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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가 '시장 경제' 망친다"

[이정전 칼럼] "소득 분배 방식이 상품 생산에 영향 미쳐"

우리나라의 빈부격차에 대하여 국민 대다수가 우려하고 있고 정치권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것이 시장을 크게 왜곡하고 이로 인해서 빈부격차가 더욱 더 악화되는 측면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업계는 빈부격차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자꾸 재를 뿌리고 있고, 시장주의자들은 업계의 반발을 은근히 이론적으로 밀어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민소득의 대부분은 시장에서 결정된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소득불평등이 고착되지 않으며 오히려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시장에서는 생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보수를 받는 '성과주의'가 철저하게 실행되기 때문에 가난한 집 자식들도 능력이 있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반대로 부잣집 자식들이라도 못나고 게으르면 어느새 거지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소득계층간의 자유로운 이동의 기회가 얼마든지 보장되므로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고착되지 않는다고 시장주의자들은 주장한다.

만일 이런 주장이 옳다면,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발달하면서 빈부격차가 차츰 완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시장경제가 최고로 발달하였다는 미국의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날로 경제규모와 수출이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빈부격차 역시 점차 심해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교육의 상업화(사교육)도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하류계층으로부터 상류계층으로 올라가는 가장 효과적인 사다리는 고등교육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일류 대학을 거쳐 출세하는 사람들이 옛날에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이런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선, 저소득계층의 자녀들이 일류 대학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입학생 중에서 저소득 직업 부모를 가진 자녀들의 비중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학원이나 고액과외 등 사교육이 대학입학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사교육비가 가난뱅이로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교육이 점점 더 상업화하면서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이 사교육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역시 돈벌이의 대상이 되면서 장사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학의 등록금이 물가상승률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올랐다. 구매력으로 따져보았을 때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세계에서 미국 대학 다음으로 비싸다는 보고도 있었다.

▲ ⓒ프레시안(최형락)
오죽하면 정당이 대학 등록금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을까. 2011년에는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 공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면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어쨋건,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점차 옛 이야기가 되면서 하류계층 사람들이 상류계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도 점차 좁아지고 있으니 빈부격차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시장의 예가 시사하듯이, 만일 성과주의에 입각한 시장의 소득분배가 점차 저소득계층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이것이 누적되면 빈부격차는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커질 수 있다. 시장이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이든 아니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부자는 돈이 많기 때문에 시장에서 돈을 많이 쓰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시장에 가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시장에서는 돈 없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아예 생산되지도 않는다. 달리 말하면, 돈 없는 사람은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시장은 돈 없는 사람들을 배제할 뿐만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재력에 따라 다르게 대우한다. 가난한 사람은 시장에 나가봐야 서러움만 당하는 반면, 고급외제차를 몰고 나타나는 부잣집 마나님은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왜냐 하면, 부자들의 수요는 막강한 구매력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상품은 잘 팔리고 돈 벌이가 좋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의 수요는 얄팍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상품은 잘 안 팔리고 돈 벌이도 시원치 못하다. 불황 때에도 고급백화점은 흥청대지만 서민들이 자주 가는 재래시장은 파리를 날린다. 시장에서는 잘 팔리는 상품은 많이 생산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상품은 잘 생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장은 부자들의 요구에 더 충실할 수밖에 없다. 달리 말하면 시장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래서 부자들을 위한 상품은 잘 생산되고 많이 생산되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상품은 잘 생산되지도 않고 많이 생산되지도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정된 자원 역시 부자를 위한 상품의 생산에 쏠리게 된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이런 쏠림 현상은 심해진다. 우리는 늘 자원의 부족을 한탄한다. 국토는 좁고 자연자원은 빈약하다. 그래서 해마다 엄청난 양의 원유와 각종 천연자원들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정된 아까운 자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는 부자들을 위해서 점점 더 많이 쓰이게 된다.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인적자원 역시 부자들을 위한 상품의 생산에 점점 더 많이 이용된다.

선진국의 과거 경험을 보면, 1인당 국민소득의 수준이 높아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국민총생산에서 사치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증가한다. 이와 같이 빈부격차는 한 나라 안에서 한정된 자원이 어떻게 이용되고 어떤 상품들이 생산되느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빈부격차는 시장의 활동을 조정하는 지표, 즉 각종 상품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냐 하면, 시장에서 형성되는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특히 수요는 소득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빈부격차가 극심한 상태에서 결정되는 시장의 가격체계는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상태에서 결정되는 가격체계와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3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평균 6만 달러)라고 하는데, 빈부격차가 크지 않아서 우리나라 대부분 가구의 연간 소득이 6만 달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보자. 6만 달러라고 해봐야 우리 돈으로 연간 6천만 원 조금 넘는 정도요 한달에 6백만 원 정도다. 이런 정도의 소득으로 과연 100평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세단을 굴리고, 골프를 치고, 자녀에게 고액과외를 시킬 수 있을까?

큰 빈부격차 없이 국민소득을 고르게 나누어가진다면 사치품이나 부자들을 위한 상품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게 생산되는 반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상품의 생산에 우리의 한정된 자원이 훨씬 더 많이 집중될 것이다. 그래서 서민을 위한 상품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될 것이고, 그러면 그 가격은 지금보다 낮아질 것이다. 많이 생산되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예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한 나라의 국민소득이 국민 각자에게 어떻게 분배되느냐가 그 나라의 한정된 자원이 시장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어떤 상품이 생산되며 그 가격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한 나라의 소득분배양태에 따라 그 나라의 자원이용양태, 상품생산양태, 그리고 상품가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시장에서의 자원이용양태, 상품생산양태, 그리고 상품가격체계는 우리나라의 양극화에 대응하여 나타난 결과다.

현재의 우리나라 빈부격차에 대하여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치권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공정치 못한 빈부격차에 대응해서 결정된 현재 시장의 자원이용양태, 상품생산양태 그리고 나아가서 각종 상품의 가격도 공정치 못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빵 가격, 아이스크림가격, 우유가격, 옷 가격 등 모든 가격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완전한 자유경쟁시장에서 형성되는 상품의 가격이 수요-공급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이므로 공정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소득분배양태의 영향을 간과한 것이다. 현재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의 소득분배양태가 옳음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각종 상품의 가격은 다시 소득분배양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예를 들면, 전자제품의 가격은 전제제품제조 회사에 종사하는 직원의 연봉에 영향을 주고 떡볶기 가게 아주머니의 소득은 떡볶기의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소득분배양태와 시장에서 나타나는 결과(상품가격, 자원이용양태, 상품생산양태) 사이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한다.

즉, 소득분배양태가 시장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의 결과는 다시 소득분배양태에 영향을 미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빈부격차가 벌어지면, 시장의 성과주의는 이 순환 고리를 타고 빈부격차를 더욱 더 확대하는 요인이 된다.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은 시장의 자원이용양태, 상품생산양태, 그리고 상품가격체계에 미치는 부자들의 영향력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서 더 크다는 얘기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부자를 위한 상품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따라서 부자를 위해서 쓰이는 자원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진다.

달리 말하면 시장을 통하여 상품생산양태, 자원이용양태, 상품가격체계에 미치는 부자들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는 것이다. 즉, 막강한 구매력을 가진 고소득계층은 저소득계층에 비해서 시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시장의 결과가 고소득계층에 더 유리하게 바뀌게 되며, 이렇게 바뀐 시장의 결과는 다시 고소득계층을 더욱 더 부유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고소득계층의 영향력을 배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과주의를 둘러싼 이런 악순환 때문에 시장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빈부격차가 자꾸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이와 같이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경제학자들이 전제하는 완전경쟁시장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현실에서 관찰되는 빈부격차의 확대를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정경유착이나 불완전 경쟁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서라도 빈부격차의 완화는 시급하다. 앞으로 대선정국에서 달아오를 복지논쟁도 이런 시각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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