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부산시는 21일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후쿠시마 이후 동북아 미래와 가능성'이라는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오전 북핵 문제를 주제로 한 '비핵의 전망' 세션에서 발제에 나선 김창수 불교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은 과거 핵포기 국가의 사례를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1970~80년대에 핵무기를 개발하다가 1990년대 들어 포기한 남아공은 최초의 핵 포기 국가다. 김창수 연구원은 남아공의 핵 포기 배경에 대해 소련의 붕괴와 앙골라에서의 적대행위 종식 등 안보위협이 감소한 점을 꼽았다. 또한 핵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면 응분의 보상을 해주겠다는 국제사회의 믿을만한 약속도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에 소속되던 시절 1900여 개에 달하는 전략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던 국가였다. 소련 해체 후 우크라이나가 잠정적인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하자 1994년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고 영토보존을 약속한다는 3자 협정을 체결한다. 이로써 핵 포기가 이뤄졌다.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핵무기를 개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해결 사례로 꼽힌다.
최근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리비아 역시 과거 핵을 포기한 역사가 있다. 김 연구원은 미국도 북핵 6자회담 초기 리비아식 모델(선제 핵 포기 후 경제 지원)을 적용하려 했었지만, 리비아는 영국의 중재로 미국과 대화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 포기 이후 리비아 내전이 벌어지자 서방의 나토(NATO)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은 북한으로 하여금 외세의 개입에 대비해 핵 보유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고하게 하는 원인도 제공했다.
김 연구원은 이 나라들이 북한과는 핵무기 개발 목적이 각기 달라 그대로 적용시키기는 어려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핵 포기 과정에서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이 뒤따랐다는 공통점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원하는 북한과의 대화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제안했다.
이 같은 설명에 토론자로 나선 박선원 미래발전연구원 부원장도 "조지 부시 대통령도 과거 6자회담 초기 노무현 대통령에게 북한의 안전보장을 서명으로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며 공감을 표했다.
박 부원장은 "하지만 2003~04년 무렵 미국이 리비아의 핵 폐기를 위한 비밀협상에 집중하면서 북한과는 적극적인 핵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며 "당시 북한은 곧 자신들에게도 리비아처럼 압박이 들어오겠다고 예측하고 플루토늄을 미국 측에 공개하면서 협상장에 나오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다른 국가들의 핵 포기 사례를 참고삼아 협상 전략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2008년 4월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보고 있다.ⓒAP=연합뉴스 |
리비아는 북한과 관련이 없었지만 시리아나 현재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 등의 경우 북한의 기술 지원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중동 국가들의 핵 문제와 북핵 문제가 좀 더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게 박 부원장의 견해다.
박 부원장은 "2007년 시리아의 핵 개발 사실이 드러나고 미국이 공습에 나섰는데 그해 말 북핵 6자회담에서 '10.3 불능화 합의'가 나왔다"며 "현재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설이 나돌고 있는데 이러한 가능성이 높아질 수록 미국에 6자회담을 재개하자는 북한의 신호도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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