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은 [Loveless]로 한해 먼저 발표된 라이드(Ride)의 [Nowhere]와 함께 슈게이징 록을 정의해버렸다. DJ 프리미어는 갱 스타(Gang Starr)의 두 번째 앨범 [Step in The Arena]로 재즈 힙합을 태동시켰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는 [Blood Sugar Sex Magik]으로 펑크(punk)와 펑크(funk), 메탈의 황금분할을 이뤄냈다.
LA 흑인폭동을 예견했던 아이스-티(Ice-T)의 폭탄과 같은 [OG Original Gangster]는 대중음악에서 정치적 발언이 대자본에 의해 밀려나는 서막을 열었다. 펄 잼(Pearl Jam)이 아메리칸 하드 록에 양심을 넣았고, 슬린트(Slint)는 일찌감치 포스트 록의 출발을 예고했으며,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은 트립합을 태동시켜 '힙합에 대한 얼터너티브' 열풍과 온갖 감상적 전자음악에 영감을 남겼다.
▲'20년을 정의한 앨범.' ⓒGeffen |
[Nevermind]는 메탈리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마이클 잭슨의 신보를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만들었으며, '라이트 메탈'을 쓸어내버렸다. 이 앨범은 메탈의 남근주의와 결별함으로써 70년대 이후 내리 계속된 대중음악의 남성우월주의를 걷어찼고, 록 소비자를 20대 청년과 고루한 중년 세대에서 십대로 끌어내렸으며, 탈정치적인 세대의 정치의식화 기반을 닦았다. 지난 십여년을 기만당했음에도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던 부모 세대와 달리, 70년대의 아이들은 어설픈 연주, 뜻을 알기 힘든 웅얼거림으로 가득했던 니르바나의 절망의 팝송을 듣고 이전 세대와 단절을 고했다.
무엇보다 니르바나는 펄 잼, 앨리스 인 체인스 등 동년배 록 커뮤니티의 폭발을 일으켜 록이 오랜 암흑기를 지난 후 다시 주류로 오르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하에서 잠자던 온갖 형태의 록 실험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속도와 광범위한 범위로 대중에게 노출됐고, 이는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이천년대 대중음악의 '탈 노선화'를 이끌었다. 한 장의 앨범이 이처럼 많은 일을 해낸 것은 아마도 [Nevermind]가 마지막일 것이다.
[Nevermind] 발매 20주년을 맞아 게펜(Geffen)사는 당연하게도 대형 이벤트를 준비했고, 이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됐다. 넉 장의 시디와 파라마운트 극장의 라이브 영상을 담은 고가의 박스세트는 지난달 예매 과정에서 일찌감치 예약이 끝났다. 두 장의 시디로 구성된 버전과 넉 장의 엘피 버전 등이 오는 7일 국내에도 풀린다. 니르바나의 열성 팬이 아니고, [Nevermind]의 리마스터된 음질을 감상하고픈 팬이라면 그나마 덜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이 앨범을 노리는 게 나아 보인다.
20년째 맞은 1991년이니만큼 이 밖에도 갖가지 다양한 상업상품(그렇다, 상품이다)이 팬들의 호주머니를 급습할 예정이다.
▲U2 [Achtung Baby]의 최고가 박스세트. 웬만큼 돈에 여유가 있지 않은 한, 이 정도 호화 박스세트에까지 눈독을 들이기란 쉽지 않다. 대중음악 유통채널이 인터넷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제 시디와 엘피 등은 고가 전략으로 활로를 뚫고 있다. ⓒIsland |
이미 지난해 20주년을 기념해 1집부터 3집까지의 모든 음반이 리마스터화된 펄 잼의 경우, 이들의 열성 팬인 카메론 크로(Cameron Crowe) 감독의 다큐멘터리 <Pearl Jam 20>이 개봉된다.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의 밴드 라이브 음원을 모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사운드트랙 역시 두 장의 시디로 구성돼 발매됐고, 펄 잼 멤버들이 직접 고른 플레이리스트 등이 담긴 책도 나왔다.
여러 모로, '1991년 세대'들은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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