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차명계좌는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엔 '시사저널' '조선일보'를 통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민주당의 박지원, 우윤근 의원에게 1만 달러를 건넸다고 진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중앙선데이' 발언은 취중에 뱉은 말이라지만 이번엔 그마저도 아니다. 맨 정신에 한 말이다.
타당하지 않다. 그가 검사로 재직할 때 준수했을 '검사윤리강령'에 어긋나는 행동이기에 타당하지 않다. '검사윤리강령' 제16조는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검사는 직무와 관련하여 알게 된 사실이나 취득한 자료를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인권보호수사준칙'에도 부합하지 않는 언동이다. 제64조, 즉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수사 중인 사건의 혐의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어긴 언동이다.
▲ 이인규 전 중수부장 ⓒ프레시안 |
상관없는 건가?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현직 검사가 아니니까 '검사윤리강령'이나 '인권보호수사준칙'을 지킬 필요가 없는 건가? '노무현 차명계좌'도 '박연차 1만 달러'도 수사 중인 사건이 아니라 종료된 사건이니까, 부당한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이니까 공개해도 되는 건가?
그렇지가 않다. '현직 검사가 아니니까'라는 논리에 대한 반박은 전직 고검장의 말로 갈음할 수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을 했을 때 한 말이다. 수사에 대해서는 퇴직을 한 뒤라도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검찰의 수사 전통을 무너뜨렸다는 말이다. 전직 고검장의 말은 '검사선서'에 나와 있는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를 상기시키는 말이다.
그럴싸한 건 '국민의 알권리 보장' 논리뿐인데 이마저도 함량 미달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발언 마디마디가 그렇다.
그가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줬다는 진술을 받긴 했지만 수사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수사를 하지 못해 박연차 전 회장의 진술이 사실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한 정치자금법 위반죄 공소시효가 지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전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1만 달러를 전달했는지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반쪽짜리 내용이다. '박연차 전 회장이 ~라고 카더라'라는 수준에서 멈춰있는 함량 미달의 내용이다. 본인마저 사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내용이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이런 반쪽짜리 내용을 버젓이 입에 올렸다. 자기 입으로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입에 올렸다. 수사 중인 피의사실조차 함부로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는 판에 마침표를 찍은 사안을 거침없이 공개했다.
백번, 아니 천번 양보해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1만 달러를 입에 올린 건 사법 차원이 아니라 정치 개혁 차원이라고, 정치 개혁을 위해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좋게 헤아릴 수 있다.
하지만 걸린다. 이전의 다른 사례가 눈에 밟힌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의 몸통은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라고 말했을 때 여기저기서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쏟아냈던 질책이다. 타인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하는 발언을 아무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내뱉는 건 무책임한 언동이라는 질책이다. 따져보면 이인규 전 중수부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책이다.
다른 사례가 하나 더 있다.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지만 출석하지 않은 사례다. 그는 사석에서는 얘기를 해도 국민 앞에서는 입을 닫았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입을 연 것이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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