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두 번째와 네 번째로 큰 이동통신사의 합병 계획에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거대 이동통신사의 출연으로 경쟁이 저하되면 그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이유다.
미 법무부는 8월 31일(현지시간) 이동통신업계 2위 사업자 AT&T와 4위인 'T-모바일 USA'의 합병을 막기 위한 소송을 워싱턴 소재 미 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두 회사의 합병이 통신업계의 독과점을 심화시키고 경쟁을 완화시켜 통신요금 인상 등 부작용을 부를 것이라며 반독과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콜 법무부 부장관은 "활기가 넘치고 경쟁적인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 합병을 저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이 합병이 이뤄지면 미국 소비자 수천만 명이 가격은 비싸고 질은 떨어지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고, 이동통신업체에 대한 선택의 폭도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AT&T는 지난 3월 T-모바일 USA를 390억 달러(약 41조45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1위 사업자인 버라이존에 대항하기 위해 덩치를 불리겠다는 계획이다. 독일 도이체텔레콤의 자회사로 미국에서 373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T-모바일 USA와 2위 사업자인 AT&T가 합병하면 시장 점유율이 39%로 버라이존(31%)을 제치고 1위가 된다.
하지만 법무부에 의해 AT&T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합병이 무산되면 AT&T는 약 30억 달러의 위약금도 물어야 한다. AT&T 측은 법무부의 소송에 대해 "합병이 많은 혜택을 가져온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며 법원 심리가 신속하게 이뤄지길 촉구했다. T-모바일 USA도 실망을 표하며 AT&T와 함께 법정에서 대응할 뜻을 밝혔다.
합병 계획에 먹구름이 끼면서 이날 뉴욕증시에서 AT&T의 주가는 종가기준 3.85%가 떨어졌다. T-모바일 USA의 모기업 도이체텔레콤의 주가도 독일 프랑크푸르트 주식시장에서 7.6% 급락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무선통신사업자 서비스 면허 승인권을 가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줄리어스 제나코스키 의장은 "FCC 역시 이번 인수 건이 공정경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상원 반독점 분과위원회의 허브 콜 위원장(민주당)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소비자 보호를 위한 바람직한 조치였다며 환영 입장을 나타냈다.
그동안 AT&T와 T-모바일 USA의 합병을 반대해온 시민단체 '프리 프레스'(Free Press)의 크레이그 아론 대표도 이날 '세이브 더 인터넷' 홈페이지에 기고한 글에서 "팩트(fact)가 정치를 이겼다"며 "오늘날 워싱턴에서 기업은 지나치게 자주 정치를 좌우하지만 이번만큼은 정책 결정자들이 정치보다 법을 앞세워 힘 있는 기업들에 적용했다"고 환영했다.
아론 대표는 "수많은 활동가들이 반대 서한을 보내고 항의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AT&T는 이미 합병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기에 어떻게든 소송에서 이기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AT&T가 재앙에 가까운 합병을 중단하고 자사 네트워크 확대와 고객 서비스 개선에 투자하길 원한다"라고 말했다.
시장 경쟁을 보장하려는 미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이동통신사의 독과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4세대 이동통신을 사용할 수 있는 '황금 주파수'인 1.8㎓ 대역을 처음으로 경매에 붙였고 SK텔레콤이 KT와의 '돈 대결' 끝에 경매 시작가격의 두 배에 가까운 9950억 원에 낙찰 받았다. 당국이 소수 이동통신사들의 과당 경쟁을 해소하기보다는 결과적으로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독주만 더 공고히 해 준 셈이다.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들의 통신비 인상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게 압도적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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