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인권상심사위원회는 최근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김진숙 지도위원을 7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했다.
박종철인권상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박종철 열사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자 지난 2003년 제정됐다. 민주주의와 인권향상에 기여한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돼 왔으며, 올해 심사는 진관스님(위원장)과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조국 서울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김거성 한국투명성기구 회장, 박동호 신수동 성당 주임신부 등이 맡았다.
심사위원회는 6일 보도자료에서 "김진숙 씨는 노동운동의 탄압도구로 전락한 구조조정에 맞서 지난 1월 6일 지상 35미터의 크레인에 단신으로 올라 꿋꿋이 투쟁하고 있고, 한진중공업만이 아니라 전국의 노동자와 민중들의 희망으로 우뚝 서 있다"면서 "가장 어려운 투쟁을 감당하고 있고, 절박한 상황을 이겨가고 있는 김진숙 씨에게 격려와 연대의 뜻을 전한다는 의미로 만장일치로 수상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심사위원회는 "오는 6월11일 김진숙 씨를 만나러 가는 '희망의 버스를 타자'는 운동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생존의 벼랑 끝에서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라며 "이 상이 김진숙 씨와 그의 동지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고,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싸우는 민중들에게도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8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다음은 김진숙 위원이 보낸 수상 소감이다. <편집자> 시퍼런 청년을 열사로 부르는 일이 나는 아직도 낯설다.'인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박종철이 대공분실에서 죽어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건 내가 거기 다녀온 지 몇 달 후였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내가 다녀온 곳이 얼마나 무서운 곳이었는지 내가 겪은 일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었는지 비로소 실감났다. 그는 죽고, 그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살아서 크레인에 오른지 152일째. 선배의 이름을 불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시대. 죽음으로 역사가 된 청년의 이름을 우리는 6월 항쟁의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불렀다. 그 부름은 7,8,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전국 곳곳에서 하룻 저녁에도 수백개의 노동조합이 세워지고 어용노조가 민주노조로 바뀌었다. 불량 냈다고 따귀 맞고 5분 지각했다고 하루 일당이 까이던, 손가락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져도,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산재가 뭔지도 몰랐던 공순이 공돌이들이 노동자라는 본명을 쟁취했던 개명천지. 이 크레인에서 보는 바로 맞은편에 그의 집이 있었다.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겼던 한 청년이 죽었고,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이 크레인에선 조합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과의 약속을 어겼던 한 노동자가 죽었다. 그리고 그 죽음들이 고스란히 빚이 된 내가 다시 크레인에 올라 그의 집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 본다. 역사는 아직도 이렇게 가혹하다. 인연이 빚이 되고 죄가 되는 세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밭을 갈 뿐이다. 그렇게 돌을 골라내고 바위를 들어내며 황무지를 갈다보면 꽃도 되고 감자도 열고 고구마도 캘 날이 오려니 하는 믿음으로. 25년 전 한 청년이 쓰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써내려가는 우리 조합원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길 바라며 곳곳에서 싸우는 노동자, 청년학생들, 민중들의 하루하루가 박종철이 살고 싶었던 세상으로 이어지는 나날임을 되새기고자 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잊지 않고 기억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1년 6월 6일 크레인 고공농성 152일차 김진숙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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