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 스스로도 한미 FTA 조항이 국내 사법체계를 흔들 가능성이 높다고 본 셈이다.
▲여야가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가운데 지난 4일 오전 남경필 외통위원장이 회의실 앞을 지키고있는 야당 보좌진들을 질타하고 있다. 이곳이 열리면 사실상 한미 FTA 비준은 초읽기에 들어간다. ⓒ뉴시스 |
법무부 "한미 FTA 조심해야"
법무부는 지난해 펴낸 '한국의 투자협정 해설서'에서 "한미 FTA 이후 우리가 한미 FTA 발효 이후에는 미래 MFN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상당한 주의를 요망한다"며 "한미 FTA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MFN이란 국가 간 통상조약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신규로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전보다 개방폭을 넓힐 경우, 자동적으로 이전에 조약을 맺은 국가에도 이를 소급적용(최혜국 대우)하는 조항을 말한다. MFN은 한·유럽연합(EU) FTA 체결 당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법무부는 또 간접수용 원칙 또한 한국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간접수용이란 정부의 투자자 소유권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 없이도 직접수용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강화해 특정 건설업체가 예상한 수익성이 나빠졌다고 판단했을 경우, 이를 정부의 직접규제와 동일한 조치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투자자-국가 제소제(ISD)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지는 조항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한 미국 기업이 언제든 간접수용 원칙을 근거로 한국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을 국제 중재재판소로 끌고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헌법 정신과도 불일치한다. 우리나라 헌법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공공복리와 대척점에 있는 재산권은 인정하지 않지만, 간접수용은 재산권을 공공복리보다 우선순위로 두는 미국식 법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간접수용에 대해 법무부는 "부동산가격안정화정책 등 공공복지 목적을 위한 조치는 비례성을 일탈하는 경우에도 간접수용의 예외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된다며 "이러한 조치가 '드문 상황'에 해당하여 비례성을 일탈하는 경우에는 간접수용을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라고 설명했다.
주공도 간접수용 우려
이와 관련, 주택도시연구원은 지난 2007년 발간한 '한미 FTA가 한국 주택 및 부동산 정책·제도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에서 법무부가 설명한 '드문 경우(rare circumstances)'로 "미국법 상의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extraordinary circumstances)'"를 들며 "투자가치의 100% 손실인 경우와 투자 토지에 대한 지속적인 물리적 침해, 그리고 토지의 사용, 수익, 처분권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간접수용 원칙이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정부규제의 성격이 공공복리를 위한 것이므로 간접수용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극히 드문 경우(rare circumstances)'에 해당할 수 있는 '지극히 가혹하거나 목적에 비해 비례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되게 된다"며 "따라서 간접수용에 해당되며 이에 따라 즉각적인 보상이 요구된다"고 해석했다.
우리 헌법 정신으로는 공공복리를 위해 토지에 관해 투자자의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는 상황도 한미 FTA 발효 후에는 간접수용 원칙에 따라 정부가 즉시 보상책임을 져야한다는 뜻이다.
주택도시연구원은 "따라서 FTA 발효 후 새로운 용도지역, 지구, 구역의 지정 시 해당 지정으로 인해 재산권이 받는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FTA 발효 이후 새롭게 지역, 지구, 구역이 지정된다면 여기에서부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간접수용 결정이 내려진다면 기존의 유사 사례에 대한 파급효과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 투자자에게만 보상을 해준다면 내국민에 대한 차별문제가 제기될 것이고, 모든 유사사례에 대해서도 같은 보상을 하게 된다면 기존 체계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미 FTA로 인해 우리나라 사법체계가 적잖은 분쟁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고 본 셈이다.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찾은 주택수요자들. 주택도시연구원은 한미 FTA 체결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조치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대기업의 이해에는 한미 FTA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뉴시스 |
한미 FTA 체결시 부동산 투기열풍 못 잡아
주택도시연구원은 특히 한미 FTA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부 제도로 개발이익 환수제를 꼽았다. 개발이익 환수제란 토지 개발로 발생하는 이익을 국가가 환수해 이를 적절히 배분하는 제도로, 분배정신이 강하게 반영된 땅투기 제어를 위한 정부 조치다. 부동산 열풍 등이 일어날 때 정부가 규제카드로 사용하는 대표적 제도다.
주택도시연구원은 특히 개발이익 환수 방법 중 하나로 흔히 사용되는 기부채납이 "'경제적 충격'에서 현저한 손실로 인정될 수 있으며, 목적에 비해 비례하지 않는 '극히 드문 경우(rare circumstances)'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기부채납 등에 대한 우리나라 내부의 법적 체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미국 투자자에 의해 역으로 우리나라의 기부체납 제도가 개발이익 최대화를 위해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역시 부동산 투기열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도 역시 한미 FTA로 인해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주택도시연구원은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분양가 상한제도의 경우 미국법의 관점에서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분양가 정보 공개)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적인 영업비밀이 공개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상한제는 건설업체들이 영업 자유화를 위해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대표적 부동산 규제조항으로, 참여 정부 말기에 도입돼 부동산 투기열풍을 잡는데 활용됐다. 결국 한미 FTA가 발효되면 부동산 투기광풍이 일어날 경우, 정부가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기가 이전보다 더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1%와 99%' 논쟁이 일어나고 "대기업과 미국에 유리한 협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근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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