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을 거치면 농사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예술'이 됐다. 대표적인 토종 패션브랜드였던 쌈지의 천호균 전 대표다. 사람들은 단아하고 세련된 쌈지 가죽가방에서, 인사동 '쌈지길'에서, 필통이나 가방에 그려진 '딸기' 캐릭터에서 지금도 쌈지를 접한다.
그러던 쌈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쌈지농부'가 생겼다. 이번에는 주제가 '농사'다. 초야에 묻힐 뻔한 농가 맛집도, 주인을 만나지 못해 버려지는 못난이 과일도 쌈지농부를 만나면 예술이 된다. 농촌 특산물과 농촌기업에 대한 디자인 컨설팅에서 시작된 쌈지농부의 활동은 농업과 생명의 가치를 체험하는 '논밭예술학교'로, 그리고 유기농산물의 유통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쌈지농부는 농촌과 도시 소비자를 잇는 '서울형 예비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잘나가던 패션업체 쌈지의 천호균 대표가 왜 '농사'와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두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예뻐서!" 서울 홍익대 근처에 있는 '쌈지농부' 사무실에서 천호균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는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천호균 쌈지농부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쌈지 가방, 인사동 쌈지길, 쌈지농부를 잇는 '그것'
프레시안 : 쌈지 하면 패션 전문 기업으로 알고 있었다. 인사동 쌈지길도 잘 알려졌다. 천 대표가 예술적 관심이나 소양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농사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어떻게 '쌈지농부'라는 기업을 시작하게 됐나?
천호균 : 패션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늘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있었다. 아트 마케팅을 하면서 창조적인 작가들과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많은 작가들이 작지만 아름다운 것, 숨어 있지만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해서 독창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었다. 그런 작가들과 어울리다 보니 소외된 아름다움을 잘 발굴해서 사람들에게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완공된 인사동 쌈지길도 그래서 생겨났다. 건물 자체를 길을 따라 걷는 듯한 느낌으로 만들고 이름도 '길'이라고 붙여 정겹고 멋진 골목길을 인사동 거리 안에 만들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길을 지나는데 그동안 별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논밭이 그날 따라 참 예쁘게 보였다. 우리에게 있어 예쁘다는 표현은 곧 '예술'로 통한다. 그래서 '농사가 예술이다'를 주제로 농사를 재해석하고, 농사와 예술 사이의 소통을 고민하는 쌈지농부팀이 쌈지 안에 신설됐다. 2008년 초에 꾸려진 쌈지농부팀은 '가치 있는 아름다움의 재발견'을 모토로 하여 직접 농사를 짓기도 하고, 농촌과 예술의 만남을 기획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시작했다. 이 쌈지농부팀이 후에 지금의 사회적 기업 쌈지농부로 발전하게 되었다.
프레시안 : 2010년에 쌈지는 사라졌다. 쌈지패션과 쌈지농부는 다른 사업인 줄 알았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두 사업이 연장선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쌈지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고, 어떻게 하다가 쌈지농부로 사업방향이 바뀌었나?
천호균 : 쌈지는 패션 브랜드다. 우리말을 사용한 차별화된 브랜드를 만들고자 쌈지를 탄생시켰고, 쌈지와 가장 어울리는 가방을 만들게 됐다. 마케팅의 방법으로는 아트 마케팅을 진행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에는 예술이라는 분야가 사회에서 많이 소외돼 있었다. 그런 예술을 후원하여 가치 있는 일로 만들면 그 안에 쌈지 브랜드가 함께 살아 숨 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부드러운 조각의 메이커'라고 부르곤 했던 쌈지는 나름의 장사가 잘됐고, 우리는 좀 더 새로운 아트 마케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숨겨지고 소외된 아름다움의 가치를 재발견하려 애썼다.
ⓒ프레시안(최형락) |
그 후 쌈지농부팀은 '쌈지농부'라는 독립법인으로 재탄생했다. 제일 먼저 어떤 농부를 만나고 어떤 농사를 발굴하여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농부와 농사를 찾아 소개하는 것, 그것이 쌈지농부의 첫걸음이었다. 현재 쌈지농부는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서 예술가, 농부와 함께 창조적인 농사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목표로 시작했더라도 세상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되더라. 얼마 후 장사하는 쌈지가 망하게 된 것이다. 나 대신 장사 하러 들어온 친구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계획된 꾼들이었는데, 그걸 모르고 일생일대의 실패를 겪었다. 한때는 쌈지의 연 매출이 2000억 원에 달했고, 직원이 1000명에 가까웠으니 어쩌면 쌈지답지 않을 정도가 됐다. 쌈지라는 말의 뉘앙스는 소박한데 분수에 넘치게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 부분은 나중에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자세히 털어놓을 생각이다. 비슷한 피해를 보는 또 다른 기업이 생기면 안 되니까.
"농사가 '돈'이 되는 시대가 와야"
프레시안 : 농사를 예술과 연관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농사가 예술이 될지는 모르지만 돈이 되기는 참 어렵다. '쌈지농부'를 기업에서 만들어 운영하겠다고 생각할 때는 최소한 수익성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어떻게 수익을 내는 게 가능하다고 계산했나?
천호균 : 새로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사회 변화를 예측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농사와 먹을거리라고 생각한다. 유행이 너무도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이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지속 가능한 영원한 유행은 농사와 먹을거리이다. 그리고 그 최전방에 농부가 있다. 예술가가 긴 고뇌의 시간을 거쳐 작품 하나를 완성하듯, 자연이라는 캔버스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쌀 한 톨을 거둬들이는 농부를 우리는 존중해야 한다. 옛날에 예술가들을 '딴따라'라고 얕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듯, 농부도 사회적으로 재격상될 필요가 있고 또 그런 시대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시골을 찾아가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시대 트렌드에 맞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도 언젠가는 이윤이 나지 않겠나. 수요가 있으니 큰 욕심만 없으면 회사 운영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쌈지농부는 미적인 재주가 있으니 그 재주를 발휘하여 농촌을 디자인 컨설팅하면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을 수 있다. 또 기존과 차별화되는 농산물 유통을 진행해 얻는 수입도 있고, 좋은 품목이라 판단되면 직접 비용을 들여 개발하고 유통하여 수익을 내기도 한다. 우리의 가장 큰 강점은 농촌 디자인 컨설팅으로 탄생한 멋진 상품들을 매장에서 직접 판매하고, 이를 통해 도시 젊은이들이 농촌에 숨어 있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익힐 수 있도록 지속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쌈지농부의 스승은 박경리 선생
프레시안 : 2008년에 쌈지농부가 나왔다. 그때가 광우병 때문에 촛불집회가 한창 벌어졌을 때다. 김지하 시인 같은 분들은 이제 먹을거리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로 다가왔다고 지적했다. 예전엔 당연하게 여겼던 먹을거리가에 사람들이 지금은 굉장한 주의나 관심을 갖게 됐다. 쌈지농부의 등장이 혹시 촛불집회와 연관 있는 것은 아닌가?
천호균 : 운동이나 시위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치 있는 비즈니스의 시작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적극적인 운동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쌈지농부팀의 첫 번째 교육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박경리의 <토지>를 읽는 것, 박경리의 생각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박경리 선생은 문인들이 찾아오면 다른 건 몰라도 밥 먹는 일만큼은 본인이 손수 가르쳤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텃밭을 기어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모습, 다시 태어나면 힘센 농부와 결혼하고 싶다는 선생의 소박한 바람이 우리 직원들의 교육 요소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귀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자연을 지키고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서 생명을 수확하는 농부야말로 가장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쌈지농부를 시작하게 됐다.
장인의 짚 공예, 농가맛집이 거듭나다
프레시안 : 농사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할 뿐 아니라, 한국 사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했다. 쌈지의 자산은 예술이니 예술적으로 기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쌈지농부는 사회적 기업 형태이므로 최소한의 수익성을 맞춰야 한다. 실적 중에 첫 번째가 지자체 컨설팅이라고 했는데, 어디에서 어떤 사업을 벌였나?
▲ ⓒ프레시안(최형락) |
또 다른 예로, 충북 단양의 수리봉 기슭에 자리한 농가맛집에서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다. 지역성을 가미한 '수리수리봉봉'이라는 재미있는 작명은 물론 전반적인 디자인 컨설팅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한번 성공하고 나니 각 지역에서 잘 된 사례로 '수리수리봉봉'을 벤치마킹하더라. 이를 보고 다른 분이 우리 지역에도 농가맛집이 있으니 디자인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뢰가 이어져 지금까지 쉴 새 없이 디자인 컨설팅을 계속하고 있다. 농촌 디자인 컨설팅이 쌈지농부의 수익 기반이 된 셈이다.
프레시안 : 희망제작소도 지방자치단체를 컨설팅한다. '마을을 살리자'는 모토로 시작된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예마네)라는 곳도 있다. 희망제작소는 2007년, 예마네는 작년에 <프레시안>에 농촌관련 연재를 하기도 했다. 그쪽과도 구체적인 협력관계가 있나?
천호균 : 희망제작소와는 예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희망제작소에서 친환경상품 브랜드를 만들 때 개인적으로 디자인 컨설팅을 했기 때문이다. 브랜드 이름을 '메아리'로 짓고 쌈지에서 디자이너 지원을 했는데, 그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아름다운재단의 디자인 사업부인 '에코파티메아리'다. 희망제작소와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모두 우리에게 중요한 디자인 영감을 제공하고, 또 비즈니스를 시작함에 있어서 큰 용기를 주는 곳이다. 사회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하여 아름다운 사회와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노력에, 단지 쌈지농부는 아름다움을 보는 또 다른 눈의 역할로서 가치 있는 비즈니스를 실현하고자 하고 있다.
프레시안 : 파주에 '논밭예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데, 어떤 곳이고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운영하나?
천호균 : 2010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연 게스트하우스로 예술, 생태, 문화 전반에 걸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생태문화공간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연요리교실, 아이들이 다양한 맛을 체험하고 예절교육을 배울 수 있는 음식교육 교실, 막걸리 교실, 리사이클 디자인 교실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곳의 특징 중 하나는 7개의 방을 7명의 작가들이 맡아 만들었기에 각 공간마다 개성이 넘친다는 것이다. 그 중 아주 앞서나가는 작가 한 명은 멀쩡한 건물 안에 황토 구들방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또 가끔은 문제가 되더라. 아무리 생태적인 삶이 좋다 해도 사람들에게 직접 나무 넣고 불 때고 자라고 하면 누가 그렇게 하겠나? 거기 와서 잠자는 사람들은 우리가 불을 안 때 주면 안 자기 때문에, 불 때 주는 서비스를 해주기 쉽지 않아서 힘들기도 했다(웃음).
논밭예술학교를 찾는 이들은 일반적인 도시 사람들보다 비제도권적이고 생태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이들이 따듯한 구들방에 모여 앉아 의견도 나누고, 잠도 자고, 또 막걸리 교실이나 자연요리 교실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태적인 삶의 방식을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곳이 논밭예술학교이다. 앞으로도 생태문화공간이라는 말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운영해 나가고 싶다.
미생물 과학자와 디자이너가 손 잡으면…
프레시안 : 지금 새롭게 하려는 일이 농산물 유통이라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나?
천호균 : '농부로부터'라는 매장을 오는 7월 초 파주 헤이리에 연다. '농부로부터'는 유기농 농산물을 연구해 온 흙살림과 농사의 아름다운 가치를 재발견해 온 쌈지농부가 함께 마련한 새로운 농산물 유통 브랜드이다. 두 사회적기업의 전문성과 경험이 단단히 결합한 '농부로부터'는 농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철학을 담아 의미 있는 영역의 8가지 상품들을 구성하여 소비자를 찾아갈 예정이다. 소중한 우리 것 토종씨앗, 숨 쉬는 먹을거리 발효식품, 못생겨도 맛있는 못난이 장터, 우리 아이를 위한 아이좋아, 가정으로 배달되는 친환경 꾸러미,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상품 '다지구다', 꿈꾸는 도시농부의 '도시텃밭', 농부의 믿음이 느껴지는 농부직판장 등 '농부로부터'는 단순한 유기농 매장이나 유통에 머물지 않고 농사가 예술이라는 믿음을 담아 새로운 문화 캠페인의 걸음을 떼고자 한다. 수만 수천 가지의 씨앗 중에서 우리 몸에 맞는 씨앗을 만날 수 있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든 김치, 막걸리, 효소,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잘 발효된 발효 식품이 숨 쉬고 있는 매장. 조금 못생겼지만 똑같은 가치를 지닌 맛있는 과일을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자연 친화적인 착한 기업에서 만들어낸 제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아이에게 건강한 먹을거리 교육과 텃밭 체험까지 경험하게 해주는 '농부로부터' 매장에 와보면 농사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또 흙살림과 쌈지농부가 함께하는 '우리집 생활꾸러미' 도 새로운 문화 캠페인 확산을 위해 주목하고 있는 유통 사업이다. '우리집 생활꾸러미'는 매주 또는 격주 간격으로 보내지는 직거래 채소꾸러미로 흙살림 직영 농가와 회원 농가에서 수확한 인증 받은 친환경 농산물과 식품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가공품 등으로 구성된다. 꾸러미 속에는 생산한 농부의 소개는 물론이고 농산물에 대한 정보, 요리법이 적혀 있는 편지도 함께 들어 있어 마치 고향에 있는 부모가 손수 챙겨 보내는 듯한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농가에서 직접 배달되므로 값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생산자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해 소비자의 몸을 지켜주고, 소비자는 농가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구매해 농부의 생산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서로의 끈끈한 협력이 맺어지는 방법이므로 더욱 의미가 크다. 이처럼 좋은 의미가 많이 담긴 '우리집 생활꾸러미'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흙살림이라는 단체를 좀 더 자세히 소개해 달라.
천호균 : 흙살림은 20년 전부터 유기농을 주창해 온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유기농 인증기관이다. 관행농가가 유기농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 및 지원을 하는 연구적 성향이 강한 단체다. 유기농 농가들의 안정적인 생산을 보호하기 위해 생산기술, 인증, 유통, 정책에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흙을 살리는 것이 유기농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여 우리 토양에 맞는 미생물 연구, 생태적인 병충해 방제 기술 연구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전통농업을 과학적으로 복원하여 농촌 곳곳에 숨겨져 있는 농업기술을 발굴하고 우리에게 최적의 종자라 할 수 있는 토종 종자를 찾아 보전 활동을 진행하는 등 우리 땅에 맞는 유기농을 정착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다.
이렇듯 토종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해 온 흙살림의 활동들을 볼 때,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온 쌈지농부의 상품 공급 상대로 최상이라고 생각해 함께 '농부로부터'를 구상하게 됐다. 요즘 과학과 예술, 과학과 디자인의 만남이라는 용어를 자주 볼 수 있는데, 흙살림에는 미생물 과학자가 많고 쌈지농부에는 디자이너가 많으므로 과학과 예술이 농사를 위해 만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유기농은 비싸고 믿을 수 없다?
프레시안 : 유기농 농산물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유기농을 믿을 수 있는가. 또 하나는 유기농은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데 여기에 예술까지 결합한다면 더 비싸지는 거 아닌가 하는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천호균 : 인간의 본성 중에는 누군가를 위하고 베푸는 '자선'이 있다고 믿는다. 유기농은 땅을 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자연을 살리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그러한 습관들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세탁할 때 화학 세제 대신 자연 세제를 쓰는 것과 같이 유기농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실천방법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후손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유기농에 대한 신뢰성은 정부나 단체가 보증해야 한다. 그래서 브랜드가 필요한 것이고, 신뢰를 깨버린 브랜드는 시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유기농에 대한 믿음을 소비자들에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유기농과 예술이 결합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디자인도 포장을 하는 것이므로 일종의 거품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좋은 것을 디자인해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좋은 것을 사갈 수 있게 하는 것'의 측면으로 해석하려 하고 있다. 생협이나 한살림에서 파는 농산물 가격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주로 회원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그 정도 가격대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회원이 아닌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프레시안 : 과학자나 예술가가 아무리 농사를 도와줘도 농민, 농촌의 자생력이 없으면 크기 어렵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우리 농촌에는 노인밖에 안 남아 있고 농촌이 죽어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농촌이 새 활력을 가질 여지가 있을까. 그게 안 되면 밖에서 도와줘도 어렵다.
천호균 : 요즘 가파르게 급증하는 사회현상 중 하나가 귀촌이다. 내 주변의 젊은 작가들만 보아도 몇 년 새 농촌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농사는 잘 모르니까 주로 지방 공동체 운동을 하는데, 공동체 운동을 하다 보면 눈에 띄는 게 농사일이니 언젠가는 농사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사짓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지 않을까? 농촌 인구가 늘게 되면 그다음으로 중요해지는 것이 유통일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농부가 유통기관을 신뢰하지 못한다. 농사라는 것이 수확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데, 유통업체들은 수확이 잘 안 될 때의 마진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농가와 소비자 양쪽 모두의 이익을 염두에 두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유통의 필요성이 앞으로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내에서 농촌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려 하고, 사회적 추이를 봤을 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소비자와 농부가 '좋은 먹을거리'를 이야기하는 공간 만들고파"
프레시안 : '농부로부터' 외에 농사와 관련해 준비하거나 구상 중인 것이 있나?
천호균 : 도시마다 하나씩 '농부로부터' 매장을 만들고 싶다. 우리가 매장을 만들면 농부가 직접 농산물을 가지고 와서 판매하는 식이다. 마치 백화점 코너처럼 농부가 '어디 가면 내 매장이 있다'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로컬 푸드 실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단순히 소비자가 와서 상품을 사가는 공간으로 남기보다는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농부와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완성하고 싶다. 농촌 관련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많은 분이 매장을 친숙하게 들를 수 있고, 커뮤니티 공간처럼 활용되어 또 다른 문화가 창조될 수 있게 하고 싶다.
프레시안 : 쌈지농부가 시대정신을 읽었다는 느낌이 든다. 촛불집회 때 이후로 사람들이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아졌다. 쌈지농부와 유사한 일을 하는 기업이 있나? 재벌들이 돈만 되면 다 하려고 하는데, 아직 이 영역까지는 안 들어오는지 궁금하다.
천호균 : 기업은 보통 효율, 경영, 이익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친환경 농산물 유통의 이익을 고려할 때 아직은 대기업이 하기에 적절한 사업이 아닌 것 같다. 기업은 생산자(농부)를 배려하는 매뉴얼을 철저히 지키고, 흙과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소비자 또한 농부를 열렬히 응원하는, 지금의 시대정신과 어울리는 젊고 착한 기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최근에 농사를 체계적으로 배워보려고 파주 도시논밭학교에 등록했는데 그곳에 가보니 학생들이 모두 젊은 사람들이더라. 젊은 그들이 열성적으로 농사를 배우는 모습을 보니 농촌의 미래가 참 밝아 보였다. 이들이 공부하는 첫 번째 목표는 농사와 관련된 일을 하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창조적인 농사의 예술성을 더 널리 전할 수 있으니 도시마다 농사에 관심 있는 젊은이가 많다는 것은 참 좋은 징조이다. 뒤로 가는 문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새로운 시대문화가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농사와 농촌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싹터 나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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