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더 놀고 더 쉬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더 놀고 더 쉬자"

[이정전 칼럼] "노동중독의 한국, 새로운 길 찾을 때"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여가의 가치가 커진다. 그래서 소득이 10% 늘어난다면 관광수요는 10%보다 훨씬 더 많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보다는 여가를 더 즐기려 한다는 사실이 각종 여론조사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직장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돈보다 여가를 더 원한다는 것은 각자의 행복에 여가가 돈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 우리 국민도 여가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생산과 소득의 급속한 증가다.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한 나라다. 경제성장률이 인구증가율보다 훨씬 높았는데, 이는 생산성이 빠르게 상승하였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1970년대에 비해서 1인당 생산량이 10배 증가하였다고 해보자. 이 말은 동일한 노력으로 과거에 비해서 10배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동일한 생산량을 10분의 1의 노력으로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과거에는 한 사람이 10시간 일해야 했지만 이제는 1시간만 일해도 족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이 높아지면,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이 열린다. 한 가지 극단적 선택은, 모든 사람이 하루에 한 시간씩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놀기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백수의 왕자라는 사자나 호랑이는 하루에 한 번의 사냥으로 배를 채우고 나면 나머지 시간에는 내내 잠자거나 놀이를 하거나 산책하면서 지낸다.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은, 모두가 과거와 똑같이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면서 열배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총생산은 기본 생계수준을 훨씬 초과하게 되는데, 이 초과된 부분을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예컨대, 노동의 생산성이 10배로 높아져서 한 시간만 일해도 기본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데 10시간씩 일한다면 9시간 일해서 생산된 것은 잉여가치가 된다. 인간의 생산력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은 잉여가치가 크게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생산성이 10배 높아졌다면, 과거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10배 더 잘 사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경제적으로는 과거와 똑같지만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한 여가를 더 많이 가지는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 극단적 선택의 중간에 무수히 많은 선택들이 놓여 있다. 예를 들어서 모두들 오전 근무만 하고 점심때 퇴근할 수도 있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만 일하고 나머지 날에는 놀 수도 있다. 이 경우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서 두 배 가까이 높아지지만 모두들 과거에 비해서 여가를 훨씬 더 많이 즐기게 된다. 그러나 이래서는 노는 날이 너무 많다고 생각된다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만 일하고 나머지 날은 휴일로 하는 제도를 택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오전 근무만 할 경우(월요일과 화요일에만 일할 경우)에 비해서 경제적 생활수준은 더 높아지지만 여가는 약간 줄어든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에는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 못지않게 여가도 국민의 복지에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진정 각자의 행복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생산성이 현저하게 높아질 때마다 여가와 근로시간의 비율을 재조정해야 한다. 각자가 몇 시간씩 일해서 얼마만큼의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인지, 무엇의 생산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인지, 창출된 잉여가치는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 국민복지에 직결된 굵직한 사항에 대하여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 모든 것들을 거의 대부분 업계가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 다만, 사후적으로 시장의 제재만 받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자는 그저 임금이나 받을 뿐이지 근로시간이나 일거리 등 근로조건들 그리고 노동 생산물을 얼마에 팔아서 어느 정도의 이윤을 올리며 그 이윤을 어떻게 처분하였는지 등에 대하여 별 발언권이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하여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경영권을 침해한다고 해서 회사에서 쫓겨난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경영권은 최고로 신성시 된다.

이 결과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네덜란드의 1.6배, 독일의 1.5배로서 OECD국가 중에서 가장 길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바쁘게 산다는 미국의 노동자보다 우리나라 노동자가 23% 더 오래 노동하며, 가장 부지런하다는 일본 노동자보다 26.6% 더 오래 일한다. 얼마 전 대법원은 퇴근 후 회식시간도 근무시간의 연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이 시간까지 합치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가 될 것이다.

▲ 야근을 미화하는 대기업 이미지 광고. ⓒ과학동아
얼마 전 모 일간신문사는 "한국사회, 사회계약을 다시 쓰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8 가지 제안을 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근로시간의 단축이었다. 이 운동에 많은 지식인들이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부터 미국 각 도시에서 자본주의 폐단의 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다른 나라로 번질 조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민의 분노를 타고 새로운 바람이 불면서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계약을 다시 쓰자는 운동은 매우 시의 적절해 보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