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쌍용차 사태와 똑같이 전개될까 두렵다"던 해고자들의 우려는 맞아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노조 파업 이후 처음 공개석상에 나타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정리해고 철회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정리해고 철회는 없다"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해외로 50여 일 동안 도피했다가 지난 주말에 귀국한 조남호 회장은 10일 부산시청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회사의 생존에 필수적인 체질개선과 구조조정을 포기하고 경쟁력 없는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기업과 직원이 다 같이 생존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이 노사문제 해결을 위해 내민 카드는 '경영 정상화를 전제로 한 해고자 복직'이었다. 그는 "3년 이내에 경영 정상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야 했던 가족을 다시 모셔올 것"이라며 경영 정상화가 돼야만 퇴직자를 재고용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대신 "회사를 떠난 분들에 대해 가능한 모든 부분에 대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예우를 최대한 갖출 것"이라며 퇴직자 400명 중 희망퇴직자에 한해 자녀 2명까지 대학졸업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영정상화 후 재고용'에 대해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은 "무급 휴직됐던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도 '경영 정상화'가 안 됐다는 핑계로 회사로 돌아가지 못해 15명이나 죽었다"며 "해고자 94명을 한꺼번에 원직 복직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영도조선소 폐쇄도 없다"…"믿을 수 있나?"
부산 영도조선소 폐쇄 논란에 대해서는 "필리핀 수빅 진출은 한진중공업의 경쟁력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며 "만일 수빅이 없었더라면 영도조선소 또한 존재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한진중공업이 영도조선소를 포기하거나 부산 영도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 됐다. 마산에서도 이미 한 차례 비슷한 일이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마산조선소에 대해 "2006년까지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1000명 이상 고용을 창출하는 조선소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발표한 후 이듬해 마산조선소를 곧바로 매각한 바 있다. 당시 마산조선소에 있던 설비는 차츰 영도조선소로 옮겨졌었고, 이제는 영도조선소의 물량이 필리핀으로 넘어가고 있다.
"오해와 불신키워 죄송…하지만 희망버스는 불법적 압력"
조 회장은 호소문에서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산시민과 영도구민,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고통의 과정이 사회적 이슈로 불거지면서 오해와 불신, 갈등을 증폭시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희망버스 행사 등에 대해서는 "불법적 압력에 의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경영활동이 힘들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원칙을 저버리는 결과일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외 출장이 국회 청문회를 회피하기 위한 처사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일감 확보를 위해 단 한 척의 배라도 더 수주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세계 어느 곳이든 선주가 있으면 항상 찾아다녔다"며 "본의 아니게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일으킨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 청문회 참석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해 증인으로 출석할 뜻이 있음을 시사했다.
민주노총 "조 회장, 한나라당과 짜고 쳤나?"
민주노총은 조 회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정리해고는 철회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만 재확인됐다"며 "해고자 자녀들에 대한 학자금 지원도 정리해고 과정에 있었던 강제적 희망퇴직 압박과 다름없는 압박수단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한나라당의 고위관계자가 조회장을 설득하여 귀국시켰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부·여당과 조 회장 측이 치밀하게 사전조율을 거치고 공동보조를 취한 것"이라며 "실제로 조회장의 오늘 호소문 내용은 9일 한나라당 원내대책회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금속노조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조남호 회장은 해외 출장과 청문회 불참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조 회장이 '회사와 임직원들의 회생을 위해 모든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진정으로 의지가 있다면 94명의 정리 해고자에 대한 해고를 철회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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