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휴지기를 보낸 에미넴(Eminem)은 지난해 발매한 [리커버리(Recovery)]로 다시금 힙합 신의 슈퍼스타임을 입증해냈다. 작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량을 팔아치운 [리커버리]의 성공은 이 젊은 장르에서도 나이 많은 힙합 스타가 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작이 됐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에미넴은 언더그라운드 래퍼 시절을 함께 한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Royce Da 5'9)과 함께 미뤄뒀던 프로젝트 '배드 미츠 이블(Bad Meets Evil)'을 결성, 9개의 정규트랙(디럭스 에디션은 두 곡의 보너스트랙 추가)이 꽉 들어찬 미니앨범(EP) [헬: 더 시퀄(Hell: The Sequel)]을 발매했다.
▲에미넴과 로이스 다 파이브 나인의 만남 배드 미츠 이블 [헬: 더 시퀄] ⓒ유니버설뮤직 |
'악동이 악한을 만났다'는 프로젝트 명이 앨범의 성격을 간단히 요약한다. 이 앨범은 '아레나 지향적'이거나 '팝신에 맞게 순화된' 대중지향적 힙합 앨범과 거리가 멀다. 두 래퍼는 앨범 내내 청자에게 랩을 '퍼붓는다'.
에미넴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특유의 '어절 단위로 맞춰낸' 라임(rhyme)의 향연을 속도감 있는 하이톤 래핑으로 내뱉고, 로이스는 또렷한 발음으로 중음 부위를 탄탄히 받친다. 몹 딥(Mobb Deep)의 해복(Havoc)이 프로듀스한 <웰컴 투 헬(Welcome To Hell)>에서 앨범의 성격을 축약한 이들은 <패스트레인(Fastlane)>에서부터 랩을 폭발시킨다. 사정없이 쏘아대는 두 엠시(MC)의 래핑은 인상적인 후렴구 없이도 매우 화려한 곡을 만들어냈다. 하드코어 힙합 팬들을 만족시킬 속도감 있는 앨범이 나온 데는 래핑이 절대적이다.
비트의 일관성은 상대적으로 래핑에 비해서는 부족한 편이다. 어두운 음색이 가득하지만 래핑의 화려함을 덮을 만큼 화려하거나 인상적이진 못하다. <더 리유니온(The Reunion)>, <라우드 노이지즈(Loud Noises)> 등에서 드러나듯 대체로 드라마틱하거나 웅장한 비트들이 앨범에 주로 쓰였다. 조금 더 단조로운 비트가 아쉽다.
특히 문제의 트랙은 국내 팝팬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된 브루노 마스(Bruno Mars)가 참여한 <라이터스(Lighters)>다. 안이한 비트와 밝아진 분위기, 고음부의 후렴구는 앨범의 다른 트랙과 불협화음을 낸다. 싱글 판매를 노린 곡으로 보이지만, 앨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앨범의 특성상 앨범을 두고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앨범은 래핑의 실력만큼은 힙합 신의 최고로 불리는 두 사람이 뭉쳐 내놨다는 점만으로도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며, 적어도 래핑의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팬들이 기대한 이상의 쾌감을 안겨준다. 골수 힙합 팬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앨범이다.
뉴욕의 새 물결, 컬츠
웹진 <피치포크(Pitchfork)>가 띄운다면, 국내에서 반응은 확실하다. 피치포크를 추앙하는 이들의 주머니를 확실히 털 수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음악 팬들에게는 별다른 흥분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헤비메탈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이 잡지는 그 중에서도 특히 '사이키델릭'하거나 '첨단의 비트'를 뽑아내는 인디 음악인이 만든 '가장 팝적인' 앨범에 강한 선호도를 보인다. 올해 이 웹진이 '베스트 뉴 뮤직(평점 10점 만점 기준에 8점 이상인 앨범들)'에 올린 작품들만 봐도 디제이 퀵(DJ Quik) 정도가 예외적일 뿐이다.
▲컬츠 [컬츠] ⓒ소니뮤직 |
지난해 3월 <피치포크>의 발굴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컬츠는 사운드 프로덕션을 담당하는 브라이언 오블리비언(Brian Oblivion)과 보컬 매들린 폴린(Madeline Follin)으로 구성됐다. 미국 서부 태생의 이들은 뉴욕으로 옮겨 꽃을 피웠고, <뉴욕 매거진>, <뉴욕 타임스> 등 유수 잡지의 지원사격까지 받는 중이다. 엠지엠티(MGMT), 팅 팅스(Ting Tings), 슬레이 벨스(Sleigh Bells) 등의 뒤를 잇는 새로운 인디 팝 스타가 탄생한 셈이다. 결국 비치 보이스(Beach Boys), 슈프림스(The Supremes) 등 '좋았던 시절'의 익숙한 이름들을 소환하는 새 시도가 컬츠를 말하는 핵심이다.
앨범에는 동시대 여성 보컬 팝의 전형성-기교 섞이지 않은 나른한 하이톤 보컬-과 일렉트로 비트로 구현한 옛 정서, 그리고 간간이 들어오는 기타의 공격성이 혼재한다. 예쁜 멜로디와 적당한 비트감이 예세이어(Yeasayer)를 연상시키는 <오 마이 갓(Oh My God)>, 70년대 캘리포니아 팝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네버 소 더 포인트(Naver Saw The Point)>, 과거지향적으로 익숙한 곡의 뼈대에 비교적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여주는 <유 노 왓 아이 민(You Know What I Mean)> 등은 앨범의 대표적 감상 포인트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흘러넘치는 잔향과 곡을 듣는 재미를 주는 자그마한 효과음들은 팝 클래식에 대한 이들의 애정을 과시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온라인에서 공개돼 이들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모스트 원티드(Most Wanted)>는 나긋나긋한 그루브와 곡조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멜로디 라인이 들을 때마다 감상의 재미를 준다. 대부분 곡들의 멜로디가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쉽게 질리지 않는 앨범이다.
이미 인디팝 팬들 사이에서는 올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대체로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신진 뮤지션의 앨범은 국내에 지각발매되거나 라이선스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컬츠의 라이선스 결정은 국내 음반사의 용기있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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