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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림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돌봄노동 연속기고·④ 간병인] 에이즈 환자 주사에 찔렸는데도 병원 왈…

오는 29일 2시부터 서울역에서는 '제2회 전국돌봄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이번 대회에서는 보육교사, 간병인,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등 타인을 돌보는 돌봄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제기하려고 한다. 왜 이번 대회에서 건강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지, 돌봄노동자들의 노동건강실태는 어떠한지 돌봄노동자들의 연속기고를 진행한다. <기고자>

- 돌봄노동 연속기고
"어린이집에서 일하다 뱃속 아기 유산해도…"
"침대에서 휠체어, 목욕탕까지 곡예를 하며 갑니다"
"장애인 들다 허리 다쳐 병원비만 200만원, 산재는커녕…"

얼마 전 HIV/AIDS 감염(후천성면역결핍증) 환자를 돌보던 간병노동자가 병실에 있는 주사바늘에 찔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간병인은 병원 측에 검사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병원 내 감염관리 시스템이 있음에도 해당 간병인을 제외했습니다. 결국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비와 치료비를 포함해서 25만 원을 고스란히 본인이 부담한 것입니다. 병원 내에서 발생한 감염 사고에 대한 검사비와 치료비를 '직원이 아니니' 간병인이 내야한답니다. 감염되었을까 두렵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병원측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올해 7월에는 간병인 두 사람이 환자로부터 옴에 전염된 사례도 있었는데 이때도 병원은 책임지지 않았고 간병인이 비용 모두를 부담했습니다.

간병인들은 우리의 일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부릅니다. 간병인들은 병원에서 24시간, 환자의 곁을 지키며 식사를 돕고, 화장실을 함께 다녀오고, 세수부터 목욕까지 환자가 수술 후 회복되는데 도움을 주는 모든 일상업무를 합니다. 중증의 환자를 돌볼 때는 석션(가래 빼주기), 욕창치료, 넬라톤(소변 빼주기)등 간호사의 업무도 하고 대소변량을 체크하고, 밤새 환자의 상태를 의료진에게 알려주고, 침상목욕을 해 주고, 환자를 검사실에 데리고 가고, 물리치료실도 함께 다닙니다. 환자의 체위를 변경하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유동식을 제공하는 일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간병인'이 해야 한다는 건 입원을 해보았거나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일상적인 감염위험에 노출, 병원은 '직원 아니니' 책임 없다

간병인이 일하는 곳은 병원입니다.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오는 곳입니다. 제가 속해있는 공공운수노조의 간병분회 소속 간병인들은 병의 종류에 따라 환자를 기피하지 않는 것을 내부 수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힘이 많이 드는 중증 환자나,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환자들도 간병을 원한다면 거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그렇게 일을 할 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간병인들은 환자로부터 감염되었을 때 병원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HIV/AIDS 환자를 돌보다 주사바늘에 찔린 간병인에게 직원이 아니라고 '검사'도 해주지 않는 병원입니다.

지난 2009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간병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간병인들의 80%가 "환자로부터 감염될까봐 불안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간병인의 83%가 병원 내에서 감염되거나 부상을 당했어도 '개인적인 치료나 휴식'으로 처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60% 이상의 간병인들이 병원 측에 치료를 요청한 적도 없고, 요청했을 때도 26%이상이 병원에서 "개인적인 치료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병원의 직원이 아니니 아무런 조처를 취해줄 수 없다는 병원측의 태도에 화도 나지만 당장 생계를 위한 일이니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감염환자의 간병도 거부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내부수칙은 사실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 간병노동자 실태조사, 2009년 205명 응답

간병인 노동자성 인정, 산재 전면적용 시급

간병인들은 일상적인 감염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옴, MRSA(메치실린 내성 황색 포도상구균), 폐렴, 피부병 등…. 하지만 병원은 간병인들의 감염예방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고, 감염이 발생한 후에도 적절한 치료나 보상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간병인들은 환자에게 감염된 경우 환자가 처방받은 약을 함께 나누어 바르거나, 스스로 치료비를 전액 부담하며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감염이 발생하면 치료비도 문제지만 '2차 감염'을 막기 위해 간병도 중단해야 하니 돈벌이도 끊깁니다.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간병인이 많은데 일마저 못하고 치료나 수술도 받아야하니 간병인들의 삶은 어렵고 인권은 무시당한 채 살아야하는 이중 고통의 서러운 나날들을 사는 간병인들이 있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들을 괴롭히는 건 감염뿐이 아닙니다. 무거운 환자를 휠체어로 옮기거나 체위를 변경하는 작업을 하면서 허리를 다치거나 손목이나 어깨의 인대가 파열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산재로도 인정되는 근골격계 질환입니다. 얼마 전에는 환자와 보호자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보호자가 집어 던진 보온병에 간병인이 얼굴을 맞아 치아가 부러지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병원 내에서 발생한 일이지만, 간병인의 치료과정에도 치료비 보상과정에도 누구도 나서주지 않습니다. 감염도, 근골격계 질환도,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사고도 작업장에서 작업 중에 발생한 질병이니 '산업재해'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선 직원이 아니라 하고, 국가는 노동자가 아니라하니 병원 측의 치료도 산재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병제도화, 환자와 간병인 모두에게 시급하다

▲ 간병노동자. ⓒ프레시안(김윤나영)
가족 중에 입원환자가 생겨서 병원에서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간병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실 겁니다. 입원실에는 환자를 위한 침대와 보호자를 위한 자그마한 간이침대가 있습니다. 이곳이 간병인들의 잠자리입니다. 병원에서는 환자에게는 식사가 제공되지만 보호자는 밥을 사 먹어야 합니다. 하루 24시간 꼬박 일하고, 6만 원을 받는 간병인들이 하루 세끼 밥을 사 먹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치 밥을 해서 비닐봉지에 꼭꼭 담아 가지고 다닙니다. 병실 냉동고에 가득하던 비닐봉지에 담긴 밥. 그 밥이 우리 간병인들의 밥입니다. 그걸 녹여서 배선실에 서서 먹어야 합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병원에서 일주일씩, 혹은 그 이상을 생활하기도 하는 간병인들이지만 옷가지며 짐들을 둘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입원비와 치료비에 더해 간병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간병비가 부담스럽고, 간병비를 지불했으니 환자를 더욱 살뜰히 돌보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간병인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하지만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얼린 밥을 녹여 먹으며,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지시에, 모여서 떠들지 말라는 간호사들의 눈총까지 받아가며 하루 24시간 꼬박 일하고 받는 간병비는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간병인이 없다면, 병원이 운영될 수 있을까요? 모든 환자의 보호자들이 병원에서 간병을 할 수 없다는 걸, 병원의 현재 인력으로 환자들을 돌볼 수 없다는 걸 보호자들도 병원도 국가도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도 그림자가 아닌 '노동자'가 되고 싶습니다. 병원에 고용되어, 감염과 관련한 안전 교육도 받고, 병원 직원으로서 보호조치도 받고, 아프면 산재 적용도 받고, 개인과 개인의 거래로 머쓱해하며 받는 간병비가 아니라 근로기준법 따져서 지급되는 '월급'도 받고 싶습니다. 간병 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하고, 간병노동자를 병원이 직접 고용하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생계를 위해 간병을 하다 건강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병원의 필수인력인 간병인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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