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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사무소에서 시작한 '고졸 인생', 그들은 지금…

[학력시대, 고졸이 사는 법·①] 알바도 고졸 미만은 사절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이 고졸 관리직 100명을 공개 채용하기로 했다. 공채에는 내신 1, 2등급 고등학생만 500여 명이 몰렸다. 주요 대기업에서도 생산직 등 고졸 인력 채용을 지난해보다 13% 늘리기로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학력시대가 끝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졸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한 고졸자는 "학력시대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대다수 기업은 고졸자를 잘 대우해주지 않는다. 대졸자라면 정규직으로 뽑을 자리도 고졸자는 계약직으로 뽑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업이나 대학 입시 커뮤니티에는 "고졸 지원도 1등급만 보는 세상"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학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는 통념 아닌 통념도 여전히 강고하다. <프레시안>은 고졸 이하 학력으로 살아가는 20대들을 만났다. 이들이 취업과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은 무엇인지, 한국은 왜 대학 만능주의 사회가 됐는지를 살피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력사무소에서는 고졸이라고 얘기하라고 시켰다. 자퇴생은 공장에서 싫어한다고 했다. 그때 나이 스무 살. 인력사무소에서 시키는 대로 말하자 바로 취직이 됐다.

첫 일터는 휴대전화 덮개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불량품을 검사하고 흠집 난 제품은 사포로 다듬는 일을 했다. 주간팀일 때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야간팀일 때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일했다. 일이 끝나면 씻지도 못하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주말에도 일했다. 한 달에 단 하루, 야간에서 주간으로 팀이 바뀌는 날이 쉬는 날이었다. 그렇게 밤낮으로 하루 12시간씩 일해 번 돈은 한 달에 150만 원. 그러던 공장 일을 1년 만에 그만뒀다. "반장님이 농땡이 피운다고 쌍욕을 날리고 반복적으로 갈궈서"라고 했다.

윤은정(가명·25) 씨는 골똘히 생각하다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때는 공장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주니까 좋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다시 그 일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알바 자리도 고졸 미만은 사절"

윤 씨가 '거짓말 면접'을 하게 된 계기는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가 사업하다가 회사에 부도가 났다. 학비를 낼 형편이 안 됐다. 학교에서 이런저런 서류를 떼어오면 장학금을 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내가 그 돈도 못 내겠느냐"며 마다했다. 결국 한 학기 학비 30여만 원을 못 내서 학교를 그만뒀다. 19살 즈음이었다.

그 이후로 윤 씨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했다. 혼자 살기에 나서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음식점 서빙, 공장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지난해에는 마지막으로 프랜차이즈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늘 그렇듯 그때도 고졸이라고 거짓말했어요. 사실 지금까지 구한 거의 모든 알바에서 고졸이라고 얘기했어요. 알바 구인광고에 항상 고졸 이상이라고 돼있거든요."

▲ 마이스터 고등학교 학생들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연합

한 번은 샤브샤브집에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장이 학력을 물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사장은 "아직까지 고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어떻게 된 거냐. 나중에 연락주겠다"고 했다. 물론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려고 사무직 면접도 봤지만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졸업 증명서를 요구했다. "사무직 면접에서 고졸이라고 얘기하고 합격했는데 졸업증명서를 달라고 해서 포기했어요. 그 다음부터 애초에 고졸 이상만 갈 수 있는 직업은 아예 안 보죠. 그렇다 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뻔했어요."

"인생을 게임 퀘스트 깨듯 살아야 하나요?"

몇 년은 돈을 버느라 바빴다. 틈틈이 독학하면서 검정고시를 두 번 봤지만 1~2점이 부족해서 떨어졌다. 검정고시 학원에 가는 것마저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윤 씨에게는 쉽지 않았다. 피자가게에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하고 나면 학원 갈 시간이 없었고, 일하는 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고 학원에 다니려니 학원비 20만 원이 안 모아졌다.

윤 씨는 검정고시를 포기했다. 마음은 편해졌다. 대신 학력이 필요 없는 네일아트 일을 국비 장학생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끝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고졸이라는 퀘스트(게임에서 특정 아이템을 획득하는 등의 임무)를 깨면, 학원에 다녀야 하고 학원에 다니면 또 대학에 가야할 것 같고…."

"저는 노력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싫어요. 공장 다니면서 스스로 공부해 대학 가서 장학금 받는 이야기를 두고 미담이라고 하잖아요. 그게 미담인 이유는 정말 많은 사람이 시도했는데 그 한 사람만 성공했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대학에 가면 누가 장학금을 주나요? 운 좋게 장학금을 받아도 집세며 생활비를 벌려면 학교 다니면서 또 12시간씩 일해야 할 텐데."

"고졸 누나, 10년차지만 여전히 그 자리"

학력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는 직업을 준비하는 윤 씨와는 달리, 뒤늦게 대학에 다니는 사람도 있다. 최성준(가명·24) 씨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3년제 야간대학에 다닌다.

컴퓨터 관련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최 씨는 졸업하고 바로 일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인터넷 서버 기술직이라고 알고 들어간 직장에서 그에게 전화상담 일을 시켰다. 하루 8시간씩 일하고 토요일은 격주로 쉰 끝에 받은 돈은 한 달에 100만 원 미만. 회사를 그만둔 그에게 대학에 가라고 설득한 건 '고졸'인 그의 누나였다.

"누나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취직해서 지금 10년째 한 회사에서 일해요. 10년차인데 아직도 진급이 안 됐어요. 그런 누나를 보고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죠. (똑같은 일을 해도) 초봉도 대졸과 고졸은 월급만 20만 원씩 차이나고, 진급도 대졸자들만 하니까요."

최 씨는 집에서 통학하며 방학 때는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등록금을 벌었다. 그가 다니려던 컴퓨터 기술직 관련 회사에서는 특정 학과 출신을 요구했다. 그렇지 않은 일자리는 대부분 기간제이거나 비정규직이었다.

"취업 정보를 찾다 보면 제가 관심 있는 컴퓨터 분야에서는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대부분 조건에 대졸자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 게 아니면 경력직인데, 고등학교 막 졸업한 사람은 경력이 없죠. 힘들었어요. 애초에 고졸자는 취업 조건에서 지원할 기회조차 안 주니까요."

비정규직 취업자, 고졸 이하가 70%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전체 비정규직 취업자 599만5000명 중에 고졸 이하는 413만8000명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비정규직 차별 문제와 학력 차별 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대학 진학률이 높은 20, 30대를 조사대상으로 좁히면 고졸 취업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압도적일 것으로 보인다.

정규직 취업자를 조사하면 고졸 이하 취업자 비율은 크게 낮아진다. 전체 정규직 취업자 1151만5000명 가운데 대졸 이상은 616만4000명으로 절반 이상(53.5%)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고졸 423만9000명(36.8%), 중졸 68만7000명(5.9%), 초졸 이하가 42만6000명(3.7%) 순이었다.

대졸 이상과 고졸 이하의 임금격차도 뚜렷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졸자와 대졸자 간 첫 연봉 격차는 계속 늘어났다. 2002년 당시 고졸자의 첫 연봉은 평균 1220만 원, 대졸자는 평균 1652만원으로 1.35배 차이를 보였으나 2009년에는 각각 평균 1648만 원, 2436만 원으로 1.48배 차이로 늘어났다. 대졸자가 고졸자보다 평균 1.5배 임금이 높은 셈이다.

이 때문일까.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2001년 40.8%에서 2010년 71.1%로 급증했다. "대학 나온 사람들에게 그나마 인센티브가 있으니까요." 최 씨는 덤덤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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