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서울의 노른자 땅인 서초구에 물폭탄이 떨어졌다. 강남 일대는 물바다가 됐고, 이날 오후 5시 현재 13명의 소중한 목숨이 끊어졌다.
수해 피해가 집중된 우면산 인근 서초구 방배3동 래미안아파트로 취재진이 향했다. 취재진은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방배3동으로 향했다. 걷는 도중 보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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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으로 향하는 길. ⓒ프레시안(손문상) |
남부터미널역 앞은 비교적 피해가 적어보였다. 차량은 평소 속도 그대로 움직였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 방면으로 꺾는 순간 도로 사정이 달라졌다. 경찰이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왕복 8차선 도로가 전부 진흙탕이었다. 통제된 차선 위로 수해복구를 위해 파견된 인력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대형 트럭이 복구를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누런 진흙물이 아직 빠지지 않았고, 곳곳에 우면산에서 밀려 내려온 나무들이 뒹굴고 있었다.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길에 우면산 대성사로 향하는 길이 있다. 대성사는 삼국시대 백제불교의 성지다. 길은 상처를 입었다. 호우만으로 아스팔트 길이 이렇게 갈라질 수 있을까. 마치 지진이라도 난 양, 도로가 쩍 갈라져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진흙으로 더러워진 발을 흘러내리는 빗물에 씻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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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서울아츠센터. ⓒ프레시안(손문상) |
예술의 전당도 물바다였다. 이날 전체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 군인들과 청소부, 직원들이 분주히 물을 퍼나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쉴새 없이 구정물이 밖으로 밀려나왔으나, 작업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을 찾은 관객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건물을 빠져나왔다. 한 여성이 나오다 진흙을 밟았다. 그는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흙탕물에 발을 씻었다. 차량이동이 막힌 상황이라 인근 지하철역으로 그는 더 걸어야 한다. 다시 발이 더러워질 것이다.
워낙 재해 규모가 커서인지, 도로 곳곳에는 우면산에서 밀려 내려온 나무토막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었다. 인도는 뻘과 같았다. 어떤 이는 맨발로 도로를 터벅터벅 걸었다. 아스팔트 위로 작은 물길이 만들어지고, 그 옆으로 쓰레기더미가 떠다녔다.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거리 중 하나가 쓰레기로 채워진 모습을 허탈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한국의 모습이다.
방배동 방향으로 좀 더 걸으니 국립국악원이 보였다. 흙탕물이 쉴새 없이 계단을 적시고 있었다. 국악원에는 "평창에서 우리의 꿈이 펼쳐집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나라의 수도는 수시간에 걸친 비로 폐허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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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시설을 복구하는 사람들. ⓒ프레시안(손문상) |
사고가 난 래미안 아파트 일대는 전부 정전이다. 이 비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촛불을 켜야 했다. 빠른 속도로 복구 사업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전기가 언제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들 역시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그로 인한 피해 역시 막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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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아파트, 상처입은 사람들. ⓒ프레시안(손문상) |
래미안 아파트 102동, 103동이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곳은 바로 아파트 단지 입구에 위치해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속도와 높이로 내려온 우면산의 '진흙 쓰나미'가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속절없이 밀려드는 나무토막과 흙더미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쉬고 있던 집을 모두 부숴놓았다. 보수공사 광경을 지켜보던 한 주민이 혀를 끌끌 차며 "마른 하늘에 무슨 날벼락이냐"고 한탄했다. 단 30여분 만에 주민들의 평화롭던 일상이 지옥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동하던 한 여성이 "설마 내일은 비가 안 오겠지"라고 말했다. 순간 비가 다시금 후두둑 떨어졌다. "아이고, 또 비다!" 울음과 같은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곳 주민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서울시는 "인재"라는 소리가 나오는 걸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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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의 현장, 2011년 서울. ⓒ프레시안(손문상) |
마치 전쟁이 난 듯했다. 대지진이 온 듯했다. 쓰나미가 휩쓴 것 같았다. 세련된 아파트 단지가 순식간에 참혹한 진흙구덩이로 변했다. 말끔한 단지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나무토막들이 흉기처럼 집들을 뚫고 들어왔고, 그 사이로 진흙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구조대원들이 재해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찔한 장면이 많았다. 이들은 재해현장으로, 누구보다 먼저, 군말없이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길이 막혀 있어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방배역 부근으로 향했다. 소방전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 명의 젊은 소방대원이 옷을 입은 채로 몸을 씻고 있었다. "머리도 감아야지" 선임인 듯한 한 대원이 다른 대원의 머리를 씻겨주었다. 그의 몸 전체가 진흙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구조대원의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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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반환경적이던' 아파트 단지 내부.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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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물은 끊임없이 쏟아졌다. ⓒ프레시안(손문상) |
경찰의 통제선을 비집고 아파트 단지 내부로 들어갔다. 주민들도 경찰의 허락을 받고서야 이동할 수 있었다. 이유는 금세 알았다. 발이 푹푹 빠졌다. 진흙을 퍼내는 작업이 쉴새 없이 진행됐으나, 단지 중심부로 들어가자 순식간에 진흙이 발목을 덮었다. 군인과 경찰, 구조대원만이 느릿느릿 단지를 걷고 있었다. 주민들은 애타는 표정으로 작업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흙과는 가장 거리가 먼 주거지였던, 도시화의 상징이었던 고급 아파트 단지가 이렇게 변했다. 한순간의 일이다. 거주민에게도, 정치인에게도, 아니 한국의 현대사에 쉽게 잊혀지기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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