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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번지르르한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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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번지르르한 나라, 대한민국"

[이정전 칼럼] "소득 높아질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 중요해져"

얼마 전 한국개발원(KDI)은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한국개발원이 개발한 지표에 따르면 삶의 질에서 우리나라는 OECD의 39개국 중에서 27위를 기록했다. 100명 중에서 70등 한 셈이다. 국가간 행복지수 비교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세계가치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65개 국가 가운데 22위로 중상위권에 속했으며 일본보다는 조금 아래였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점점 더 불행한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이 두 조사에서 이용된 삶의 질 지표가 다르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자살률, 실업률, 상대적 박탈감 등 여러 요인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어려운 세계경제의 여건 속에서나마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루어온 덕분에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고, 해마다 엄청난 무역흑자가 쌓이며, G20 정상회의, 세계 육상대회, 동계올림픽 등 각종 굵직한 국제행사를 개최하거나 유치하는 등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의 질은 오히려 떨어졌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겉만 번지르르한 나라라는 것이 아닌가. 왜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 국민, 특히 사회지도층이 겉멋에 빠져서 실속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동안 왜 우리 국민은 더 행복해지지 못했을까? 지난 반세기 선진국에서 지속적으로 관측된 '행복의 역설'(KDI 발표로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잘 읽어보면 그 한 이유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빈부격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행복의 역설이란 1인당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소득이 늘어도 행복지수가 높아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행복의 역설은 소득수준이 대략 2만 달러 이상일 때에만 적용되는 현상이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연간 소득이 대략 1억원 넘는 가구에만 적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구의 소득이 1억원을 넘어서면 그 다음부터는 소득이 늘어나봐야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득수준이 2만 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행복감도 더 커진다. 오늘날 선진국의 경우 국민 대부분의 연간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따라서 이런 나라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후진국에서는 국민 대부분의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이하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후진국이야말로 국민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꼭 필요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후진국 중간에 서 있다. 가구당 연간소득 1억 원을 기준으로 소수의 고소득계층이 있고 다수의 저소득계층이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계속 높아져서 2만 달러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주로 이 고소득계층의 소득만 크게 늘어났다. 행복의 역설에 의하면, 이런 고소득계층의 소득이 늘어나봐야 이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저소득계층의 소득수준이 높아져야 하는데, 빈부격차의 확대가 시사하듯이 우리나라 저소득계층의 소득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의 중산층이 저소득계층으로 몰락했다. 그러니 중·저소득계층의 행복지수 역시 올라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속적 경제성장과 엄청난 무역흑자가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나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이번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KDI는 "성장과 사회통합, 성장과 환경의 조화를 이루는 발전 전략을 절실히 모색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경제성장에 대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앞으로도 양극화가 계속되며, 그래서 경제성장의 결과 고소득계층의 소득만 증가하고 저소득계층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행복의 역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제성장을 추구할 것인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결국 각자의 행복이다. 만일 이 사실에 모두들 동의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고소득계층을 제외한, 저소득계층의 실질적 소득수준만을 높이는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그러한 경제성장만이 우리 국민을 전체적으로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제성장을 부유층이나 업계가 찬성할 리 없다. 사실, 과학자들이 밝혀낸 행복의 역설을 가장 강력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은 경제학자들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업계의 사람들이다.

이들이 행복의 역설을 부정하든 찬성하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소득계층만을 위한 경제성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돈의 대부분을 부자들이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적 대안은 무엇인가? 소득재분배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사회복지를 대폭 확충하는 수밖에는 없다. 즉, 경제성장의 결과 고소득계층에게 돌아갈 소득의 일부를 떼어서 저소득계층의 생활수준을 실질적으로 높이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저소득계층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린다면, 부자들의 행복은 어떻게 할 것인가? 행복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하면,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다음부터는 의식과 생활태도를 바꾸어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이 과학자들이 몹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고정관념, 즉 돈이 많으면 행복해진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자들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이런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그 다음에는 스스로 행복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과학자들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왜 부자들은 돈을 더 많이 벌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가? 이들은 이미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하고 있어서 더 이상 돈으로 행복을 살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시장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물릴 정도로 즐기다 보니 이제 이런 것들로부터의 행복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소득계층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행복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에 의하면, 화목한 가정, 참된 사랑, 좋은 인간관계, 진정 보람 있는 일, 등이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의 원천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이 원천의 중요성은 커진다. KDI의 주장처럼 경제성장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도 필요하지만, 우선 우리 국민, 특히 고소득계층의 의식개혁과 생활태도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 지난해 G20 정상회의 당시, 회의 장소인 코엑스 입구. 한국은 대형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나라가 됐지만, 그에 비례해서 국민의 행복 지수가 높아지지는 않았다. ⓒ프레시안(선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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