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광장에 찬송가를 패러디한 노래 '내곡동 가까이'의 반주가 울려퍼졌다.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합창했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개표에서 박원순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다. 26일 저녁부터 자정을 넘겨 27일 새벽까지, 시청광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날, 바로 이 자리에서 한명숙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며 "오세훈 방 빼"라고 외쳤던 시민들은 곧이어 들려온 오세훈 전 시장의 재선 소식에 망연자실 자리를 떴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절망의 축제가 1년만에 희망과 열정의 축제로 달궈졌다.
2000여 명의 시민들이 이날 밤, 새 서울시장을 맞았다. 주로 직장인과 대학생, 연인,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 등 20~30대 젊은 층들이 주를 이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중장년층도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새벽 12시 40분께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 박영선 민주당 최고위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과 함께 광장에 나타나자 시민들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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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당선자는 "제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여러분은 단 3일 만에 선거에 필요한 39억 원의 돈을 마련해 줬고, 조직이 없다고 할 때 유모차 부대를 끌고 왔다. 여러 언론이 나를 공격할 때 스스로 미디어가 돼 나를 지켜줬다"며 "무엇보다 시민 여러분이 바로 이번 승리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자는 또한 "시청광장은 앞으로 시민 여러분의 것"이라며 "시민이라면 누구든 나와서 무슨 말이든 마음껏 주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용산참사와 같은 잔혹한 일이 서울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새 서울시장에 대한 기대를 묻자 박준형(가명·34) 씨는 "오세훈 전 시장은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기득권 입장만 대변했던 것 같다"면서 "새로운 시장은 대중과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타지에서 서울로 상경해 직장에 다닌다는 문윤현정(27) 씨는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나가서 저축은 꿈도 못 꾼다"며 "새 시장이 사회초년생을 위해 주거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서울을 디자인한다는 게 말만 거창하지만 너무 외관에만 치우쳤다"면서 "서울 디자인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디자인해야 할 때다. 서민 복지를 위해 예산을 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보다 앞서 26일 오후 6시경에는 일찌감치 광장에서 '인증샷 놀이'를 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을 들고 '투표 인증샷을 서로 자랑하는 5~6명의 직장인들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고 했다. 이채란(26) 씨는 "그냥 심심해서 왔는데 설렌다"며 "높은 투표율을 각하께 헌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이 근처라서 잠깐 구경나왔다는 강진구(가명·33) 씨는 "사회에서 몰상식한 일이 너무 많다"며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인증샷 10문 10답'에서 유명한 사람이 투표 인증사진을 못 올리게 한 건 말도 안 된다"고 운을 뗐다. 강 씨는 "진보, 보수 정치성향을 떠나서 현 정권이 너무 과민 반응하는 것 아니냐"며 "정권이 트집 잡는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광장에는 연예인 김제동 씨가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김 씨는 "오늘 선거가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줘서 기쁘다"며 박원순 후보에게 "이제 시장이시죠? 정치인이 된 순간 코미디의 대상, 감시의 대상이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권력을 잡은 자들은 시민들에게 까불지 말라"며 "대통령, 국회의원이 모두 비정규직이다. 그러니 비정규직 문제를 책임지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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