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산 쇠고기에 대해 국내 시장이 완전 개방되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추가 개방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추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게 불을 보듯 뻔하고, 이 경우 캐나다, 유럽연합(EU) 등과도 추가 개방을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쇠고기 문제 입장 변할 수 있어"
29일 이시형 외교통상부 통상교섭조정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가 협상 초기 '쇠고기 문제는 한·호주 FTA에서 완전히 배제'라는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이후 전체적인 협상 과정에서 전략상 입장을 달리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후 협상에서 호주의 요구대로 호주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호주 정부는 그간 줄기차게 현재 40%인 호주산 쇠고기 관세를 완전 철폐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 왔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정부 고위관계자는 28일 "한·호 FTA 연내 타결을 위해 쇠고기 개방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다만, 축산농가의 반발을 고려해 한·미 FTA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적용된 기준(향후 15년에 걸쳐 관세 철폐)보다 좀 더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엄격한' 조건이란 15년보다 장기간에 걸친 관세 철폐를 의미한다.
다만 정부는 이와 같은 입장 변화 가능성이 호주산 쇠고기의 관세 철폐 입장 확정으로 내비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농가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 조정관은 "앞으로 (한·호주 FTA) 협상 경과를 잘 지켜봐 달라"면서 "정부는 호주와 FTA를 금년 중에 타결 짓는다는 양국 정상들 간 합의를 존중해서 협상을 추진하고 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그때(협상 초기) (호주산 쇠고기를 협상 대상에서) 배제했다가 이번에 입장을 바꿔서 (협상) 품목으로 포함을 시킨다, 아니다, 이렇게 확인을 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농림수산식품부도 29일 보도자료를 내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현 상황에서 협상 결과를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특히, 쇠고기와 관련해서는 양국간 교역관계, 관련업계의 우려, 품목특성 등을 종합 고려하여 축산업에 미치는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입산 쇠고기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던 호주산 쇠고기는, 최근 가파른 속도로 올라오는 미국산 쇠고기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호주 정부가 협상에 매달리는 이유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가 없음). ⓒ뉴시스 |
추가 협상요구 이어질 듯
호주산 쇠고기는 지난 5월 기준으로 국내 수입쇠고기 시장의 47.2%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점유율을 지니고 있다. 이번 협상으로 관세 완전 철폐가 확정될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게 확실하다.
이 때문에 역시 추가 협상을 요구해 온 미국(5월 점유율 37.9%) 등 다른 나라와도 쇠고기 추가 개방을 위한 협상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은 이미 한국 정부에 쇠고기 추가 개방을 공식 요구한 상태다. 양국이 촛불집회 이후인 2008년 합의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로 수입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런데 양국 정부가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면' 전면 수입개방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고, 한 나라가 협상을 요구할 경우 다른 나라는 일주일 이내에 무조건 응해야 하는 조건 역시 달았다.
미국 정부가 호주산 쇠고기 완전 개방을 빌미로 자국 쇠고기에도 같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할 경우, 한국 정부도 협상테이블에 앉아야 한다는 의미다. FTA로 말미암아 수입산 쇠고기에 대한 '도미노 협상'에 한국 정부가 끌려다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광우병 청정국가인 호주산 쇠고기를 대상으로, 미국보다 좋지 않은 대우를 해줄 경우 호주가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미국보다 좋은 대우를 해준다면 미국, 캐나다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결국 첫 단추(미국과 쇠고기 협상)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며 "미국과 재협상하지 않을 경우, 이런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한우 농가의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수입산 쇠고기와 가격 경쟁이 되지 않는 마당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미 FTA 저지 농수축산 비상대책위원회'는 다음달 6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정부를 성토하는 집회를 연다. FTA 문제에 집중해 온 시민단체, 학계의 대응도 본격화할 마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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