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의 PC 분사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의 성장이 PC를 압박하는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스마트폰 등 생산 중단은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 결정 등 격화되어가는 모바일 기기 시장의 경쟁 속에서 퇴출되는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레오 아포테커 HP 최고경영자(CEO)는 18일(현지시간) HP의 PC 사업 부문을 분사하고 약 100억 달러(10조8050억 원)에 영국의 검색 프로그램 업체 오토노미(Autonomy)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토노미 인수로 HP가 기업 대상 서비스 사업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HP가 지난해 휴대전화 제조 업체 팜(Palm)을 인수한 후 선보인 웹OS 기반 태블릿PC '터치패드'. 터치패드는 애플의 아이패드 등에 밀려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고 HP는 결국 사업 철수 의사를 밝혔다. ⓒAP=연합뉴스 |
모바일 기기 성장이 PC 시장 압도해
아포테커 CEO의 이러한 발언은 PC 시장 자체가 전반적으로 부진하고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PC 사업에서 거두는 이윤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3분기 HP의 PC 판매량은 3% 하락했는데, 기업 고객 대상 판매는 9% 늘어난 반면 개인 고객은 17%나 떨어졌다. 주가 또한 연초 대비 22% 하락했다.
PC 시장의 부진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 PC가 아니면서도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한 IT 기기의 판매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시장조사업체 IHS서플라이는 2013년이 되면 PC를 제외한 인터넷 접속 가능 기기(internet-enabled devices)의 생산량이 5억360만 대로 PC(4억3370만 대 생산)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 하향세로 접어든 PC 산업보다는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나서야 한다는 위기감이 HP의 이번 결정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인다. 토드 브래들리 HP 부사장은 지난 2월 PC 부문은 아직 HP의 중요한 사업으로 남아있다며 매각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지만 <뉴욕타임스>는 HP가 2005년 PC 사업부를 중국의 레노보(Lenovo)에 팔았던 아이비엠(IBM)의 전철을 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HP는 오토노미 인수를 계기로 기업 서비스 상품에 치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용량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서비스(온라인으로 데이터를 저장하고 프로그램을 쓸 수 있게 하는 서비스) 사업 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레드 오션'인 PC 시장보다 수익률이나 성장 가능성이 높다.
오토노미는 영국 석유업체 BP와 자동차업체 포드, 미국 정부 등을 고객으로 두면서 대규모 데이터를 검색하는 프로그램를 제공하는 업체로 영국에서 가장 큰 IT 기업 중 하나다. HP는 58%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해 오토노미의 주식을 주당 42.11달러에 인수하면서 클라우딩 서비스 시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모바일 기기 시장도 백기 들어…경쟁 격화 예고
HP는 지난해 휴대전화 업체 팜(Palm)을 12억 달러에 인수해 자신들의 운영체체(OS)인 웹OS에 기반한 태플릿 PC와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정면 대결'을 택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HP의 모바일 기기 중 판매 목표를 달성한 상품은 하나도 없었고 HP는 태블릿 PC의 가격을 출시 한 달 만에 100달러 낮추기도 했다. 반면에 애플 아이패드의 지난 2분기 매출은 60억 달러를 넘겼다.
웹OS의 '항복 선언'으로 'OS 전쟁'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기기 시장이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노키아가 손을 잡고 이 둘에 도전할 채비를 갖추는데 이어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하면서 전통적인 하드웨어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기업의 합종연횡도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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