실어 사상검증을 시도한 데 이어 같은 날짜 사설까지 동원해 최 부장판사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가 최은배 부장판사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사적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SNS 공간에 공정성이 생명인 법관이 개인의견을 남겨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앞으로 FTA 반대 불법 시위를 하다 기소된 시위대나 FTA와 관련한 행정소송에 휘말린 정부 관계자들을 소송 당사자나 증인으로 불러 재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이 판사가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이라고 믿어주겠는가"라고 개탄하며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도록 처신하는 것이 싫은 법관은 법복을 벗는 것이 좋다고 충고의 형식을 띤 겁박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 부장판사가 진보적인 법관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간부라는 점,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전 세계 대법원장들이 모여 채택한 법관행동준칙은 "법관은 대중적인 논쟁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 대법원이 펴낸 법관윤리 안내 책자에도 "법관은 자신이 공정하므로 일반 국민의 의심에 상관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안 된다.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상황이나 행동을 스스로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돼 있다는 점, 존 로버츠 미 연방대법원장은 지난 6월 "9명의 대법관 가운데 누구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원 서기들에게도 트위터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법원 구성원의 SNS 이용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조선일보>의 주장을 요약하면, '평소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지닌 최 부장판사가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 페이스북에 한미FTA를 강력히 비판하는 글까지 남겼으니 만약 최 부장판사가 한미 FTA관련 사건을 맡게 된다면 재판결과의 공정성이 담보될지 의문이며 백보를 양보해 공정한 재판이 이뤄졌다고 해도 국민들이 이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조선일보>가 법관의 언행이 공정한가를 판단하는가?

▲ 25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
최 부장판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격은 여러모로 잘못됐다. <조선일보>는 사적인 공간이라고 보기만은 어려운 페이스북에 최 부장판사가 정치적 의견을 올린 건 잘못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일기(日記) 혹은 동아리방에 한미FTA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고 생각하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긴 최 부장판사의 글을 공론장의 영역으로 끌고 온 게 누구였던가? 바로 <조선일보>가 아니던가?

<조선일보>야말로 전부터 알고 지냈거나 SNS를 통해 알게 된 친구 사이에 정담이나 안부가 오가던 페이스북을 이번 사건을 통해 졸지에 격렬한 정치투쟁의 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개인들이야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서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할 수 있고 여러 사안들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펼칠 수도 있을 테지만, <조선일보>같은 '1등 신문'이 선수로 뛰어드는 건 어떤 기준으로 봐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조선일보>가 법관들에게 공정성을 의심받을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는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이유로 국민들에게 의심받을 언행을 하지 말라고 법관들을 윽박지르고 있는데, 법관의 말과 행동이 국민들에게 의심받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선일보>의 권한에 속한다.<조선일보>가 국민을 빙자해 법관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과 법률이 <조선일보>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건만, <조선일보>는 법관의 언행이 국민들에게 의심받을지 여부를 심판하는 판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공정한 판관 노릇을 수행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조선일보>는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운 잣대를 가지고 법관들에 대한 검증을 자행한다. 그러다보니 촛불재판에 부적절하게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 같은 법관은 <조선일보>로부터 합격판정을 받는 반면, 헌법과 법률에 충실한 법관이나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최선을 다하는 법관들은 <조선일보>로부터 불합격 판정을 받곤 했다.

<조선일보>가 이처럼 법관들에 대한 검증을 자행하는 것은 법관들을 <조선일보>가 지향하는 가치와 질서 체계에 순치(馴致)시키겠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 자체로 사법권 독립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인이다. 또한 <조선일보>같은 거대신문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하거나 생각을 지닌 소수의 법관들을 집요하게 공격한다면 가뜩이나 보수적인 법원이 한층 보수화될 가능성도 높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사법부는 충분히 보수적이다.

'공정성에 흠집이 나기 때문에 법관이 개인의 견해를 밝혀서는 안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관도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인 이상 당연히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다. 다만 법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헌법 103조가 규정하는 것처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면"족한 것이다. '법관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견해가 개별 사건의 판결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국민이 그렇게 의심할 수 있기 때문에 법관들은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숨겨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조선식' 논리비약에 불과하다.

최은배 부장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조선일보>는 이쯤에서 최은배 부장판사에 대한 음해(陰害)를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제 입맛대로 법관들을 길들이려는 생각도 단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행한 일은 <조선일보>을 필두로 한 수구신문과 한나라당의 맹공에 최 부장판사가 의연히 대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언론이 총동원되어 강하게 압박하면 동요하거나 위축되는 모습을 보일 법도 한데, 최 부장판사는 견결하기만하다.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법관으로서의 존엄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는 최 부장판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끝으로 최은배 부장판사가 자신이 쓴 것처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며 다수에게 소외된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법관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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