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요 연구기관이 기준금리 인상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한국은행의 행보가 더뎌 이미 통화정책만으로 물가를 잡을 시기도 지났다. 물가 고공행진은 이명박 정부의 내리막길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밥상 못 차린다
물가급등의 큰 축은 먹을거리와 석유류가 차지한다. 생활을 꾸리기가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를 위협한 먹을거리 가격 불안은 올해 절반을 지나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사조산업은 다음달 10일부터 참치캔 제품의 소매가격을 10% 인상키로 했다. 유가급등 등으로 인해 참치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구제역 여파도 여전히 밥상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5일부터 '스팸 클래식' 340그램(g) 제품 판매가를 인상했다. 대형마트에서 이 제품의 가격은 4600원에서 4980원으로 8.3% 올랐다. 대상 청정원도 '우리팜', '우리팜 아이사랑' 가격을 9.5% 올렸다.
농산품 가격 인상 대응책으로 수입 농산물이 늘어나자,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 셈이다.
석유류 가격 인상세는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들어 20일 연속 휘발유 평균 가격이 내려가는 등, 당장에는 그간 급등했던 석유제품 가격이 안정되는 기미다. 그러나 재보궐 선거 등으로 인해 정부가 그간 억제했던 공공요금 가격은 하반기 들어 인상분을 적극 반영한다.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이 원가에도 못 미친다며 16% 이상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인상률을 한전 요구 수준의 절반가량으로 낮추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도시가스 요금은 이미 이달 들어 4.8% 올랐다. 서울시는 지하철 기본요금을 올리고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고심하다,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NH투자증권은 물가상승세가 올해 3분기까지 지속되리라고 전망했다. ⓒNH투자증권 제공 |
해결책은 조속한 기준금리 인상
이처럼 물가 급등세가 이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2008년 나왔다. 금융위기 타개책으로 세계 각국이 유동성을 대거 풀었고, 당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은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물가 자극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최근 들어 시중 유동성 증가 추세는 점차 완화되고 있다. 한은이 지난해 말부터 인상한 기준금리가 서서히 유동성을 흡수해가는 중인 셈이다.
지난 12일 한은이 발표한 '3월중 통화 및 유동성' 자료를 보면 3월 광의통화(M2)는 1677조5000억 원으로 전년동월대비 4.3% 증가했다. 증가율은 2004년 5월(3.9%) 이후 7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작년 7월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NH투자증권은 "작년 말부터 외국인의 통화공급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최근 유동성 증가가 점차 둔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현재'만 놓고 보자면 여전히 유동성은 과잉 상태다. NH투자증권은 한은이 사용하는 유동성 지표인 머니갭률을 놓고 "지난해 3분기를 정점으로 소폭 둔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경제대비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라며 "전반적으로 시중 유동성은 아직까지 풍부해, 한은이 작년부터 1%포인트에 달하는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나 실제 시장금리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머니갭률은 실제 유동성이 장기균형 유동성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지난해 1분기 5%대까지 치솟았던 머니갭률은 최근 들어 2%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시중에 풀린 과잉유동성은 M2의 2%대인 30~40조 원대일 것으로 추측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런 이유로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대폭 상향조정하며,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5일 OECD는 한국의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무려 1.0%포인트나 높여 4.2%로 제시했다. 이는 한은의 중기물가안정 목표 상단(4.0%)을 넘어선 것으로, OECD 34개 회원국의 평균 물가상승률 전망치 2.3%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OECD는 특히 "최근 경제여건에 비해 통화정책이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지적하며 "정책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원화가치 상승도 물가상승세 억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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